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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선창규씨.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선창규씨.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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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한 빌딩 앞. 전북 장수에서 올라온 선창규씨가 '검찰의 적폐 청부검사들을 고발한다'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가 맞은편에 있는 한국지식재산센터 빌딩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 맞은 편에서 1인시위를 벌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한 프랑스 대형할인매장업체 한국까르푸는 한때 한국지식재산센터 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선씨는 그곳에서 지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근무했다. 고졸 출신이었지만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왜 과거에 근무했던 직장의 맞은 편 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게 된 것일까?  

"억울함을 호소하러 나왔다."

광우병 우려 쇠고기 불법유통으로 기소됐지만 대법원까지 '무죄'

그 '억울한 사연'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서울 강남 개포동 아파트 앞에서 선씨를 긴급체포했다. 한국까르푸에 근무할 당시 선씨가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 함유 가능성이 있어 폐기명령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혐의였다.

검찰의 한 수사관은 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다가 집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을 발견하고는 "광우병 쇠고기를 팔아먹은 사람이 천주교를 다니네"라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광우병 쇠고기 정국'의 여진이 강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이상억 검사(현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유통기한이 1년 반이나 지난 다음에 부하직원을 시켜 원산지를 호주산으로 바꾼 뒤 까르푸 전 매장에 판매한 파렴치한 사람이다"라고 선씨의 구속영장 발부를 강하게 주장했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플리바기닝(사건 해결에 협조한 범죄자의 협을 감면해주는 유죄협상 제도)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선씨는 지난 2011년 10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저를) 구속시킨 뒤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검사는 (저를) 검사실에 불러 조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쇠고기 둔갑 유통 사실만 자백하면 다른 건 모두 빼주고 과세자료를 국세청에 넘기지 않겠다'고 자백을 강요했다." 

선씨는 이상억 검사에게 "천벌을 받을 거다"라고 말하면서 '위험한 거래'를 거부했다. 결국 검찰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선씨를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호주산으로 둔갑시켰다'는 혐의가 빠졌고,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와는 전혀 상관없던 탈세혐의가 추가됐다. 선씨가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자 별건수사를 벌여 탈세 혐의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검찰의 기소내용과 크게 달랐다. 1심에서는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에 무죄가 내려졌다. 2심에서는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뿐만 아니라 배임수재 혐의까지 무죄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의 판결 덕분에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를 불법으로 유통한 악덕업자'라는 주홍글씨만은 떼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탈세 혐의는 그대로 인정해 총 120억 원(벌금 40억 원 포함)의 '세금폭탄'을 맞았다.

선창규씨의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불법 유통 혐의를 보도한 <한국일보>(왼쪽)와 주간 <시사저널>.
 선창규씨의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불법 유통 혐의를 보도한 <한국일보>(왼쪽)와 주간 <시사저널>.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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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법조 스폰서-전관예우 변호사-검사의 유착 의혹

1인시위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선씨는 아직도 '분노'를 품고 살고 있었다. 검찰의 부조리한 조사를 잊지 못한 듯했다. 당시 수사검사는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 혐의를 자백받기 위해 전방위로 선씨를 압박했다. 그것의 종착점은 '징역 10년 구형, 벌금 50억 원'(1심)이었다.

"이상억 검사는 '너를 풀어주면 내가 옷을 벗는데 어떻게 풀어주겠냐?'고 했다. '동생이 하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겠다'며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네 마누나를 탈세 공범으로 구속시키겠다'고도 했고, '광우병 쇠고기 자백 안하면 네 재산을 다 빼앗겠다'고도 했다."

선씨는 "내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광우병 정국이 이어질 때였고, 당시 검찰은 '고대 공화국'이었다"라며 "고대 출신 검사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광우병과 관련된 수사를 한건 해서 출세하려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선씨는 자신의 사건이 '청부수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전북지역 최대 축산물 가공.유통업체인 '축림'의 박관구 회장, 거기서 근무하는 한재상씨가 전관예우 변호사였던 유석원 전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장과 공모했고, 유 전 부장과 동향이거나 검찰 선후배 사이인 김석우.이상억 검사가 이들과 유착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석원 전 부장과 김석우 부장검사는 '동향'(전주)이고, 남원지청장을 지낸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이상억 검사는 유 전 부장이 형사3부장으로 근무할 때 데리고 있던 후배검사였다. '익산 대통령'으로 불리우는 박관구 회장은 전북지역 법조 스폰서로 알려져 있다. 

선씨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청와대에 낸 진정서에서 "박관구라는 지역 법조계 스폰서를 중심으로 현직 부장검사와 수사검사, 전관예우 변호사가 연결돼 있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연결구조의 목적은 합의금을 받아내는 데 있었다는 것이 선씨의 주장이다.  

"한재상씨와 박관구 회장이 처음 나에게 요구한 합의금은 7억 원이었다. 하지만 내가 구속된 이후에는 30억 원, 50억 원으로 올랐다. 이렇게 합의금이 커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내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니까 그들이 수사내용을 가지고 50억 원까지 베팅한 것이다. 검찰에서 흘리지 않았으면 내 재산이 얼마인지를 그들이 어떻게 알겠나?"

심지어 선씨의 거부로 불발됐지만 '합의금 분배 계획' 의혹도 있다. 박관구 회장과 연결돼 있는 한재상씨가 선씨의 동생을 만나서 "(가령 10억 원에 합의했다고 하면) 이 사람 6억, 이 사람 2억, 이 사람 2억 원을 (주기로) 변호사(유석원)한테 써주고 왔다"라고 말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박관구 회장과 유석원 변호사, 그리고 특정할 수 없는 제3자가 합의금을 6:2:2로 나누기로 계획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선창규씨.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선창규씨.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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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힘이 세니까 국가도 책임을 묻지 않더라"

선씨는 지난 2013년 8월 30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에게 "저를 광우병 우려 쇠고기 유통 혐의로 구속한 검사를 정말 용서할 수 없다"라며 "수사검사 등을 상대로 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잘못된 검찰수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김석우 부장검사와 수사를 맡았던 이상억 검사를 '피의사실 공표'와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고검에 항고도 하고, 대법원에 재정신청도 냈지만 기각됐다.

대검에 두 차례 진정서를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두 검사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검찰공화국'인 현실에서 잘못된 검찰수사에 책임을 묻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몇 차례 고소했는데 한번도 조사받아본 적이 없다. 내게 돌아온 것은 '혐의없다'고 적힌 종이 한 장뿐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국가랑 검사는 한편 아닌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검사를 보호하고 있다. '검찰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검찰의 힘이 세니까 국가가 검찰의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선씨는 "2009년 사건이 일어나고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검사들을 상대로 소송해서 그들이 처벌되도록 노력해왔다"라며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부분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처벌되기는커녕 되레 무혐의 처분만 받았다. 국가에 호소하면 억울한 일은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게 막혀 있으니까 억누를 수 없는 원망과 분노만 생겼다. 그런 원망과 분노로 9년을 보냈다."

"법조 스폰서가 청탁해서 손봐준다면 그것이 올바른 나라냐?"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평생 쌓아온 재산은 바람에 종잇장 날아가듯 사라졌고, 건강마저도 악화됐다. 몇 차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고, 먹는 약의 종류도 늘어만 갔다. 선씨는 "지금 치아는 다 망가졌고, 귀도 잘 안들려 치료받고 있다"라고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심지어 벌금 미납으로 전주교도소에서 한달 이상 노역장을 하기도 했다. 선씨는 탈루 세금액인 80억 원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완납했다. 80억 원조차도 누진세에 따라 산정된 금액이고, 실제 탈루 금액은 24억여 원 정도였다. 다만 세금 탈루의 대가인 벌금 40억 원만은 억울했다. 검찰이 별건수사를 통해 불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기소한 탈루 혐의였기 때문이다. 벌금을 낼 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40억 원 가운데 19억2000만 원을 미납하자 검찰은 지난해 11월 24일 선씨를 길거리에서 긴급 구속했다. 이것 때문에 몇 개월을 앞둔 딸의 결혼도 깨졌다. 이후 동생 등 가족들이 미납한 벌금을 어렵게 마련하고 나서야 노역장에서 풀려났다. 구속된 지 34일 만이었다.

애초 선씨는 노역장으로 벌금 40억 원 납부를 대신할 생각이었다. 40억 원은 1일 400만 원으로 계산해 1000일의 노역장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씨가 다시 검찰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시작한 일이 '1인시위'였다. 선씨는 "지난해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던 데에는 목적이 있었다"라며 "새로운 정부가 나오면 광우병 쇠고기 사건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청와대와 민변 어느 곳에도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조세문제를 뺀다면 난 무고한 사람이다. 익산대통령(박관구 회장)이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덪에 걸려든 것뿐이다. 다시는 이렇게 증거도 없는 사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법조 스폰서가 청탁해서 누군가를 손봐준다면 그것이 올바른 나라인가?"

선씨는 이상억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는 강남의 한 빌딩 앞에 이어 김석우 부장검사가 재직하고 있는 광주지검 앞에서도 1인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선씨는 "(두 검사의 수사책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인시위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상억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제가 답변할 이유가 있나?"라며 "(선씨가 1인시위하는 것에는)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라고만 말했다. 

[관련기사 : 1심부터 대법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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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창규,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이상억, #김석우, #박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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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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