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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안 물어봐요?"

2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브리핑을 하던 중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불쑥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와 한 인터뷰에서 "평창올림릭 기간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라고 말해 기자들의 질문이 그것에 집중됐는데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아랍에미리트'란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UAE(아랍에미리트연합)와 레바논을 방문한 이유를 둘러싼 진실 공방을 가리킨다. 청와대는 "해외파견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러 갔다"라고 설명했지만, UAE의 바라카 원전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갔다는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

"원전 수주 크게 한 나라니 계속 유지, 관리할 필요 있어"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일 오후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임 실장과 모하메드 왕세제는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 대통령 특사로 UAE 왕세자 만난 임종석 실장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일 오후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임 실장과 모하메드 왕세제는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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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관계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기자들은 "돌아가는 상황이 짜증난다"라며 "상호협력 때문에 간 것인지 원전 때문에 간 것인지, 방산 협약 때문에 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올해 안에 마쳐야 할 양국간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단순 외교인지, 종지부를 찍었으면 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확실하지 않게 보도한 건 언론이다"라고 책임을 언론에 돌렸다. 그는 "연말까지 확실하게 털어야 할 게 있어서 간 게 아니다"라며 "언론에 나온 모든 추측성 기사나 야당이 주장하는 내용는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원전과 관련해 UAE는 (원전) 수주를 크게 한 나라이고, 당연히 계속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는 나라다"라며 "(그러니 임종식 비서실장이) 왕세제를 만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의혹 제기는 계속 됐다. 기자들은 "대통령 중국 순방을 앞두고 비서실장이 갑자기 떠났는데 다음날 갔다고 발표한 것이 의혹의 출발점이다, 왕세제라는 집권자를 만나는 것은 사전조율이 필요한데 한참 전부터 예정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갔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안에서) '언제 공개하는 게 좋겠냐?'고 해서 제가 '이왕 깜짝 선물이라면 깜짝쇼하는 게 낫지 않겠냐? 군부대 방문 직전에 오픈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발표한 것이다"라며 "한쪽에서는 미리 발표하자는 말도 있었는데 그럴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할 일이었다면 언론에 공개를 하겠나? 안하겠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MB정부에서 원전을 수주하고 난 뒤 관계가 좋았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소원해졌다는 이야기 있었다"라며 "향후 (추가) 수주도 있고, UAE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국익 차원에서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갔으면 (왕세제 등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그런 차원에서 진행된 거고 다른 이슈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UAE와 소원해졌다는 지적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에서 그 나라를 관리하는 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썩 잘 이뤄진 것 같진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기자들이 "MB 정부 때 좋았던 UAE와의 관계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파트너십이 느슨해졌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라고 캐묻자 이 관계자는 "UAE가 받는 느낌이다"라며 "포괄적으로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라고만 답변했다.

기자들은 "청와대의 답변이 모호하면 해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소원하다고 느낀 것 때문에 가서 풀어줬고 관계를 개선했다는 건데 왜 풀어줬는지 등의 인과과계가 없으면 목적어(의혹)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들어온 지 얼마 안되지 않았나?"라며 "(UAE 원전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앞으로 관계를 잘 가야 한다는 목적 의식도 분명히 있다, 그쪽에서는 서운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까"라고 해명했다.

"원전 얘기 했겠죠"라고 말했다가 "사실 아니다" 뒷수습

하지만 여전히 기자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기자들은 "소원해진 이유가 있고, 국가간 이유가 있으니까 풀어주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 관계자는 "저는 잘 모르고 이전 정부와 관련된 거라고만 안다"라고 답변했다.

'이전 정부와 관련된 것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저희 정부 때문이 아니라 이전 정부 때문에 소원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라며 "원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잘 관리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은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UAE를 방문한 목적 가운데 '원전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기자들이 "원전과 관련해 UAE와 소원하다는 얘기는 임종석 실장이 전달했나?"라고 묻자 "여러 쪽으로부터 들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흥미로운 질문과 답변이 나왔다.

- 임 실장이 (UAE쪽에) 원전 말했겠네요?
"했겠죠."

하지만 브리핑에 배석한 다른 청와대 관계자가 이 관계자에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안 했다'는 신호를 보내자 이 관계자는 "저도 추측성으로 말한 것이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후 이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제 백브리핑 과정에서 언급했던 아랍에미리트 왕세제와의 원전 얘기 '했겠죠'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원전 관련 발언은 없었음을 임 실장에게 재차 확인했다"라고 해명했다.

기자들이 "임 실장이 간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박근혜 정부 탓이냐?"라고 다시 묻자 이 관계자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라며 "그러나 처음에 원전을 수주했을 당시에 비해서 서운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UAE와의 관계가 중요할 수 있어서 (임 실장이 가서)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지 않나?"라며 "관계문제를 돈독히 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이유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군부대 위문이 방문의 목적이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사건이 있어서 소통이 일절 끊기지 않았나?"라며 "박근혜 정부 중후반에 (UAE쪽에서) 인정할 만한 파트너십이 느슨해졌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쪽은 왕정국가의 특성상 느슨한 파트너십만 가지고도 양국관계가 힘들어질 수 있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UAE는) 그런 걸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고, 그걸 복원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중동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간 통화도 했지 않나"라며 "그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특사가 가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왕정국가 특성상이라 그렇다는 얘기는 이해가 안된다'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 관계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쪽 정치문화가 최고지도자들끼리 파트십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게 서운했다는 거지. 박근혜 정부 초기까지는 좋았는데 (중후반에 들어서) 그게 느슨해졌다. 느슨해진 관계 복원이 (임종석 비서실장 UAE 방문의) 주목적이야."

하지만 기자들은 "이전 정부에서 서운한 것이 있어서 풀러 갔으면 알리고 싶지 않나?"라며 "지금 정부 때문이 아니라 전 정부 때문이라면 더 알려주고 싶어할 거 아니야? 뭣 때문에 소원해졌는지 왜 말해주면 안되는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원전이 아니라고만 하지 뭐라고는 안 하지 않나?"라는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이 관계자는 "안 되는 거를 어떻게 브리핑하나?"라며 "원전문제에 끼워 맞추면 해법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방문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원전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시기 UAE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과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양국관계를 유지, 관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임 실장이 UAE를 방문했을 때 그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청와대의 태도가 의혹을 더욱 키우는 형국이다.


태그:#임종석, #UAE 방문 논란, #UAE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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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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