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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얼마예요?"
"가격표 붙어있어요."
"죄송한데요, 제가 눈이 나빠서…"

옷 가게 점원이 다가와 가격을 알려주며 "입어보실래요?"라고 물었다. 언제부터인가 상표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가격이 안 보인다. 스마트폰의 밝기를 조금만 어둡게 해도 글씨가 흐릿하다. 글씨 크기를 키우면 되겠지만 그러면 왠지 나의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같아 악착같이 작은 글씨를 눈에 불을 켜고 본다. 그것도 휴대폰과 내 눈과의 거리를 조절해가며 초점을 맞춰야 가능한 일.

어떤 날은 얼굴이 그런대로 봐 줄 만하다가 한 달에 한 번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영락없이 눈 밑이 검어지고 피부는 푸석푸석, 잔주름은 자글자글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꿀이 피부에 좋다기에 얼굴에 잔뜩 발랐다가 머리카락까지 달라붙어 애를 먹기도 하고, 생고등어를 눈 밑에 붙이면 다크서클이 빠진다는 말을 패션 잡지에서 보고 따라했다가 비린내 때문에 온 식구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다크서클이 좋아졌는지는 현미경으로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고, 호들갑 떠는 가족들을 향해 인상을 쓰고 있었더니 미간에 주름만 더 깊어진 것 같다.

 미용시술(자료사진)
미용시술(자료사진) ⓒ flickr

물론 피부과에 가보기도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셋이 갔다. 친구들이 상담받을 때 그냥 옆에 앉아만 있었다. 의사는 친구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몇 가지 시술을 한꺼번에 받는 패키지를 권했다. 보톡스와 물광주사를 섞어 얼굴 전체에 주입하는 일명 '동안주사'와 레이저 시술, 피부마사지를 한꺼번에 받는 상품이란다. 얼굴에 광이 좔좔 흐른다는 말에 솔깃했다. 더군다나 셋이 같이하면 10%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여배우들은 다 맞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할인이란 말에 친구들이 눈빛으로 내게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한 달 동안은 '광'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얼굴색이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드는 전기고문에 가까운 레이저 시술과 바늘지옥에서나 경험 할 것 같은 얼굴 전체에 촘촘히 놓는 주사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50만 원 투자해서 그 고통을 견뎠지만 그에 비해 효과기간은 너무 짧다.

그래도 귀는 잘 들린다. 문제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이다. 다행인 건 친구들도 다 고만고만해서, 선문답처럼 서로 알아듣고 각자 해석해 대화가 이뤄진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외국인들이 그럼에도 말이 통하는 경지랄까? 나중에야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가끔은 바보들끼리 얘기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메멘토>란 영화에서 주인공은 단기 기억상실에 걸려 자신의 기억을 문신, 사진, 메모로 남긴다. 요즘 나에게 절실한 것들이다. 리모컨을 들고 리모컨을 찾으러 다니는 건 예사다. 외출할 일이 있어 차를 몰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가는 중간에 어디 가는지 깜빡하고 습관처럼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로 한 내 친구는 지난여름 다급히 전화해서 브래지어를 깜빡하고 안 입고 나왔다며 아직 출발 안 했으면 하나 챙겨 나오라고 내게 부탁했다. 속이 살짝 비치는 실켓 블라우스에 노브라라니. 항상 나보다 한 발 더 나가서 나의 실수를 묻히게 하는 좋은 친구다. 개그에서나 나오는 일들이 일상이 됐다. 친구들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하면 너도나도 더 강한 스토리가 줄줄 나온다.

청춘이 가고... 자유가 왔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건 아마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건 아마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 flickr

어느덧 40대 후반. 청춘은 지나가고 그 끝자락에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붙잡고 있다.  백세 시대임을 감안하면 아직 50세 안쪽이니 전반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낼 걸 생각하면 아무리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짖어 봐도 찬란한 청춘이란 게 아득해지곤 한다.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때의 상실감과 4로 바뀔 때의 좌절감을 잊지 못한다. 이제 세상 다 산 늙은이가 된 것 같아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도 더 캐주얼하게 입고 머리도 최신 스타일을 따랐다. '어머 40대로 안 보여요'라는 말을 듣는 게 좋았고, 그러고 싶어 애썼다. 하지만 고려 시대 우탁이 쓴 <탄로가>의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지름길로 달려오는 나이를 어쩔 수 없다.

다행인 건, 청춘이 가고 나니 자유가 왔다. 20대에는 직장생활 하느라, 30대에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느라, 40대 중반까지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팽팽하기만 하던 삶의 장력이 느슨해졌다. 아이들은 20살 전후가 됐고, 더 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내 시간이 많아졌다. 관심 있던 수업에 참여하고 공연을 보며 가족 아닌 친구들과 여행도 다닌다. 청춘과 자유를 맞바꾼 것 같다.

고진감래라더니 지금 내게 주어진 이 황금 같은 시간이 너무 좋다. 아직은 무릎이 아프지 않아 맘껏 다닐 수 있고, 조금은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 '50대 전후의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게는 절대 오지 않을 그런 나이랄까. 그런데 그런 나이가 되고 보니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눈이 좀 침침해도, 자구 뭘 까먹더라도 난 청춘이 한창일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름진 얼굴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서 손대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물 흐리지 않게 되도록 가지 않으며, 나이에 맞은 옷을 입고, 오십이 넘으면 미니스커트가 롱스커트로 바뀐다거나 등산복이 일상복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수렴동계곡의 붉은 단풍
수렴동계곡의 붉은 단풍 ⓒ 이홍로

단풍은 영양분이 많을수록, 일교차가 클수록 더 선명하게 색이 물든다고 한다. 나도 건강, 가족, 취미, 친구. 경제력 등을 영양분 삼아, 앞으로 수없이 다가올 일교차가 큰 삶에도 의연히 견뎌 마침내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고 싶다.


#가을#단풍#청춘#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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