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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순례길
▲ 갈림길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순례길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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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5시
비가 올 때 주의해야 할 점

점심시간 휴식시간을 통해 재충전하고 다시 힘을 내서 걷기 시작한다. 비에 젖은 몸을 잠시나마 말릴 수 있었고 비도 그쳐서 오전보다 걷기 좋았다. 땅이 많이 젖어 있어 걸을 때 마다 질퍽질퍽 거리고 신발에 흙이 계속 묻어 걷기 불편했지만 다행히 경사가 높은 산이 없어서 감사한 날이다.

산을 오를 때 비나 눈이 많이 오면 꽤나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첫 날 코스인 피레네 산맥은 폭설이 내릴 때 폐쇄된다. 물에 젖은 땅이 미끄러워 위험할 뿐만 아니라 추위 때문에 신체온도가 내려가 위험하니 날씨를 꼭 잘 알아봐야 한다.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점은 쉴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길가에 앉거나 가방을 배게 삼아 누워서 넓은 하늘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쉴 수 있지만 비가 올 때는 꿈 같은 이야기다. 게다가 같이 걷는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없어 심심하게 계속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화는 할 수 없었으나 곁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큰 힘이 됐다. 피레네를 첫 날 넘을 때만 해도 첫 날이기에 친한 이들이 없었다. 경사가 높고 눈보라가 치는 눈길을 걸을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친한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길에 적응도 됐다.

포도밭과 설산
▲ 설산 포도밭과 설산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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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의 무게

물에 젖은 흙길뿐만 아니라 위에서 짓누르는 가방도 우리의 발걸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허나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방이 아닐까?~ 순례자에게 가방은 움직이는 집이다. 800km를 한달여 동안 걷는 이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다. 옷가지는 기본이고 사람에 따라 가이드북이나 카메라 노트북 그리고 침낭 등 다양한 물품들이 있다.

기온 관련해선 별로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추위는 무거운 침낭을 들고 다니는 것 보다 저녁에 추위를 참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침낭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큰 후회를 했다. 그리고 장갑을 두 켤레를 가지고 왔다가 따뜻해지는 날씨를 보고 더 이상 짐만 될 것 같아 버렸는데 다시 날이 추워져 후회하는 중이었다.

특히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맨손으로 스틱을 잡고 걸을 때 계속 비에 계속 젖었다. 비를 막기 위해 바람막이 소매를 길게 빼 손을 최대한 가려봤지만 손이 어는 것만 같았다.

이 때 이 사건이 아쉬움에 남았다.

비가 잠시 그쳐 쉬는 중
▲ 해인이 비가 잠시 그쳐 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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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의 가방 정리

같은 학교 다니는 동생이자 첫 해외여행으로 산티아고순례길을 걷겠다고 나선 당찬 20살 해인이의 별명은 가오나시*였다. 종원이가 지어준 이 별명은 귀여운 해인이와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가오나시와 자세가 비슷해 붙여진 별명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요괴 캐릭터)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잘 걷는 해인이. 오전이 지나 오후가 될 때쯤 무거운 가방 때문에 가방이 등에서 떨어져 덜렁덜렁했다. 해인이는 힘을 내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어느 날 해인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심을 한다. 바로 필요 없는 물품들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었다. 침낭은 그녀가 갖고 다니기에는 꽤나 버거웠다. 부피가 큰 장갑을 처분한다. 처음엔 침낭이 없는 나에게 판매를 시도했다.

참신했다. 순례길은 한달 여 동안 이어진다. 화폐와 교환하는 매매가 아니라 순례자끼리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거나 판매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제원리가 생각났다. 과거 순례길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해인 : 오빠 ~ 침낭 없으니까 제 꺼 살래요?~ ( 울산사투리 )
충만 : 어라 생각 좀 해볼게~

마침 필요했던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침낭을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추위를 택했다. 갖고 있는 옷으로 추위를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해인이는 결국 알베르게에 필요 없는 짐을 놓고 가기로 하며 다른 물품들은 오빠들이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이 때 방수 장갑도 있었는데 나는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 봄이 오고 있으니 날은 따뜻해 질 것이며 장갑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대신에 해인이가 지니고 다니던 스페인어 회화책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매일 조금씩 공부하면 언어 실력도 늘고 시간도 때우기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짐이 돼버렸다.

오늘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너무 시려서 결국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비가 더 오면 이런 날씨에 손이 얼 것만 같아서 장갑을 살까? 생각하며 걸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목적지인 나헤라에 우리는 도착했다. 비가 오면 딱 하나 좋은 점. 쉴 수도 없고 빨리 비를 피하고 싶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냥 걸을 때는 시속 4~5km 정도로 걷는데 비가 올 때는 6km가 넘는 속도로 걷기도 한다.

나헤라까지 1km
▲ 표지판 나헤라까지 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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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분 좋을 때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

추위를 뒤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나헤라에 도착 1km를 남겨뒀다. 넓은 들판과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길은 즐겁지만 어떨 때는 숙제와도 같다. 오늘의 목적지까지 대략 몇 km, 몇 시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지 대충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아본다. 다른 순례자들에게 어디까지 가는지 오늘은 무슨 특별한 장소가 있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며 정보를 교환한다.

오후에 오늘 하루의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오늘 숙제를 끝낸 것만 같은 해방감과 성취감이 동시에 머리속에 든다. 다들 수고했다면서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서로 이야기 나눌 때는 정말 행복하다.

도착하기 1,2km 전에는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는데 큰 도시는 중심부까지나 알베르게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이 때 시간은 왠지 모르게 생각보다 더 걸린다. 하지만 목적지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발걸음은 가볍다.

알베르게에 짐을 놓고 시내 구경
▲ 종원 알베르게에 짐을 놓고 시내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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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헤라 5~7시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것이다. 비좁은 방에서 탈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나?~오늘 더 이상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해방감을 느낀다.

각자의 침대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을 때 정말 큰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다 함께 시내 중심으로 향했다.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남았는데 바로 저녁식사!~그리고 마을 구경이다.

마트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마트가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물가가 싼 스페인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 먹을 양은 정해져 있고 많이 구입한다 해도 내일 걸을 때 짐이 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만 구입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준택이와 종원이가 자주 한국 음식을 만들었는데 오늘은 카일과 플로르가 저녁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주로 돈을 걷어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한 사람당 적은 비용이 들었고 양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선호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10유로 정도는 필요한데 만들어먹으면 그 날 메뉴에 따라 3~5유로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마트가 있는 큰 도시에서는 거의 만들어먹었다.

방수장갑과 내일 먹을 아침과 점심을 구입했다
▲ 마트 방수장갑과 내일 먹을 아침과 점심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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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마트에 갔다가 성균이형, 준택이 그리고 우현이는 먼저 알베르게에 가기로 했고 나와 종원이 해인이는 스포츠 용품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나헤라는 11~12세기 나바라의 수도였고 약 8천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작은 마을은 아니기에 스포츠 용품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여기저기를 찾아봤지만 쉽게 찾지는 못했다. 짧은 스페인어로 길가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길을 걷던 행인 한 분이 위치를 가르쳐줬고 우리는 가게 안에 들어갔다. 나와 종원이는 장갑을 둘러보고 있었고 해인이는 점원에게 부탁해 저번보다 가벼운 침낭을 찾아 구입했다. 방수장갑은 40유로였는데 성격 좋은 종원이는 점원에게 5유로를 깎아냈다.

나는 살까 말까 계속 고민이었다. 날씨가 분명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장갑이 필요할까?~란 생각부터 시작해서 35유로면 배부르게 밥을 몇 번이나 먹을 수 있는 돈인데 과연 합리적일까 등등 고민을 하다가 결국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정말 손이 시려서 오늘 같은 날씨에는 추위를 참는 것보다는 돈을 투자해서 손을 보호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장갑은 이번 말고도 한국에서 등산할 때나 자전거 탈 때나 겨울에도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각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호스피탈레로가 저녁 식사 전 노래를 가르쳐줬다
▲ 나헤라 공립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로가 저녁 식사 전 노래를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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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10시

날에 따라서 외식을 할 때면 밤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성당이나 교회에서 미사나 예배에 참여를 하는 날도 있지만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면 알베르게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오늘은 카일과 플로르가 파스타를 준비했다. 게다가 와인으로 유명한 리오하 지역이니 리오하 와인을 준비했다. 알베르게에서 봉사하는 관리자 Jose 호스피탈레로도 함께 저녁식사에 참여했다. 그는 식사 시작 전 우리에게 식전 기도같은 것을 가르쳐줬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테이블을 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고 나는 스페인어를 능숙히 하지는 못해서 많은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친절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저녁식사는 배로 즐거웠다.

친구들이 만든 파스타도 아주 맛있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아침과 점심에 힘든 길을 걸었을 때 그 날 함께 한 사람들과 하는 저녁시간은 잊을 수 없이 달콤했다.

▲ 호스피탈레로 Jose 나헤라에서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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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카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 알베르게 게시판 프랑카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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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수업

우리 뿐만 아니라 오늘 알베르게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있어서 부엌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이 많아 활기찬 에너지 덕분에 즐거운 분위기였다. 식사가 끝난 후 10시까지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삼삼오오 떠들었다.

프랑카(Franca)는 15살 된 애완견과 함께 걷는 독일인 순례자였다. 걸을 때는 '라스'라는 애완견과 함께 주로 혼자 걸었고 중간 중간 쉴때나 저녁에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오늘은 프랑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 도착하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면 어떨까 생각해서 '반크'에서 한국어 스티커를 몇 장 가져갔다. 그리고 이유는 까먹었지만 '서소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순레자들이 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호스피탈레로가 아침 식사를 위해 테이블을 세팅해놨다
▲ 저녁10시 순레자들이 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호스피탈레로가 아침 식사를 위해 테이블을 세팅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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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꿈나라로 10시~7시

식사가 끝난 후 저녁 아홉시 쯤부터 다들 정리하기 바빠졌다. 테이블을 닦고 설거지를 시작해 10시전까지 마무리를 한다. 10시가 되면 모든 순례자들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시간은 숙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립알베르게는 저렴하게 숙소를 제공하는 대신 다수가 사용하기 때문에 지켜야 할 사항들이 조금 더 많고 사립 알베르게는 조금 더 자유롭고 호텔은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다른점이 있다.

모두들 정리가 끝나고 각자의 침대로 갔다. 잠시 잠들기 전 화장실에 가는김에 보니 봉사자가 내일 아침 식사를 위해 기본 준비를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과 함께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호스피탈레로와 봉사하는 가족들과의 헤어짐
▲ 다음날 아침 알베르게 앞 호스피탈레로와 봉사하는 가족들과의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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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헤어짐 그리고 또 새로운 하루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몸에 이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공립 알베르게는 8시 전에는 모두 떠나야 한다. 봉사자들은 순례자들이 떠난 후 뒷 정리를 하고 또 새로운 순례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Jose가 준비한 빵과 시리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이 때 나헤라 공립 알베르게는 Jose와 그의 부인과 딸이 봉사를 하며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떠나는 순례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족들의 친절함에 감사드리며 우리도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또 새로운 하루의 걸음을 시작하였다. 호세 아저씨 아직도 나헤아레 계시는지 궁금하네요?!~그 날 따뜻한 포옹 친절함 정말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Logroño - Nájera 29,0 km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알베르게, #나헤라, #물물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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