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 정말, 다 크고 다 길구나!'

시안성벽을 걸으며 생각했다. 여기는 시안. 쑤저우에서 15시간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 중심부로 들어왔다. 쑤저우가 그 옛날 기품 있는 예복을 입은 귀족 같았다면, 시안은 견고한 갑옷을 두른 늠름한 장수 같다.

쑤저우를 떠나며 '이제 고대 도시는 됐어' 하는 맘이었지만, 시안역을 나서자마자 '우와, 여긴 또 다르네?' 하며 호기심이 불끈 솟았다. 눈 앞의 거대한 구조물이 600년을 훨씬 넘은 '시안성벽'인 건 다음 날 알았다.

시안역 앞 시안성벽
 시안역 앞 시안성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시안성벽 위다. 전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성벽은 직선이 아닌 사각형이다. 총 길이 약 15킬로미터, 높이 12미터, 너비는 차 두 대가 족히 다닐 정도. 이런 구조물이 도심 한가운데 있고 여전히 실용적 가치가 있음이 놀랍다. 동서남북 네 개 문 중에 남문으로 올라왔다. 입장료는 54위안.

성벽을 걷는 기분이 오묘하다.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 초기인 1370년 경 재건해 수백 년에 걸친 대공사의 결과물. 그것만도 동시대 사람 전부가 최소 6번 태어나 죽었다를 반복하는 시간인데 2004년에 1400여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조각이 발견되었다.

시안성벽 위
 시안성벽 위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곧바로 자전거 대여소가 보였다. 2시간 기준 1인용 자전거는 45위안, 2인용 자전거는 90위안. 하지만 '웬 자전거?' 하면서 가볍게 무시했다. 중국 물가 대비 입장료가 꽤 비싸다 싶었는데, 대여료가 그것에 맞먹고 무엇보다 천천히 걸으며 성벽 안팎을 자세히 봐야지 했다.  

하지만, 무지와 자만은 여행(=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자전거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고, 특히 대여 시간이 2시간인 것에 주목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때만 해도 나는 시안성벽의 실체를 몰랐던 것!

성벽 위 자전거 대여소
 성벽 위 자전거 대여소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1시간도 채 안 걸었을 때다. 목이 마르고 추웠다. 처음 자전거 대여소와 함께 지나친 이동식 카페 이후 먹거리 파는 곳을 못 봤다. 게다가 한낮 자외선과 바람을 피할 곳도 없다. 내려가고 싶다고 맘대로 내려갈 수도 없다. 왜? 동서남북 문이 네 개라 하지 않았나.

조금 더 걸어가자 다행히 실내 박물관이 있었다. 1400년 전 쌓은 성벽 조각이 전시돼 있는. 덕분에 몸도 녹이고 화장실도 갔다. 용기를 내서 다시 밖으로. 남문에서 서문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양옆으로 뻗은 길을 보니 난감하다. 하지만 슬슬 오기도 발동했다.

태양도 바람도 피할 길 없는 성벽 위
 태양도 바람도 피할 길 없는 성벽 위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결국 성벽에서 내려온 건 5시간 후. 오후 2시경 남문에서 출발, 서문을 지나 해질녘 북문으로 내려왔다. 정확히 성벽의 절반(ㄷ)을 돈 것. 그 사이 자전거 대여소가 몇 개 더 있었지만 타지 않았다. 서문에선 잠깐 고민했지만 지나쳤다. 중간에 매점을 발견, 물을 마셨기에 가능했다.

성벽 위에선 도시의 변화상을 볼 수 있었다. 남문 구간은 성벽을 경계로 왼쪽은 첨단 기술과 자본이 집중된 화려한 건물들이, 오른쪽엔 과거를 붙들어 놓은 듯한 전통 가옥들이 있다. 서문부터는 몰개성한 아파트가 급격히 늘고, 나머지 구간을 너절한 판자촌이 차지하고 있다.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여유로이 오가며 풍광을 감상하고 있지만, 과거 누군가들은 이곳에서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 벌어진 다리 난간 사이로 총구를 겨누고 화살을 던지기도, 또 그것에 맞아 아프게, 슬프게 죽어갔을 나와 같은 존재들…….

이 슬픔은 며칠 후 그 유명한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면서 극대화됐다.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그것들을 직접 만들었을 터. 어마어마한 규모와 정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극소수 인간의 광기어린 폭력에 의한 노동의 산물임을 기억하니 뜨악해졌다.

병마용
 병마용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밤이 되면 고성은 변신을 한다. 이웃한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조명옷을 입고 화려하지만 천박한 쇼에 동참하는 것. 숙소 옆 술집 문 앞엔 가짜 병마용이 삐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 날 밤산책을 하면서, 문득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올랐다.

시안성벽이 천 년 넘게 산 '도민준'이라면? 성벽을 향해 레이저를 쏘아대는 백화점은 '천송이'? 술집의 병마용이 과거 전쟁통에 죽은 어느 젊은이의 환생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저속하게만 보이던 밤의 풍경이 싫지 않았다. 누군들 엄숙하고 고독한 삶만을 바랄까 싶어서.

밤의 시안성벽
 밤의 시안성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어딘가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할 땐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지난 2016년 11월 9일부터 세 달간의 대만-중국-베트남 여행 이야기입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



태그:#시안성벽, #서안성벽, #중국여행, #별그대, #도민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