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과 배려가 어째서인지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람은 안 불쌍하냐', '개 챙길 여력이 있으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도와라' 하고 따지고 들면 사실 답 없는 논쟁만 이어질 뿐이다. 먹을 것 없어 굶는 어린아이를 돕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또 어딘가에는 말 못하는 가엾은 동물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용기 있는 도움을 그저 사람이냐 동물이냐 하는 이분법으로 간단히 판단해버려도 되는 걸까.

경남 양산의 서현숙씨(60)는 벌써 18년 동안 혼자 힘으로 100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을 돌보고 있다. 개인이 하는 일이라 정기 후원자도, 봉사자도 없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결코 이렇게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100여 마리의 유기견들
 100여 마리의 유기견들
ⓒ 서현숙

관련사진보기


11년간 매일 식당 일로 번 돈을 유기견들에게 

집이 100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의 보금자리가 되기까지, 그 시작은 18년 전 우연히 남동생이 맡긴 강아지 한 마리였다고 한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동물과의 교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버려진 개나 길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키우다가 보신탕집에 팔아 잡아먹으려는 개를 불쌍해서 돈 주고 데려오기도 하고, 주인이 야반도주하며 버려진 개들, 키우던 분이 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개들, 번식업자들이 키우다가 나이 먹고 쓸모없어져 길에 버린 개들까지... 각자의 사연은 끝도 없죠. 그렇게 데려온 개들 중 소형견은 그나마 입양 가기도 하지만, 큰 진돗개나 믹스견들은 거의 입양 가능성이 없어서 제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큰 개를 아파트에서 키울 수도 없고 주택들도 옆집 소음 문제 때문에 분란이 생기고 하니 갈 데가 없더라고요. 제 손을 떠나면 또 식용견이 될 확률이 높으니..."

입양 가지 못할 것 같은 개들은 평생 품는다고 생각하며 거둔다. 식용견이 되거나 안락사 되는 길을 막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책임지지 못하고 버린 그 수많은 동물을 개인의 힘으로 살리는 것이 얼마나 여러 가지 희생을 감내하는 일인지, 숫자로 보면 더 쉽게 와 닿을 것이다.

사료값만 해도 한 달에 약 150만 원이 들어간다. 더 문제는 사료보다 아픈 동물들의 비싼 치료비다. 처음에는 집에서 키우던 개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며 산 중턱에 땅을 빌려 견사를 짓는 데도 2천만 원을 훌쩍 넘는 돈이 들어갔고, 여태까지 식당에서 11년간 매일 같이 일해서 번 돈과 원래 있던 재산까지 개들에게 전부 쏟아붓고 있단다. 사료 외에도 배변 패드, 휴지, 고양이 모래 등 생필품은 늘 부족하다.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기는 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가능한 제 손으로 벌어먹이려고 하고요. 그런데 가끔 개 키워서 돈벌이 되느냐고 하는 말을 들으면 참 속상하지요. 그런 거였으면 지금까지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18년 동안 돌봐온 유기동물들
 18년 동안 돌봐온 유기동물들
ⓒ 서현숙

관련사진보기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견사에서 먹고 자며 거의 모든 생활을 하다 보니 춥고, 털도 날리고, 거의 '사람이 아니라 짐승 수준'이라고 한다. 어쩌면 적절한 브레이크 없이 너무 무리하게 온 건 아닐까? 이미 맡은 동물들을 돌이킬 수 없어 그 존재가 무겁고 힘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서 씨는 단호하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제가 도 닦은 사람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자기한테 아무 해가 없는데도 동물을 함부로 대하며 괴롭히거나 버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동물들은 스스로 보호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환경에서 살 수도 있고, 학대받거나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누군가는 버려진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이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겠죠. 심지어 저를 정신 이상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도 전 후회 안 해요. 저 같은 사람 때문에 한 마리라도 더 살 수 있으니까요."

도시에서 편리하게 즐기며 살았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 이 피곤하고 힘든 길이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걸어온 고단한 길은 결국 생명을 위한 가치 있는 길이기에. 적어도 이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온 노력을 바쳐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죽을 수도 있는 냉혹한 길 위로 키우던 동물을 간단히 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도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생명의 존엄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생명이란 살아있을 때 가장 아름답잖아요."



태그:#유기견, #유기동물, #강아지, #보호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