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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목록 편방자원비
 전서목록 편방자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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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실에는 전서, 예서, 해서, 초서로 된 비석이 골고루 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국 서법 예술의 변화발전을 한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전서체 비석으로는 전서목록 편방자원비(偏旁字源 碑)와 전서 천자문비가 있다. 여기서 전서목록 편방자원이란 전체 글자를 부수와 획에 따라 분리해 만들어진 글자의 원천을 전서로 표기한 목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편방이란 한자를 이루는 기본단위가 된다.

이들 비석은 송나라 초 몽영(夢英)화상이 당나라 이양빙(李陽冰)의 서법을 모방해 만들었다. 이곳에 소개되고 있는 전서 편방자원은 540자다. 그리고 전서 밑에는 해서로 다시 작게 표기했다. 그러므로 전서 교육용 비석으로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제4실에서는 북송 시기 유명한 서법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소동파(蘇東坡, 1036~1101), 황정견(黃庭堅, 1045~1105), 미불(米芾, 1051~1107), 채경(蔡京)이다. 

제4실에서 송나라 시대 최고 시비를 만나다

탁본 중인 황정견의 칠언시비
 탁본 중인 황정견의 칠언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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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만나는 비석이 동파진적(東坡眞蹟)이다. 이 비석은 소동파가 붓으로 쓴 <귀거래사권(歸去來辭卷)>을 비석으로 만든 것이다. 동파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으며 은퇴 후의 한적한 삶을 늘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글과 서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무소유와 무위자연이다. 그리고 말년으로 갈수록 동파의 작품은 자유분방해진다. 그것은 마음이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동파진적도 행서체로 그의 자유분방한 필법을 느낄 수 있다.
 
황정견(黃庭堅) 칠언시비 역시 황정견의 시서를 5개의 돌판에 새긴 시비다. 두 편의 칠언율시로, 장안의 자연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묘사했다. 자유분방한 행서로 쓰였으며, 마음의 눈을 통해 깊이를 더하는 글씨를 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글씨에서는 환골탈태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석은 청나라 강희제 때인 1697년 만들어졌고, 1853년 복각되었다.

탁본 중인 미불의 오언배율
 탁본 중인 미불의 오언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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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불(米芾)의 오언배율도 이곳에 있다. 4개의 판석에 행서로 내려쓴 글씨가 호방하다. 골격과 근육이 잘 갖춰졌으면서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장안 근교를 순시하는 호화로운 황제의 진용(陣容)과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 외 채경의 시판이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살펴보질 못했다. 그것은 이들 시판을 탁본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탁본을 위해 곳곳에서 시비 또는 시판에 한지가 붙여지고 먹이 칠해지고 있었다. 묵향이 진동하고, 비석 주위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제4실과 제5실에서는 이처럼 탁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그 덕에 탁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탁본을 위해 칠해진 먹 덕분에 글씨를 더 정확히 읽을 수 있기도 했다. 나는 이제 제4실 북쪽 벽 앞에 있는 탁본 판매점으로 간다.

비림 탁본 진품 매대
 비림 탁본 진품 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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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비림 탁본 진품 매대라는 한글이 적혀 있다. 이곳 비림에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비석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이 한자문명권으로 한문 비석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서예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 이들 책과 탁본을 많이 구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초등학교에서 서예를 배웠고,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서예는 중요한 취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탁본 후 전시된 시서화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중 먼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공자상이 보이고, 현장상이 보이고, 신선도도 보인다. 복(福)자와 수(壽)자도 보인다. 관중팔경 중 태백적설(太白積雪)을 시로 쓰고 그린 서화도 눈에 띈다. 이들 서화를 중국사람들은 장시화(藏詩畵) 또는 시의화(詩意畵)라고 부른다. 그림은 그림인데 시를 담거나, 시에 의미를 부여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관제시죽(關帝詩竹)도 시서화 중 하나다.

관제시죽
 관제시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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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절개를 대나무로 표현하고, 그것을 시를 통해 풀어쓰는 방식이다. 비석의 윗부분에 전서로 관제시죽이라고 썼다. 비석의 상단부에 대나무 잎을, 하단부 왼쪽에 대나무줄기를 표현했다. 그리고 하단부 오른쪽에 5언절구 시를 새겨 넣고, 왼쪽 끝부분에 누가 언제 비석을 세웠는지를 적어 넣었다. 이 비석은 청나라 강희제 때인 1716년 한재(韓宰)가 임모(臨摹)해서 비림에 세웠다. 임모란 원작을 본떠 새롭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 새긴 오언절구는 관우가 조조(曹操)에게 포로가 된 후, 그의 회유에 대꾸하는 형식으로 쓴 시다. 몸은 비록 조조의 진영에 있지만, 마음은 한나라 황실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조조는 끝까지 유비를 위해 절개를 지켰다. 그리고는 다섯 개 관문(五關)을 통과 다시 유비 진영으로 돌아간다. 이 시에서 동군은 조조를 말한다.

동군의 후의에 감사하고 싶지 않고                    不謝東君意
단심으로 푸르른 이름을 세우려 하네.                丹靑獨立名
외로운 잎새의 담담함을 싫어하지 않아              莫嫌孤葉淡
마지막까지 오래도록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리.    終久不彫零

공자상 탁본
 공자상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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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향교에서 자주 보던 공자상은 마침 탁본을 하고 있다. 이 비석은 청나라 옹정제 때인 1734년 9월에 만들어졌다. 강희제의 다섯 번째 딸인 화석(和碩)공주가 공자인 문성왕(文聖王)을 존경해서 문묘를 친히 알현하고 그리게 한 것이다. 그래선지 낙관에 한자와 함께 여진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위쪽에는 지성선사상(至聖先師像)이라는 전서가 있다. 공자에게 내린 시호가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다. 이를 토대로 공자를 지성선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성선사상이라는 글씨 아래로 관복을 착용한 공자의 반신상이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이마에 주름이 가득하고 수염을 기른 노년의 지적인 모습이다.

관중팔경 살펴보기

관중팔경도
 관중팔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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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 중 이야기 거리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비석은 주집의(朱集義)가 그린 관중팔경도(關中八景圖)다. 관중이란 중국 고대 중원(中原)지방을 말하는 것으로, 동쪽의 함곡관(函谷關)으로부터 서쪽의 대산관(大散關)까지 300㎞에 이르는 넓은 평야지대를 말한다. 이 지역에는 명승고적이 많은데, 그중 8군데를 골라 팔경이라 하고, 그것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비석은 청나라 강희제 때인 1680년에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2.83m다.

관중팔경 개념은 명나라 때 처음 생겨났고, 청나라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관중팔경은 화악선장(華岳仙掌), 여산만조(驪山晩照), 파류풍설(灞柳風雪), 곡강유음(曲江流飮), 안탑신종(雁塔晨鐘), 함양고도(咸陽古渡), 초당연무(草堂煙霧), 태백적설(太白積雪)이다. 이 중 여산, 위수(渭水)의 지류인 파하(灞河), 대자은사 근방의 곡강지(曲江池), 안탑, 함양은 이번 여행에서 지나가거나 찾아보게 되며, 서악(西岳)인 화산(華山), 종남산(終南山) 초당사(草堂寺), 진령산맥(秦嶺山脈)의 주봉인 태백산에는 갈 계획이 없다.

화청궁에서 바라 본 여산
 화청궁에서 바라 본 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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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산 중 여산은 서안 동쪽 25㎞ 지점에 있고, 화산은 서안 동쪽 120㎞ 지점에 있다. 태백산은 서안 서쪽 120㎞ 지점에 있다. 종남산은 서안 남쪽 45㎞ 지점에 있다. 여산은 화청궁(華淸宮)이 있어 유명하고, 화산은 기이하고 험준한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화산은 다섯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남봉인 낙안봉(落雁峰)이 해발 2155m로 가장 높다. 태백산은 진령산맥의 주봉으로 높이가 3767m나 된다. 종남산은 도교의 발상지로 유명하며 해발이 2604m이다.

관중팔경 중 화악선장은 화산의 동봉을 의인화한 표현으로, 단애의 모습이 거인의 손바닥 같아 다섯 손가락까지 보일 정도라고 한다. 여산만조는 여산에 비치는 석양을 말한다. 파류풍설은 장안 동쪽을 지나는 파하의 늘어진 버드나무에 눈보라 몰아치는 풍경이다. 친구를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감정 표현이다. 곡강유음은 곡강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다. 

태백적설도
 태백적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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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탑신종은 안탑에서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다. 함양고도는 위수를 건너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들어가는 하구의 모습을 말한다. 이곳은 진나라 시대부터 가장 중요한 나루로, 오래된 다리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초당연무는 종남산 초당사에 피어오르는 아침의 짙은 안개를 말한다. 초당사는 구마라집이 불경을 최초로 한역(漢譯)한 절로 유명하다. 태백적설은 말 그대로 태백산에 쌓인 하얀 눈이다.


태그:#비림박물관, #송의 4대 서법가, #관제시죽, #공자상, #관중팔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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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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