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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수원화성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과 문화유산 답사객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원화성을 소개하는 안내 카다로그에도 1796년에 축성했다는 사실과 대표적인 건축물 몇 개와 정조와의 관련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의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현재 수원화성의 겉모습을 보는 데 만족하고 있다.

수원화성에 대해 더 깊이 알고자 하면 당연히 축성기록인 화성성역의궤를 보게 된다. 수원화성을 수십 번 돌면서 답사를 하다보면 성벽의 돌덩이 모습과 성곽 건축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쯤 되면 화성성역의궤의 기록과 도설이 실제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일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기록과 실제모습이 왜 다른지 밝히거나 알아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화성성역의궤 '포루 외도'
 화성성역의궤 '포루 외도'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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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의 '장안문 외도'와 '팔달문 외도'를 보면 옹성 홍예위에 오성지는 보이지만, 그 위에 누각이 보이지 않지만, 현재 수원화성 장안문과 팔달문 옹성 위에는 누각이 있다. 1831년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편찬한 '화성지'의 '북옹성', '남옹성'조를 보면 1824년 2간 누각을 옹성 홍예위에 세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런 사실은 일부 전문가들만 알고 있을 뿐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화성성역의궤 포루(砲樓)'편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대체로 5좌가 있는데 그 구조는 모두 똑같다. 3층으로 하여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 아래에서 한꺼번에 쏘게 하였다. 지대 위에다 벽돌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높이는 들보와 이어져 있고... 바깥 쪽 지대 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대포 혈석 2개를 놓았다.

좌우 면에도 사이에 3개의 혈석을 놓았다. 벽돌로 쌓은 공간 안에는 평지에서 위로 5척 되는 곳에다 벽에 의지해서 3면에 포판을 두르고 총혈 15개를 내었다. 또 포판을 두른 곳에서 10척쯤 위에는 3간 누판을 깔고 누의 위 3면에는 총안 15개를 뚫어 놓았다. 외면의 총안 위에는 또 전안 넷을 뚫었다. 좌우 면에는 위쪽 가까이 벽돌을 뚫고 판문 셋을 설치하였는데, 밖에는 짐승 얼굴을 그리고, 각각 전안을 뚫었다. 문 사이 벽면에도 쌍으로 전안을 뚫어 놓았다."

1920년대 전후에 찍은 수원화성 북동포루, 총혈, 총안, 전안의 수를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전후에 찍은 수원화성 북동포루, 총혈, 총안, 전안의 수를 확인할 수 있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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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 '포루 외도', '포루 내도', '포루 이도'와 1910~1920년대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동포루 흑백사진과 현재 복원된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北西砲樓), 서포루(西砲樓), 남포루(南砲樓), 동포루(東砲樓)를 비교해 보겠다.

화성성역의궤 '포루'의 설명과 '포루 외도' 그림의 내용 2곳이 다르다. 대포 혈석의 수는 정면 2개, 측면 3개, 총혈의 수 15개는 맞지만, 그 위에 있는 총안은 '포루' 설명에 있는 15개가 아니라 '포루 외도' 도설에 있는 21개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포루 정면에서 봤을 때 좌우는 동형이기에 좌우에 각각 8개, 정면에 5개가 있는 것이다. 총안 위에는 전안 넷을 뚫었다고 하는 '포루' 설명이 맞고 '포루 외도' 그림에 나오는 3개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축성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북동포루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원화성 북동포루의 복원된 현재 모습
 수원화성 북동포루의 복원된 현재 모습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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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포루와 동포루는 대포 혈석의 수는 5개로 맞고, 총혈과 총안 구분 없이 15개만 뚫어 놓았고, 서포루는 대포 혈석의 수는 5개로 맞고, 총혈과 총안 구분 없이 21개를 뚫어 놓았다. 남포루는 대포 혈석의 수는 5개, 총혈의 수는 15개, 총안의 수도 15개를 뚫어 놓아 '포루'의 설명과 일치한다. 북서포루는 대포 혈석의 수는 5개, 총혈의 수는 15개, 총안의 수는 23개를 뚫어 놓았다. 5개의 포루 모두 정면의 전안은 3개만 뚫어 놓았다.

북동포루와 북서포루의 지붕은 '화성성역의궤'의 '포루 외도', '포루 내도'에서는 우진각 지붕 형태이고, '화성성역의궤' 권6 재용 편에서는 추녀 2개, 박공 2개, 산방 4개가 소요된 것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바깥쪽은 우진각, 안쪽은 맞배지붕 형태를 한 것으로 추정되어 그렇게 복원을 했다고 한다.

수원화성 북서포루
 수원화성 북서포루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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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후에 북동포루를 찍은 흑백사진 2장과 북서포루를 찍은 사진 1장이 있다. 북암문 안쪽에서 찍은 사진에 북동포루 모습이 나오지만 지붕의 형태를 유추할 수 없고, 장안문에서 북동포루를 가는 중간, 현재 주차장 근처에서 북동포루를 찍은 사진에서는 포루 외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지붕의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지붕 안쪽이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화서문 밖 화서공원에서 찍은 사진에 화서문, 서북공심돈, 북서포루 모습이 나오는데 흐릿하지만, 바깥은 우진각, 안쪽은 맞배지붕의 형태로 보인다. 더 자세한 당시의 사진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화성, #북동포루, #북서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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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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