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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세월호 1차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3일의 청문회 기간 동안 총 29명의 증인이 참석한 채로 청문회는 진행되었다.

▶ 세월호 청문회 첫날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쇠 일관

세월호 청문회 첫날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의 모르쇠 일관이었다. 특히 목포해양경찰서 123정의 정장인 김경일씨는 퇴선명령을 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하였다. 다른 증인들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23정의 승조원인 박상욱 경장은 답변 과정에서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내려가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라고 답변을 하여 유가족들에 강력한 반발을 샀다.

한바탕 소동도 있었다. 해경 측 증인들의 답변을 지켜보던 세월호 의인 김동수(50)씨는 "너무 한 것 아니냐, 위증이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찔러 자해를 하였다. 결국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세월호 청문회 둘째 날
 
"투입과 잠수는 다른 의미"

세월호 2차 청문회 역시 초기 구조과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재난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은 당시 555명의 잠수사가 투입되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 '투입'과 '잠수'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16일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초기 8명의 잠수사가 투입한 것으로 보고 받았고 이를 숙지하고 있었지만 555명이라고 잘못 발표하는 것을 정정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구조인력을 부풀린 것은 "옳지 않았고, 최종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 세월호 청문회 셋째 날

 "계속 해주세요."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3차 청문회에서는 전날 참석 의사를 밝힌 이 전 장관이 참가하였고 심문이 진행되었다. 청문회가 길어지게 되면서 중재를 시도하였는데 이에 유가족들은 "이제 기회가 없으니 기회를 달라", "계속 해주세요"등의 요구를 하였다.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증인들을 향해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강력히 발언하기도 하였다.

결국 증인들의 모르쇠와 무책임한 답변을 뒤로한 채 세월호 청문회 3일은 끝나게 되었다. 한 유가족은 "그 얼굴들이 우리가 봤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사는 것 같은데 우리가 못 밝혀내도, 조금 늦게 걸리더라도,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하여, 결국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서명운동 당시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었던 수사권과 기소권이 결코 무리한 요구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강제성이 없는 조사에 증인들은 모르쇠와 책임 회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를 통하여 그동안 의혹으로 이야기되던 것들에 대해서 밝혀진 사실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청문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활동을 이어갈 특조위가 제대로된 진상규명을 해내길 바라는 바이다.


태그:#세월호, #청문회,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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