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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어른들도 못하는 일을 대단한 학생들이네"
"어린 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세상이 말세다."

각종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들이 시내 행진을 하고 있다.
 각종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들이 시내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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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어 격려해준다. 다른 쪽에선 손가락질하며 매몰차게 노려본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비는 엇갈렸다. 하루 걸러 내리던 눈비도 그쳤다. 하늘은 흐리지만 모처럼 따뜻하고 공기도 산뜻하다.

책가방 대신 피켓을 들었다. 노란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커다란 현수막과 스케치북을 높이 들었다. 학생들은 진실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고 한다. '세월호 속에 아직도 내 가족이 있습니다'란 소식지도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충남 공주·세종시 중·고등학생 20여 명이 5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신관초 교차로에 모였다. 손에는 각종 피켓이 들려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사와 경찰도 자리를 잡는다(관련기사: 여경 꿈꾸는 경주 여고생, 이민 대신 피켓 들다).

학생들이 든 스케치북에는 세월호 진실규명 촉구와 국정교과서 비난글이 가득하다.
 학생들이 든 스케치북에는 세월호 진실규명 촉구와 국정교과서 비난글이 가득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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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꾸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역사학자들과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딜 감히 5년의 정부가 오천 년의 역사를 바꾸려 하는가"

"먼 지랄들이여, 저, 저, 저"

각종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들이 시내 행진을 하고 있다.
 각종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들이 시내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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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할머니가 쏘아붙인다. 공주·세종 학생총궐기 대표를 맡은 김도현 학생이 외치는 구호를 참석 학생들이 따라 외친다. 

학생들은 '세월호는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역사 교과서는 당신의 것이지만, 역사는 우리 것입니다'라고 직접 쓴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은 참석 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역사학자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역사에 관심이 많다. 동생이 10살인데 이대로라면 동생은 왜곡된 역사를 배울 것이다. 많은 친구가 동참하고 싶어 했지만, 내일과 모래에 기말고사가 있어서 나오지 못했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무렵에 "청와대는 응답하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10여 명의 학생들이 따라서 동참했다. 터미널 입구 양쪽으로 나눠선 학생들은 국정교과서 반대와 세월호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으면서 구호를 외쳐나갔다. 한 아주머니는 "장하다"라며 손을 높이 치켜세웠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한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비난하다 경찰에 제지를 당하고 있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한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비난하다 경찰에 제지를 당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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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떠드느냐? 수학여행 가라고 대통령이 시켰냐? 시끄럽다, 왜 떠들어? 공주 사람하고 세월호하고 무슨 상관이냐? 공주는 양반 도시야, 지들끼리 모여서 해야지."

한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누가 시켰느냐?"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학생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서명을 받으면서 '세월호 아직도 내 가족이 있습니다'란 소식지와 노란 리본을 나눠줬다. 그때였다.

"집구석에나 가라, 씨X아, 야 공주바닥에서..."라며 학생들에게 달려들며 소리치던 중년의 덩치가 큰 아저씨가 경찰의 제지를 받으면서 물러났다. 같은 시각 김도현 학생이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웃는다.

다시 출발했다. 금강철교를 건너기 전 간식으로 빵 한 개씩을 나눠 먹었다. 사적 제1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을 바라보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세찬 강바람이 몰아치는 철교를 지나 공산성 잔디밭에서 김도현 학생은 학생 선언문을 낭독했다. 중간쯤 읽어 내려가다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공주·세종 학생총궐기를 도맡은 공주여고 1학년 김도현 학생이 공산성 잔디밭에서 학생선언문을 낭독하던 중 눈물이 터졌다.
 공주·세종 학생총궐기를 도맡은 공주여고 1학년 김도현 학생이 공산성 잔디밭에서 학생선언문을 낭독하던 중 눈물이 터졌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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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세종은 수도권이 아니라서 여러 사람이 한날 한시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이곳에 함께 모였습니다.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해서,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우리들은 스스로 우리들의 권리를 잊고 있거나 포기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학생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은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 올바른 역사를 배울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다양하게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우리들의 의견을 당당히 알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억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나가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이 다시 일어섰다. 마지막 코스인 산성시장문화공원까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세월호 진실규명', '국정교과서 반대'를 주장했다.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보호자 신분으로 공주교대 학생들이 뒤따랐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이날 집회는 오후 4시 30분 끝났다.

공주여고 2학년 김 아무개 여학생은 "혼자는 못했을 일인데 같이해서 용기가 생겼고 보람차다. 대통령이 혹시 오늘 기사가 나가면 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우리 작은 목소리의 시작이지만, 더 많은 친구가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시 신관초 교차로 건널목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충남 공주시 신관초 교차로 건널목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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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진행된 '학생총궐기'는 만 15세에서 만 18세의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 각지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날짜, 동일한 시간에 진행됐다. 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와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와는 다른 학생 중심의 총궐기이며 국정 교과서 반대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지난 11월 14일에 일어난 민중총궐기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비민주적인 정부의 대응에 분노한 많은 사람들이 SNS(트위터)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앞서 진행된 제1차 민중총궐기에 대하여 많은 학생들이 분노했다. 지방 학생들도 수도권처럼 뜻을 모으고 싶었으나 거리 및 학생이라는 신분 제약 때문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날 학생 총궐기는 학생들이 지방에서도 뜻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학생총궐기, #공주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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