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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지하철 1호선 온수역에서 성북 방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뒤쪽에는 오빠와 여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 둘이 있었는데, 과자와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 앞에 착 달라붙어 그 안을 뚫어질 듯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뭐지? 먹고 싶은데 돈이 없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계속 기다리는데,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화 연결이 잘 안되는 듯 보였습니다. 계속 통화가 안되는지 전화를 끊고는 "아유 정말"하며 자판기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툭툭 발로 차 보기도 하고 문을 열어 보려 해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다가가 "얘야, 왜 자판기가 돈을 먹었니?"하며 자판기 안을 바라보았더니, 돈을 넣고 과자 하나를 선택해 버튼을 눌렀는데 그 과자가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하고 이리저리 아이들 대신 저 과자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살펴보았지만 도대체 손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음악소리와 함께 지하철도 역사로 진입해 왔습니다.

그 아이는 여동생에게 "에이, 할 수 없다. 그냥 타자"며 손을 잡고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물론 저도 같이 그 지하철을 탔습니다. 아이는 지하철안에 타고서도 못내 아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지 연상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애, 아까 그 과자가 얼마니?" 

"천원이요"

"동생 사주려고 했던거야?"

"네"

"................"

아이들에게는 그 천원이 무척이나 큰 돈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뭔놈의 자판기 관리를 그따위로 해서 아이들이 빤히 눈앞에 보이는 과자를 보고도 그냥 버리고 갈 수 밖에 없게 했는지 내가 다 화딱지가 나려고 했습니다.

"다 제 운명이지요 뭐"

엉뚱한 아이의 돌발적인 말에 '피식'웃음이 났습니다.

'녀석,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데 그 아이가 불쑥 주섬주섬 가방에서 뭘 꺼내더니 저에게 카드 한 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시간되시면 여기 오실 수 있어요?"

"이게 뭐니?" 

"초대장이예요"

"뭔 초대장??" 
꼬마아이가 내게 준 초대장
 꼬마아이가 내게 준 초대장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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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내게 건넨 것은 '서울자유발도르프 빛의 바자회'라는 한 대안학교의 행사 초대장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발도르프학교가 뭐야?"  

"아, 그건요, 오스트리아 교육자인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된 학교인데요, 되게 좋은 학교예요" 

"일종의 대안학교니?"

"네.저는 6학년이구요, 동생도 같이 다녀요"

"이 학교는 어디에 있어?"

"부천에 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왜 이걸 나에게 주니?"

"착하신 분 같아서요"

자판기앞에서 쩔쩔맬 때 와서 관심을 보이고 도와주려 했던 것이 아이에게는 나름 내가 '착한 사람'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습니다. 생전 보지도 못한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행사에 초대하겠다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어, 아저씨는 서울에 사는데 부천에 자주 와"

"부천요? 와, 우리 학교도 부천에 있는데"

"그러네. 인연인가 보다 하하"

그러면서 아이에게 천원짜리를 꺼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까 속상했지? 이거 그 자판기에 넣은 돈 천원이니까 동생 뭐 사줘. 아저씨가 역에서 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안해서 주는거야"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극구 거절하였습니다.

"아니예요. 제 팔자죠. 진짜 괜찮아요. 대신 꼭 오세요. 저 연극도 하고 떡볶이도 팔아요"

아니, 자기가 날 언제 봤다고 그렇게 허물없이 마치 알고 지낸지 꽤 되는 것처럼 꼭 오라며 씨죽 웃는지 정말 당돌하면서도 해맑은 얼굴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래, 꼭 갈게. 너 이름이 뭐니?"

"허 윤이요"

"그래 허 윤..아저씨가 시간내서 꼭 가볼게"

"그래요. 아저씨 저 내려요 노량진이예요. 안녕히 가세요"

아이와 여동생은 저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는 지하철에서 내려 총총 사라져 갔습니다.

엉겹결에 전혀 관계도 없는 대안학교 바자회에 떡볶이 먹으러 가는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단 한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학교에 가서 연극도 보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한 아이와의 약속. 순수한 약속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꼬마아이가 준 초대장에 그려진 카드 그림
 꼬마아이가 준 초대장에 그려진 카드 그림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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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유발도르프,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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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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