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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지나온 청춘을 돌아보며 쓸쓸함과 우울을 호소하는 중년이 적지 않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하다.
 가을이다. 지나온 청춘을 돌아보며 쓸쓸함과 우울을 호소하는 중년이 적지 않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하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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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나를 울려요."

198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10월의 마지막 날마다 자연스레 읊조리게 되는 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올해는 이른바 '불금(불타는 금요일)' '화토(화끈한 토요일)'로 이어지는 주말이라 많은 수의 청춘남녀들이 10월의 끝자락과 가을의 절정을 즐길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라 할 이들은 가수 이용도, '잊혀진 계절'도 잘 알지 못한다.

경북 포항에 거주하는 50대 중반의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요즘 우울하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했다. 중년의 무기력감에 휩싸인 김씨는 "찬바람이 불어오니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괜스레 쓸쓸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탄식을 자주 쏟아낸다. 김씨에게 불금을 즐겼던 청춘은 이미 '잊혀진 계절'이 됐다.

사라진 젊음의 자리에 들어선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방치하면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함께 정신적인 방면의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신적인 치료' 방법의 하나가 바로 독서다. 특히 만산홍엽(滿山紅葉), 천고마비(天高馬肥)가 절정을 이루는 10월의 마지막 주말은 책 읽기에도 좋은 시점이다.

보수적 시인 서정주와 진보적 시인 고은... '가을의 서정' 노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노래한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은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던 청춘의 기억을 돌려준다.

깊어진 가을. 한 권의 책과 함께 하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어떨까?
 깊어진 가을. 한 권의 책과 함께 하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어떨까?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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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붉디붉은 단풍 사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도 선물할 것이다. 이 시는 가수 송창식이 매력적인 저음으로 노래해 대중과 더욱 친근해졌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고은의 '가을편지'도 10월의 마지막 날 읽기 좋은 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흩어진 날/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 드려요/낙엽이 사라진 날/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라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어(詩語)에서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본 작곡가 김민기는 '가을편지'에 곡을 붙여 노래했고, 시와 노래가 본래는 하나의 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로마시대 문장가 키케로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

10월의 마지막 밤과 함께 할 친구가 꼭 시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도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 박철화(50)씨는 찬바람 부는 가을밤의 허무함을 달랠 소설로 서정인의 단편 <강>과 황석영의 수작(秀作) <삼포 가는 길>을 추천했다.

"두 작품 모두 의도치 않은 외로움과 어려움에 직면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잊어서는 안 될 인간의 희망을 담담히 서술․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박 평론가가 두 작품을 '우울한 중년'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로마시대 빼어난 문장가 중 한 명인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했다. 2015년 10월의 마지막 밤이자 주말. 술과 음악, 춤과 흥청거림으로 보내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지만,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조용히 책 한 권을 뽑아드는 건 어떨지. 우울해진 영혼을 치유하며 청춘의 의미를 반추할 좋은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서정주, #우울증, #고은, #서정인,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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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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