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16일부터 3박 4일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南相馬市)에서 '방사선량 측정 활동'이 실시되었다.

미나미소마시는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10km에서 30km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사고 당시 대부분의 지역이 '경계구역', '계획적 피난구역' 등 원전재난구역으로 지정됐다.

이번 '방사선량 측정 활동'은, 시민단체 '체르노빌 지원·중부'가 원전사고가 일어난 2011년 6월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미나미소마(가시마鹿島, 하라마치原町, 오다카小高의 3개 구역)와 나미에마치(浪江町)를 중심으로 공간 방사선량을 측정, 지역 주민들에게 좀더 자세한 방사선량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해오고 있다.

"제염작업? 죄다 업자만 돈 버는 거라니까"

제염작업을 하고 있는 공사차량과 각종 중기들. 이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너무나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제염작업을 하고 있는 공사차량과 각종 중기들. 이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너무나 흔하게 접할 수 있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오다카구역의 주택 앞에 쌓여진 방사능 폐기물들. 이 곳에 내년 4월부터 사람들이 살게 된다.
 오다카구역의 주택 앞에 쌓여진 방사능 폐기물들. 이 곳에 내년 4월부터 사람들이 살게 된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체르노빌 지원・중부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난 1986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1990년, 일본의 주부전력(中部電力) 관할지역에 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당시 방사능 오염으로 우유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지의 아이들에게 분유 보내주기를 시작으로 현지 탐방을 통해 농지 재생작업, 의약품 보내기 등 지원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에는 이번 방사능 측정활동을 비롯, 현지에 방사능측정센터 설치, 농지재생 지원, 대체에너지 설치 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체르노빌 지원·중부'를 통해 참가한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이 2인 1조로 함께 차량을 이용하여 가로세로 500m를 하나의 블록으로 설정해 측정 활동을 실시했다. 눈길이 닿는 논밭마다 제염 작업을 마친 방사능 오염 물질이 들어있는 자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나, 커다란 담장을 둘러 임시 저장소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이 너무나도 일상화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이런 환경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니 우울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측정하는 과정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고가 일어난 지 4년 반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각 주택의 제염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왠일인지 같은 집 안에서도 마당, 지붕 등 장소를 따로 나누어서 제염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에이, 업자만 돈 버는 거지, 뭐"라는 주민의 이야기에서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오다카의 가을 마츠리. 마츠리가 방사능 쓰레기들과 공존하는 곳이 바로 이 오다카이다.
 오다카의 가을 마츠리. 마츠리가 방사능 쓰레기들과 공존하는 곳이 바로 이 오다카이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측정 첫째날 작업을 마친 후 오다카 지역을 방문했다. 마침 이 날은 이 지역의 마츠리(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오다카 지역은 원전 사고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가 2013년부터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마츠리도 부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듯, 입구에도 '부활! 가을 마츠리!'라는 현수막이 입구를 장식했다. 출입은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도 여전히 거주는 불가능했고, 내년 4월에 완전히 거주제한이 해제된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보게 된 것은 일반 주택 앞에 쌓여 있는 제염 작업이 끝난 검정 자루들이었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 오염 물질이라기보다는 일반 쓰레기처럼 취급되는 모습에, 일상적이어서는 안 될 것들이 너무도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죽을 때까지 이 소들과 함께 할 겁니다"

나미에 '희망의 목장'. '2011.3.12 나미에 통곡', '원전폭발 14km지점', '결사구명', '단결', '원전 봉기'등의 글귀가 쓰여있다.
 나미에 '희망의 목장'. '2011.3.12 나미에 통곡', '원전폭발 14km지점', '결사구명', '단결', '원전 봉기'등의 글귀가 쓰여있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결사구명', '치외법권', '원전 봉기'. 나미에의 '희망의 목장·후쿠시마' 입구의 저장용 탱크에 빨간 스프레이로 쓰여있는 글귀들이다. '희망의 목장'은 원전사고가 터지고 정부가 가축 살처분을 지시했을 때, 이 목장주 요시자와씨가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피폭 당한 소들과 함께 한 일에서 시작됐다.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는 듯, 요시자와씨의 피를 토하는 듯한 이야기가 듣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후려쳤다. 후쿠시마의 해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이 나미에에만 발전소가 없었던 것은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이 원전 유치반대 운동을 해온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주민들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자비한 원전사고는 지금 이 마을을 아무도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말았다.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희망의 목장' 목장주 요시자와씨.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희망의 목장' 목장주 요시자와씨.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지금 현재 이 곳에는 300여 마리의 소가 요시자와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소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 증세를 밝히기 위해 후생성을 찾아갔지만,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문부과학성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이후 또 다시 농수산성으로, 정부는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죽을 때까지 여기에 살아아죠. 원전 없어질 때까지. 이 녀석들이 왜 그런 건지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이 녀석들이 원전사고 피폭의 역사적 증거니까요."

요시자와씨가 이야기를 끝내고 멀리 보이는 송전탑을 가리키면서, "저걸 통해 도쿄 등지로 전력이 공급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국의 밀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풍요로움이 다른 이의 평온한 삶을 빼앗고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했다. 원전사고의 산 증인으로, 말 못하는 가축들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요시자와씨. 이 지루하고 고단한 싸움이 끝나는 날은 언제쯤일까?

가시마 '기적의 소나무'. 그 주위를 방사능 폐기물이 둘러싸고 있다.
 가시마 '기적의 소나무'. 그 주위를 방사능 폐기물이 둘러싸고 있다.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둘째날 측정 작업을 마친 뒤에는 쓰나미 피해가 컸던 가시마의 해안지역을 방문, 가시마 '기적의 소나무' 주변을 둘러보았다(흔히 알려진 리쿠젠다카타(陸前高田)의 '기적의 소나무'와는 다른 곳이다).

복구 작업을 통해 잔해 등은 상당히 정리가 된 상태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만이 남아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는 듯했다. 그런데 그 참상을 전하기 위한 '기적의 소나무' 주변마저도 오염 물질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이권세력의 비정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적의 소나무' 가까이에는 도호쿠전력(東北電力)의 화력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도 쓰나미로 건물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화력발전소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라도, 적어도 화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피난을 한 주민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전이 갖는 위험성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또 이 발전소의 발전 용량으로 후쿠시마의 소비 전력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 지역에 필요도 없는 원전이 일으킨 사고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입은 고통과 상처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에 대한 분노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이들

미나미소마 시내의 쇼에고등학교는 원전사고 뒤에 학생들이 피난가는 바람에 더 이상 학생 모집이 어렵다고 판단, 마지막 졸업식을 갖고 폐교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현영주택이 지어져 오다카나 나미에에서 피난온 주민들이 생활하게 될 예정이다. 어떤 이들은 피폭을 피해 떠나간 지역이 어떤 이들에게는 피난처가 되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 이것이 원전이 만들어낸 역설이고 차별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아니 왜 그런 지역에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 아직도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건가?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차린 거야?"라고 쉽게 말할 지 모른다.

하지만 원전을 반대해도 찬성해도, 목숨이 위험해도 위험하지 않아도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피해를 당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가 아니라, 과연 누가 이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였냐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강요한 이들은 다시 다른 곳에서 같은 선택을 강요하기를 멈추고 있지 않다.

방사선량 측정 중
 방사선량 측정 중
ⓒ 이두희

관련사진보기


이번 측정 활동을 시작한 16일, 규슈의 센다이 원전 2호기를 재가동 소식이 보도되었다. 사고 뒤 지난 4년은 자신의 탐욕에 굶주린 이들에게 후쿠시마의 비극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사고에 의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 유랑민처럼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시간들이다.

'희망의 목장'에서 봤던 소들의 눈망울이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묻는 듯하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두희님은 이번 방사능 측정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습니다.



태그:#후쿠시마 원전사고, #동일본 대지진, #방사능 오염, #나고야, #미나미소마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