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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coming 신수산나 작가를 만나다

Becoming, 72.7cm × 53.0cm, Oil on canvas, 2014, 신수산나

천년을 부동으로 살아온 몸뚱이는 쪼개지고 뒹굴면서도 말이 없다
시간이 새겨 놓은 가슴속을 무심히 들여다보았을 때
너는 그 안에 생명의 빛깔을 잉태하고 있었다
부동한 시간을 나는 집어 올린다
복받쳐 흐르는 눈물로
세월을 봤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관점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물을 그리는 작가에게 구도와 시점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의 시점이 달라지면 결과와 해석은 그야말로 자유롭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신수산나 작가의 정물은 보는 시점을 달리했다. 작품 'Becoming'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어떻게 보이는지 잠시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정물을 그릴 때는 대상물의 비례가 맞아야 한다. 또 그것을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그려낸다. 때로는 작가의 떠오른 생각을 그리기도 하고 정밀한 묘사나 철학을 담은 추상을 그리기도 한다. 신수산나 작가의 정물에는 이런 형식과 방식에서 자유한 것 같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내포했을 수도 있다.

그는 우연하게 정물의 대상을 발견하고 시점을 달리해서 밑그림을 그리다 색을 발견했다. 현상학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처럼 대상의 본질을 발견하고 포착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진실을 붓으로 그리는 행위 이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작품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누군가 굴려 주거나 옮겨 주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존재들, 바람과 미세한 지각의 변동이 아니었다면 어디서부터 그에게로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듯해진다. 작가는 그런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미세하게 바라보았고 그 속에 숨을 불어 넣으려는 순간 빛깔을 발견했던 것이다.

좋은 그림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그림이라고 했다. 신수산나 작가는 감상자가 본인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문자 이전 시대에 역사와 전통의 계승을 목적으로 공예품을 만들고 조각을 했던 아프리카의 예술을 생각하곤 한다. 거기에는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미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과 빛과 기분에 따라 시시로 변하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을 하게 된다.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

신수산나 작가는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불혹의 나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그곳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대학 입학 자체가 고운 시선이 아니었기에 한인 사회에서 조차 아무도 그의 졸업을 예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열심과 성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대학교 미대에서 인체 드로잉 1등을 할 만큼 인정 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원래 미대 가려고 했으나 일찍 결혼을 했다. 자랑이 아니라 미술은 안 가르쳤어도 잘 했고 그냥 그리면 되었다고 한다. 똑같이 그려는 것은 이미 끝났으니 베끼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입학보다 졸업이 정말 어려운 외국 대학에서 나이 사십 세가 넘어 우수한 실력으로 당당히 졸업장을 거머쥔 그는 진정한 젊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아프리카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색'이다. 햇빛이 다르고 공기와 소리가 다르다. 그는 4계절 원색의 꽃이 피는 자연환경에서 아프리카 예술을 배웠다. 아프리카의 예술은 음악도 미술도 역사 그 자체이다. 그래서 격렬하다. 기회가 되면 아프리카의 예술을 바로 해석하고 알리고 싶다고 한다.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표현하면 그 속에 시간이 정체되어 버린다.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표현하되 다시 3차원의 세상으로 달려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의 고민이었고 그래서 대상을 보는 시점이 달라진 것 같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정체된 것이 아니다. 대상을 관찰하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움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묘사하면서 캔버스 위에 3차원의 세상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같다.

신수산나 작가는 10년의 남아공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목원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 당시 교수님께서 "재미있는 것을 하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조언해 주신 것이 가장 깊이 남는다.

남아공 대학시절 인체 뎃생에서 1등을 했던 신수산나 작가는 앞으로 루시앙 프로이드(Lucian Freud)처럼 호흡이 있는 인체를 구성하고 묘사하고자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로 손꼽히는 루시앙 프로이드는 영국작가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손자이다.

나는 글을 마칠 때 까지 작품 'Becoming'의 정물화의 대상과 작가가 바라본 시점,구도를 말하지 않았다. 기회가 되어 신수산나 작가의 작품을 직접 관람하길 권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천년을 뒹군 돌멩이는 여전히 돌멩이다.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뒷간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간장을 덮는 돌덩이가 될 수도 있다. 나그네의 돌베개가 되어도 고기 굽는 돌판이 되어도 뜨거운 구들장이 되어도 상관은 없다. 모두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되는 것과 잊혀지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인생은 미완성이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작가는 보다 나은 완성을 향해 작업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도 비슷함을 이야기했다. 그에게서 '모든 것은 미완성이다'라는 현상학 철학자들의 모습이 느껴졌다. 미완성인 대상을 묘사하며 거기에서 발견한 의미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눈이 빛났다. 얼마나 빛나고 맑았는지 문득 청춘을 정의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인터뷰 내내 작가의 나이를 잊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남도투데이 연재되었습니다.



#신수산나#남아프리카공화국#나탈대학교#정물화#화창한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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