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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전 아내와 연애시절. 아내는 잔소리꾼으로 변했고, 난 쭈글탱이로 바뀌었다.
25년전 아내와 연애시절. 아내는 잔소리꾼으로 변했고, 난 쭈글탱이로 바뀌었다. ⓒ 신광태

"남순씨는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

아내가 불만인지 넋두린지 모를 말을 했다. 아내가 말한 '남순씨'는 돌아가신 내 어머님이다. 그렇다면 '애'는 누구인가. 나보다 8살이나 아래인 아내는 가끔 나를 애 취급한다. 하는 짓이 변변치 못하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번엔 좀 노골적이다.

살아생전 어머님은 아내를 친딸처럼, 때론 친구처럼 대하셨다. 아무리 잘 못해도 아내를 나무라는 일은 없었다. 어머님께 난 늘 '변변치 못한 놈'이었다. 딸이 없으셨기에 아내가 더 각별하지 않았나 싶다.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아내는 참 많이 울었다. 남들이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셨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랬던 아내가 느닷없이 남순씨 흉을 봤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 신광태



"음식 참 맛대가리 없이 만든다. 요리 학원이라도 좀 다니지?"

난 유독 짠 음식을 좋아했다. 아내는 음식을 싱겁게 만드는 편이다. 밍밍하게 만든 음식 맛이 체질에 맞지 않는 건 당연했다. 조미료도 넣지 않았다. 아내가 만든 음식에 적응하기까지 20여년이나 걸렸다. "차라리 밖에 나가 사 먹겠다"는 말도 숱하게 했다.

어머님 음식은 짜다 못해 쓴맛이 감돌았다. 김치도 짰고, 된장이나 고추장도 짰다. 심지어 감자나 옥수수를 찔 때도 소금을 듬뿍 넣으셨다. 반찬이 짜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주 조금씩 먹었다. 어머님은 나름대로 '그래야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는 지혜를 내셨던 듯하다. 의식주에 급급했던 70년대. 시골마을에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따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배불리 먹는 게 최고인 시대였다.    

내 나이 7살 되던 해 아버님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나가셨다. 중풍을 얻어 인사불성이 되신 아버님을 찾기까지 정확히 22년이 걸렸다. 산골에서 어린 아이들 셋을 키운다는 건 어머님껜 벅찬 일이셨다. '아이들 끼니를 거르게 하는 건 부모도리가 아니다'가 철칙이셨던 어머님은 그야말로 억척이셨다. 당신은 하루 종일 쫄쫄 굶으셔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위한 밥 한 덩이를 챙기셨다.

"엄마꺼 남겨 놔."

우리 삼형제는 참 효자였다. 어머님이 외출하신 날, 이웃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먹은 우리는 껍질을 신문지에 싸 두었다. 어머님은 늘 과일 속살은 우리에게 주고, 껍질만 드셨다. 어렸던 우리는 어머님이 과일 속살을 무척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어쩌다 소쿠리를 이고 온 생선장수 아주머니에게 소금에 듬뿍 절인 고등어를 사셨을 때도 살코기는 우리에게 먹이고 어머님은 생선뼈와 머리만 드셨다.

얼마 전 우연히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읽곤 훌쩍였다. 모두 내 어머님을 묘사한 글귀였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 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 잔소리를 피하는 나만의 비법
"신 계장님 피를 빼서 불을 붙이면 활활 잘 탈 겁니다."

요 며칠 목덜미가 자꾸 뻣뻣해짐을 느꼈다. 고개를 삐끗했거니 했다. 그런데 뭔가 좀 달랐다. 병은 자꾸 소문을 내라는 말이 있어, 우연히 만난 화천군 보건의료원장에게 증세를 말했더니, 시간 날 때 들르라고 했다.

"백혈구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고, 혈압도 괜찮은데 문제는 혈액입니다."

불이 잘 붙는다고 하기에, 피가 휘발유처럼 맑고 깨끗하단 말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피가 아니라 기름덩이에 가깝단다. 정상인이 150정도인데, 난 500이 넘는 수치를 보인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증상이 심한 고지혈증이다.  

"술, 담배? 고기는?"

육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술과 담배. 이게 문제일 수도 있겠다. 최근 담배를 하루에 두 갑에서 한 갑으로 줄였으나, 그 놈의 술이 문제다. 특별한 날이 있어야 마시던 술을 이젠 습관처럼 마신다. 일찍 퇴근한 날은 맹숭맹숭해 캔 맥주 서너개를 마셔야 잠을 잔다.

"당신 아버님도 그렇고 어머님도 뇌졸중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잖아. 병도 유전일 수 있다는 거 몰라? 그러게 내가 뭐랬어. 짠 음식 그렇게 좋아하더니..."

위로를 바랐지만, 아내는 '병도 유전이라는 둥, 짜게 먹어서 그렇다는 둥 제멋대로 진단했다. 아니 핀잔을 줬다는 표현이 옳겠다. 여지없이 따발총보다 빠른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제부터 담배 하루 반 갑으로 줄이고, 캔 맥주 끊어. 그리고 밥 사먹는 것도 사전에 내 허락 받아."

난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안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렇다고 딴전을 피우면 안 된다. '내 말을 듣는 거야, 먹는 거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든 말든 딴 생각을 하는 것까진 모른다. 대신 수시로 '당신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한 번씩 끄덕이면 된다. 두 번째 공격은 무차별 따발총이 아닌 훈계라는 것도 안다. 

"내가 하는 말은 다 당신 건강을 위해서야. 가장이잖아. 우리 가족은 누굴 믿고 살겠어. 그러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알았지?"

여기서 '글쎄...어쩌구' 하면 안 된다. 그러면 1차 공격이 재발한다.

돌이켜 보면 이 나이까지 오는 동안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1961연식.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장도 잦을 수 있다. 문득 '이러다 도저히 수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폐품처리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젠 아내 말을 들어야 할 나이인가 보다. 오죽했으면 돌아가신 어머님 탓까지 했겠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고지혈증#아내#남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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