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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데카르트, 니체, 화이트헤드, 말리노프스키, 푹스, 벤야민, 보드리야르, 부르디외, 톨스토이, 베버, 오르테가 이 가세트, 프롬, 러셀, 로크, 하이에크, 폴라니, 리프킨. 그야말로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팍팍 느껴지는 대가들이다. 하지만 이름을 안다는 것 말고, 내가 이른바 고전이라 불리는 이들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있을까?

세어보니 겨우 톨스토이와 오르테가 이 가세트, 리프킨의 작품 몇몇만 읽어보았을 뿐이다. 내가 너무 무식한 건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조차도 '고전이란 누구나 한 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 걸 보면 말이다.

이렇게 읽기 어려운 대가들의 고전을 그림과 함께 쉽고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 있다. 바로 박홍순의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이하 <세상의 모든 교양>)이다. 저자는 철학, 문학, 사회, 경제 분야의 고전 18권을 소개하기 위해, 54점의 그림을 길잡이로 삼았다. 그림을 통해 고전을 이해하기 쉽게 현실의 문제와 연결하여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겉표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겉표지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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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 금방 친해지기 어려운 것처럼 고전 역시 첫 만남이 주는 낯섦을 넘어서야 친근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이야기와 고민이 고전 안에 다 들어있다. 따라서 고전을 통한 삶의 성찰만이 카뮈가 말한 '시시포스 노동'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고전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겪은 6년여 수형 생활 중에 만난 <장자>를 계기로 동서양 고전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우리의 척박한 인문학적 토양에 늘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인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작가로서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권하는 고전 읽기는 고전의 핵심 내용을 읽고 분석하는 방식이다.

즉 중요한 용어에서 문장구조에 이르기까지 분석하고 연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내용을 현대사회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여기'와 상관없는 고전은 박물관의 화석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무척 유익하면서도 재미나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18권의 고전 속에 정말로 세상의 모든 교양이 담겨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다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사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 이후 철학으로 나눌 만큼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는 일대 변혁을 이루었다. 저자는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그는 당시 아테네 정치가나 시민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아테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마치 준법정신의 화신처럼 여겨지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소크라테스는 기존 철학이 추구한 자연 탐구가 아닌 올바름이나 덕과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넘어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즉 사회와 국가를 탐구했다. 지혜와 진리, 덕은 법이나 의결기관과 같은 제도의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소수의 정신적 열망의 결과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민 다수의 의견에 의해 결정되는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에 노골적인 반대를 표명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시민들의 관습적, 통념적 지식과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흔들어댔고, 돈과 명예, 육체적 쾌락을 좇는 아테네인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대는 최대한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쌓아 올리면서 지혜와 진리와 영혼의 최대 향상은 거의 돌보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중략) 나는 여러분에게 돈으로부터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덕으로부터 돈과 기타의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38쪽)

이런 소크라테스가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되고, '부자 아빠'가 좋은 아빠인 세상, 인생의 목표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인 돈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취업률이 떨어진다고 철학을 비롯한 순수인문 학과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이 나라의 모습에 뭐라고 말할지 심히 궁금해진다.

이미지에 속지 말라는 보드리야르

우스갯말이지만 '속지 말자 화장발, 다시 보자 조명발'이란 말만큼, 현대 사회가 이미지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걸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연예인은 물론이고 정치인들조차 이미지로 먹고산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늘날 이미지는 중요하다. 이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지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이자 운영 원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이미지가 실재를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현대사회에서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온갖 미디어가 모방을 넘어 실재를 대체하고, 부정하고, 소멸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상 실재가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예전 이라크 전쟁 뉴스장면이 생각난다. 수많은 미사일이 마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같이 터지던 장면들. 그런데 전쟁터가 정말 그런 모습일까? 아니, 그건 그저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실제 전쟁터의 모습은 자식의 찢겨 나간 시신을 보며 절규하는 어머니가 있고, 온 가족이 몰살당한 가운데 거리를 떠도는 어린아이가 있는 곳이다.

죽음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전쟁터를 대신해서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뉴스 화면이 마치 전쟁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런 이미지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라고 부른다. 실재를 대체하는 가상의 이미지. 그런데 여기서 시뮬라크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시스템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며, 권력과 체제 및 사회시스템 유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사사건건 안보를 들먹이며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의견, 심지어 세월호 사고마저도 종북으로 몰고 가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핵전쟁은 트로이전쟁과는 달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핵에 의한 초토화 위험은 무기를 첨단화함으로써 안전, 차단, 통제의 보편적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한 핑계로 사용될 뿐이다. (본문 217쪽)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가 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청와대에서 눈물짓는 모습을 보인다. 메르스 사태 때는 "살려야 한다"는 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미국 순방 중 한국전 참전장군의 묘비에 큰절을 하고 손수건으로 묘비에 묻은 오물을 닦는다. 바로 이런 것이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매번 속고도 또 속는 이미지의 정치 아닐까.

저자는 이처럼 어려운 개념인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이미지 그림의 대가인 인상주의 화가 마네의 그림들을 모티프로 삼아 쉽고 재미나게 설명하고 있다. 대가들이 남긴 위대한 고전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는 기쁨 외에도 <세상의 모든 교양>은 마네, 렘브란트, 뭉크, 다빈치, 부셰 등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박홍순 지음/비아북 펴냄/2015.07/1만8000원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 18권의 철학·문화·사회·경제 고전을 54점의 그림으로 읽는다

박홍순 지음, 비아북(2015)


태그:#세상의 모든 교양, #박홍순, #시뮬라크르, #소크라테스,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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