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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나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라 생각하오. 우리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을 알고 있소. 그리고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기도 하오.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히틀러는 이름을 남긴 걸까요.

희대의 살인마로 TV 화면을 탔던 이들은 이름을 남긴 걸까요. 이를테면 158명을 죽게 한 백백교의 문봉조, 총기를 난사하여 주민 56명을 죽인 우범곤이나, 유영철, 김대두 이런 인간들이 이름을 남긴 것일까요. 분명히 아닐 것이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만, 그들이 이름을 남기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라 생각하오. 그럼, 여보! 우린 무엇을 남기게 될까요.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죽음 후에 남는 것, 그걸 정리하는 사람, 유품정리사!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요.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가 보오. 방송도 타 유명인이 된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를 짚어주고 있소.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청림출판 펴냄)은 죽음 이후 죽은 이의 공간과 유품을 정리하면서 품어낸 인간애의 몸짓들이 오롯이 배어있는 따듯한 글들로 엮였소.

독일에서 유학 중인 딸을 위해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쓸쓸히 죽어간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부터 자신의 월급을 털어 서른 명의 노숙자들에게 밥을 지어 먹인 한 남자의 특별한 우정 그리고 일등만을 강요하며 폭력을 휘둘러온 어머니를 살해한 뒤 방 안에 감춰뒀던 아들의 이야기까지, 일상과 파격을 넘나드는 죽은 자들이 남긴 것들을 끄집어내어 '이러면 안 된다. 이래야 된다' 묵언의 교훈을 주고 있소.

죽어서 개가 된 청년의 이야기

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표지
 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표지
ⓒ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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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인생이 성적순이 아니듯, 죽음이 나이순이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사연이 유독 이 책에는 많소.

그중에 한 청년의 죽음 이야기 앞에서는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오. 네일 아티스트를 꿈꿨던 청년은 비좁은 원룸텔에 혼자 살면서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네일 아트를 배웠던 것 같소. 그의 책상 위에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주는 메모도 붙어 있었소.

'괜찮아, 잘 될 거야.'

그의 삶이 얼마나 괜찮지 않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쪽지가 아니겠소. 청년실업의 심각성 앞에 우리는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한다거나, 돼먹지 못한 사회적 현상이라 치부하며 읍소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오.

이 사회가 버거워 견디지 못한 청년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 주검으로 변해 이 세상을 떠났소. 그리고 유품정리사가 집주인의 요청으로 그의 시신이 있던 공간을 청소하며 이런 글을 남겼소.

"누구에게도 당신의 이웃이었던 한 젊은이가 죽었다고 알릴 수 없었다. 청년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진 채 현장은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있지도 않은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고, 애도는커녕 개를 버려 굶어 죽게 만든 사람으로 고인을 비난받게 만들었다."(본문 171쪽)

여보, 왜 사람들은 안타까운 죽음을 들으면 같이 슬퍼하고 애도하면서도, 자기 집 주변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거나 자살했다고 하면, 극도로 히스테릭해지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일까요.

아픈 사정을 물어보기는커녕 왜 소금이라도 뿌릴 듯한 기세로 차가운 시선을 던지는 것일까요. 집값이 떨어진다, 방세가 안 나간다 등등의 맘몬이즘(Mammonism)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가벼움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혹 청년이 인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이런 이웃의 매정함과 무관심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소. 여보! 아들딸 키우는 부모로서,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만 같지는 않소.

맘대로 죽을 수 있는 집이 따로 있다?

여보, 이제 고독사는 이 청년의 예에서처럼 독거노인들만의 것이 아닌 게 분명하오. 몇 개월이 지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현실이니 말이오. 곁을 지키는 이가 있는 죽음과 아무도 없는 채로 홀로 맞는 죽음은 간 사람에게는 천지 차이일 것이오. "아무도 없이 홀로 맞는 죽음, 아무도 거두지 않는 죽음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는 저자의 말이 더욱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니겠소.

홀로 살다 죽은 시신의 경우 무연고 시신으로 분류되면 병원 해부용으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죽은 후에도 무엇인가 공헌을 하는 건 좋은데, 마냥 고운 마음만은 아니구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죽음을 맞는 이들은 모르는 아픈 이야기도 있다오. 같이 늙어가는 집주인에게 세를 들면서 할머니가 했다는 말, 목이 메게 하는구려.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 보면 저 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 (중략) 우리 같은 노인네는 그렇거든. 이제나 죽을까, 저제나 죽을까, 자다가 조용히 죽어야 할 텐데. 그러잖아. 그래서 별 뜻 없이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누"(본문 46쪽)

여보, 허락받지 못했다 개의 죽음으로 전락한 청년의 죽음에 비하면 이 할머니의 죽음은 허락받은 죽음인고로 행복한 모양새구려. 허 참! 대부분은 셋방살이하다 죽는 이들의 모습은 그리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눈시울에 이슬이 맺히는구려. 죽으려고 허락받아야 하는 인생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오.

아버지보다 돈?

돈이 이미 인륜을 뛰어넘어 행세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오. 그런데 죽음의 현장에서 보이는 산 자들의 추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도 있다고 하오. 망자는 남은 자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수의 버선에 돈을 저축해 두기도 한다는군요. 그런데 혼자 죽은 부모가 혹시 무어라도 값나갈 것 남기진 않았나 찾느라 자녀들이 생쇼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오.

한여름 코를 찌르는 냄새로 가족들조차 접근하기 힘든 죽음의 현장에서 저자가 유품정리 작업을 할 때의 이야기요. 질퍽한 장판을 들추자 흥건히 젖어 심각한 모양새를 한 지폐가 빼곡히 깔려 있었다고 하오. 방안으로 접근조차 안 하던 망자의 아들이 허겁지겁 달려들더니 대야에 쓸어 담았다 하오. 당연히 잘 씻어서 가족에게 넘겨줄 것인데 그리했다는 거요.

"아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돈뿐이었다. 그의 눈에, 머리에, 가슴에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없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소.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 아들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보아야 할 건 보지 못하고 보지 않을 것만 보는 올바르지 못한 모습 아니겠소.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이제는 너무 많이 일어나니 참 마음 아프오.

여보, 우리가 남겨야 할 게 무엇이라 생각하오. 책을 통해 죽은 자들이 남긴 쓰레기를 치우느라 동분서주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덜 갖고 덜 쓰는 게 좋겠다 생각하오. 차라리 유품정리사가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게 진짜 이름을 남기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오.

저자도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고독사, 자살, 범죄로 인한 사망... 이런 비극이 사라져 나의 직업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기를 바란다"(11쪽)고 쓰고 있소. 이제 더 이상 죽은 자를 개로 만들어서도, 개가 되어 죽어서도 안 되겠기에, 쓸쓸한 이웃은 없는지 곁에 시선을 주며 삽시다. 여보!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지음 / 청림출판 펴냄 / 2015. 7 / 239쪽 / 1만3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내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김새별 지음, 청림출판(2015)


태그:#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김새별, #유품정리사,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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