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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포와 안흥으로 이어진 2차선 도로변에 있다. 지난 6월 보수공사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 충남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효열정문 연포와 안흥으로 이어진 2차선 도로변에 있다. 지난 6월 보수공사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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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근흥면 두야리는 추동, 와동, 신동 등 삼동네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읍 장산리 무겁재 너머에 있는 추동의 큰길가 한 곳에는 헌칠한 모습의 정려문(旌閭門)이 있다. 효자 가선대부 겸 동지의금부사 지시정(孝子 嘉善大夫 兼 同知義禁府事 池時淨)과 열부 정부인 소주가씨(烈婦 貞夫人 蘇州賈氏)의 효열(孝烈)을 기리는 정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26년 전인 1789년(英廟 己酉-정조 13년) 임금의 명에 의해 세워진 효열정문이다. 나라에서 세워준 정문인 데다가 부부의 효열이 함께 현창된 합문(合門)이기에 이 효열정문은 오랜 세월 마을의 큰 자랑거리가 되어왔다.

우리 고장에도 여러 곳에 효자문과 열녀문 등 정문이 있다. 정문마다 현판이나 비가 있는데, 현판이나 비석에 벼슬 이름이 새겨진 경우는 드물다. 고을 원님이나 군수, 관찰사 등 지방 관장이 세워준 정문에는 벼슬 이름이 새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에서 세워준 정문에는 비록 명예직이나마 작호와 벼슬 이름이 새겨진다. 근흥면 두야리 추동 마을의 정문이 그런 경우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흥면 두야리의 정문이 부부를 함께 현창하는 효열정문이라는 점이다. 부부의 효열이 함께 현창된 정문은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그런 연유로 근흥면 두야리의 이 효열정문은 처음 세워질 당시부터 마을뿐만 아니라 태안 고을 전체의 큰 자랑거리였고, 크게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두 번의 중건, 태풍에 날아간 기왓장

지난 6월 보수공사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전각 안에 자리한 독립문 형태의 시멘트 조형물은 1967년에 축조되었다.
▲ 충남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효열정문 지난 6월 보수공사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전각 안에 자리한 독립문 형태의 시멘트 조형물은 1967년에 축조되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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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정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각기 예를 올렸다고 한다. 말을 탄 양반들도 말에서 내려 걸어서 지나갔고, 가마를 탄 양반 부녀자들도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지나갔다고 한다. 미풍양속과 예의범절이며 효행 열부지덕을 숭앙하던 시절에는 그것이 당연한 풍습이었던 모양이다.

근흥면 두야리의 이 효열정문은 흥선대원군 시절에 한번 중건을 했고, 1967년에는 독립문 형태로 개축을 했다. 독립문 형태로 개축한 것은 후손들에게 유지 관리의 부담을 안겨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하지만 시멘트로 만든 독립문 형태의 정문은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이어서 1999년에 다시 중건을 했다. 고장의 소방대장으로 오랫동안 봉직하며 사회봉사의 선두주자로 활동했던 고 지재하(池在夏)님이 앞장서 충주지씨 일가들의 모금으로 비용을 충당했다. 후손들에게 유지 관리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선대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독립문 형태의 문을 그대로 살리고 그 위에 전통적인 형태의 전각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윤형상 군수와 박창배 교육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중건 낙성식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전통 양식을 복원하여 효열정문을 중건하고 보니, 당연히 관리 문제가 뒤따랐다. 더욱이 2009년의 태풍 곤파스와 2012년의 태풍 블라벤으로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간살들이 부러지고 기왓장이 날아가는 등 피해가 컸다. 또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시멘트 불록 담이 붕괴될 위험이 있어 쇠말뚝들을 박는 등 여러 가지로 손을 써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지 않은 후손들 중 연로한 후손들은 세상을 뜨고, 젊은 후손들은 서울 등 객지에 나가 터를 잡고 사니, 자연 효열정문의 관리 문제는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고장에 머물러 사는 나는 서울에서 사는 당질들과 협의하여 효열정문의 유지 관리 부담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기로 했다. 정문을 철거할 수 있으면 철거하고, 작은 형태로 비석만 하나 세우자는 논의까지 하게 됐다.

독립문 형태의 견고한 시멘트 축조물 위에 다시 전통적인 형태의 전각을 복원하고 1999년 4월 5일 성대하게 낙성식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그 후 16년이 흐르는 동안 태풍 곤파스와 블라벤 등으로 파손 피애를 입곤 했다.
▲ 충남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효열정문 독립문 형태의 견고한 시멘트 축조물 위에 다시 전통적인 형태의 전각을 복원하고 1999년 4월 5일 성대하게 낙성식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그 후 16년이 흐르는 동안 태풍 곤파스와 블라벤 등으로 파손 피애를 입곤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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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손들 마음대로 정문을 철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태안군청에도 얘기를 해야 하고, 근흥면 두야리 주민들의 동의도 얻어야 하는 일이었다. 일단 철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철거 방안을 모색해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당질과 함께 태안군 문화관광과 이영진 예술계장과 접촉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근흥면 두야리의 효열정문은 태안군이 유지 관리를 맡게 됐다. 충청남도의 의뢰를 받아 도내 문화재들을 전문적으로 보수하는 예산 소재 업체에서 직원들이 와서 실사를 하고는 지난 6월 보수공사를 했다.

썩은 기둥들과 부러진 간살 등을 교체하고, 붕괴 위험이 있던 앞쪽 블록 담도 철거하고 철근 울타리로 대체했다. 그리하여 효열정문은 다시 깔끔하고 번듯한 모습이 됐다.

태안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실무 담당자였던 문화관광과의 이영진 전 예술계장과 최병구 현 예술계장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고장의 문화재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한상기 태안군수께도 고장 충주지씨 일문의 고마운 뜻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효열정문, #태안군 근흥면, #충주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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