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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점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이렇게 잊히는 게 아닌데, 아닌데, 점점이 희미한 추억의 역사로 잊힐 수 없는 것인데. 엄혹한 현실은 4.16연대가 경찰의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누구의 아들딸이 아닌, 대한의 아들딸이 세월호와 함께 침잠한 채 맞는 두 번째 뜨거운 여름, 한 엄마가 나섰다.

안타까움으로, 숨 멎은 고요로, 모든 국민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다. 세월호는. 하지만 누구 하나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4.16은 치닫고 있다. 그렇게 4.16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한 엄마가 나섰다. 그는 '살아서 죽지 않은' 5.18의 엄마다.

결코 4.16을 놓을 수 없는 이들 중에 제일은 임들의 엄마와 아빠들이다. 여기에 5.18 광주의 엄마가 손을 덥석 잡고 나섰다. 최봉희 시인, 그는 80년 광주 항쟁 때 17살 난 아들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가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부상당한 5.18의 엄마다. 그때 자기 아들과 똑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로 물속에 잠겼다.

'죽지 않은 엄마가 있다'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표지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표지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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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열일곱 너의 행방을 찾으러
광주 금남로 길을 헤맸다
10일간의 총소리
군인들의 거리에는 전화가 끊기고
하늘은 최루가스로 어둠에 덮여
엄마는 자주 기침에 시달렸다-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동명의 시 일부

5.18의 엄마가 금남로를 헤매고, 4.16의 엄마가 팽목항을 헤맨다. 그러나 엄마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딸들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가 그러했듯/ 네 아픈 짐은 내려놓고/ 길은 한 길이니 숨 쉬면서 걸어라"라고 말한다. 엄마는 '숨 쉬면서 걸어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아들을 가슴에 묻는다. 그러나 보낼 수밖에 없는 엄마는 "광주의 엄마가 물려주고/ 안산의 아들이 젖 먹던 힘까지 내고/ 걸음마 하듯 자박자박 걸어서 가거라"며 아들의 손을 놓는다.

임이 가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려놓겠다며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노래했던 김소월의 마음이리라. 보내고 싶어 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갔지 않은가.

시인은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4.16의 부모들과 함께 했고, 그들의 아들들과 함께 했다. 그의 족적은 오롯이 시가 되어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레디앙 펴냄)에 담겼다.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금남로에서 진도의 앞바다로 장면만 바뀌었을 뿐 그 슬픔의 깊이와 넓이는 같다. 여전히 살아있는 엄마는 이미 간 아들에게 "4.16 아들 곁에/ 5.18 살아서 죽지 않은 엄마가 있다"며 손을 내민다.

최봉희 시인은 올해 나이 78세다.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는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1년 동안 세월호에 관한 시를 연작시 형식으로 엮었다. 4.16 참사가 빚어지면서 오롯이 자신의 5.18의 아픔이 떠올랐던 시인은 "깊은 바다에 잠들어 있다가 숨 쉬며 올라와 유가족의 슬픔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유가족 엄마들이 길거리에 선뜻" 나설 때, 시인은 용기를 가지고 그들과 동참했다. 시인은 엄마들과 함께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언어로 엮어 시를 빚었다. 도법의 말처럼, "시인은 자식을 잃은 어미가 되기도 하고, 별이 되어 떠난 아이들이 되기도 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이웃이 되기도" 했다. 죽지 않은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오롯이 자기 것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옆에서 위로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4.16의 엄마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시인은 5.18을 끌어당겨 4.16에 풍덩 담근다. 언어의 기교는 현란하지 않지만 57편의 담담한 표현의 시들 속엔 아픔을 온통 자기 것으로 승화시킨 시인의 뜨거운 마음이 있다.

"유가족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몸을 보태고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침몰하지 않습니다./ 결코 잊은 것이 아닙니다."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침몰하는 세월호' 중

시만 그런 게 아니다. 팽목항으로, 안산으로, 청와대 앞으로 4.16 엄마들이 가는 곳을 노구를 이끌고 같이했다. '길을 잃다'에서 노래하듯 아들 잃은 설움은 "길을 가로막는 도둑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어서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이/ 위태로운 육신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러나 이미 암흑 속에 침잠한 아들보다야 밝은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은가. 그 힘이 시인을 '역사를 잇는 5.18 엄마'로 당당하게 만든다.

시인이 삶에서 얻는 정서를 언어로 엮는 사명을 가진 이라면, 최봉희 시인은 그 사명에 충실하다. 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목숨'과 '돈'의 가치에 대한 왜곡된 위선을 지적한다. '나는 보았습니다'에서 "세월호 선장을 나는 보았습니다.// 목숨보다 더 귀하고 소중했던 세월호 선장의 건져 낸 돈들이/ 햇볕에 잘 마르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발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무참히 짓밟혀진 봄'은 "권력이 진실을 삼켜 버린 후/ 피어나던 꽃들마저 시들어 버린 봄날 오후"였다. 권력과 돈의 미련한 동거가 낳은 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시인은 마음으로 앓고 있다.

그러나 같은 돈이라도 아들의 '용돈'은 다르다. 세월호 참사 20일째 되는 날, 세탁소를 하는 엄마가 넣어 준 용돈 2만 원을 쓰지 못한 채 아이는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아이의 젖은 옷에서 꺼낸 지갑에는/ 두 번 접힌 만 원짜리 두 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 어떡해요?/ 그 돈마저 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 애절함이야 아이 엄마와 시인이 다를 수 없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똑 같은 돈인데 세월호 선장이 말리는 돈과 아이의 젖은 채 돌아 온 돈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선장의 돈에 주목한다. 그러나 시인은 아이의 쓰지 못한 돈에 "너무 미안해서 울었다"고 한다.

시인이 '하얀 비명'에서 말하듯, "밤새워 농성을 해도 안 되고, 뙤약볕에 행진을 해도 안 되고, 살려 달라 애원을 해도 안 되는" 4.16의 현재형에 한 사람, 선장이 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이다. 시인은 가만히만 있으라는 이들 사이에서 "선장님 뒤에 우리가 있어요"라며 힘을 보탠다. 그래서인지 시집 값이 4160원이다. 누구든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속히 시인의 애절함처럼, 4.16이 현재형이 아니라 완성된 과거형으로 말해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먼발치에서라도 응원하는 독자라면 시인과 함께 4.16의 현장으로 달려가 마지막이며 유일한 선장의 손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해달라고.

덧붙이는 글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최봉희 지음 / 레디앙 펴냄 / 2015. 6 / 148쪽 / 416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

최봉희 지음, 레디앙(2015)


태그:#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최봉희, #세월호 사건, #5.18,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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