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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 짐승 같다, 금수만도 못하다, 인간 이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뉴스 기사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된다. 일상에서도 거리낌 없이 통용된다. 조금 매캐한 느낌을 가질 순 있지만 이 또한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는다.

스쳐가는 풍경처럼 낯익은 말이 된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짐승을 인간 아래로 취급한단 사실이다. 이 어감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게다. 그게 왜?, 이런 의문점이 드는 것도 이해된다. 그 정도로 우리의 의식 깊숙이 침투해 있단 방증이다.

동물과 약자를 다루는 '나치'식 방시에 대하여 <동물 홀로코스트>
▲ 책표지 동물과 약자를 다루는 '나치'식 방시에 대하여 <동물 홀로코스트>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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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패터슨이 쓴 <동물 홀로코스트>는 기존 동물권 옹호 서적과 좀 다르다. 단순히 동물들의 처참한 실상을 부각한다거나 동물을 차별하고 고통을 줘선 안 됨을 논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를 진행시켰다. 좀 더 풀자면 '힘이 곧 정의이며 약자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강요적 세계관이 인류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효율적'인 도살과 학살, 결국은 같다

쉽게 이해해보자. 책의 부제를 미리 안다면 수긍이 빠를 수도 있다. '동물과 약자를 다루는 나치식 방식에 대하여'다. 아래는 <동물 홀로코스트>에 언급된 내용을 간추려 재구성한 것이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일상은 생각하고 결정할 기회를 빼앗는다.

# 장면 1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트레블링카 수용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한다. 노인, 병자, 부상자,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따로 분류된다. 이들은 '효율적' 공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처형 구덩이 근처 흙더미에 앉힌 후, 소총을 갈겨 따로 '처리'한다.

'효율적' 공정에 적합한 사람들은 탈의실에서 바로 연결된 가스실로 달려갔다. 경비병들은 주먹과 채찍을 휘둘러 벌거벗겨진 희생자들이 나란히 손을 든 채 연결관 속을 달리도록 만든다. 트레블링카의 나치 친위대는 이를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불렀다.

"모든 일은 최고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그래서 희생자들은 무엇이 진행되는지를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의 대응은 마비되어 탈주 시도나 저항 행위는 불가능했다. 이렇게 신속한 과정을 중요시한 데에는 처형센터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하루에 몇 차례씩 수송되어 온 사람들이 들어와서 제거되곤 했다." -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 장면 2

도축장에 한 무리의 돼지들이 도착한다. 쇠약하거나 부상당한 돼지들은 그대로 버려두거나 대열에서 끌어낸다. 도축장의 공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미국 스위프트 정육공장은 '효율적'인 도축 시스템을 선보였다. 몰이꾼들은 깔때기 모양의 입구로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돼지는 경사로에 저절로 밀리고 복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도축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를 고안한 템플 그랜딘 박사는 이를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불렀다.

"저 체인이 돌고 있는 한, 사람들은 돼지를 작업라인에 올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에요. 돼지를 갈고리에 걸지 않으면, 바로 작업반장이 뒤꽁무니에 붙어 가만두질 않는 걸요." -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무엇이 다를까. 단지 대상만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의 둘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하게 엇갈린다. 인간의 생명이 기계적으로 사라져갈 때는 연민과 참혹을 느끼지만, 도축장으로 옮겨갈 때의 그것은 무뎌진다. 단지 동물이기 때문에 극명한 대비를 이룰 수 있다. 다른 이유가 있는가?

인간 우월주의는 어떻게 출현하게 됐나

책은 인류사를 살펴보면서 이런 인식이 뿌리 꽤나 단단하고 깊음을 알려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동물과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제임스 서펠은 "동물이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만 창조되었다는 초기 기독교의 믿음은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데카르트적 관점과 결합되어, 우리에게 완전한 면책권을 가지고 다른 형태의 생명을 죽일 면허를 주고 그들을 이용하거나 학대할 수 있는 허가권을 줬다"고도 말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엘리자베스 피셔는 "인간주인이 동물노예에 대해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형성한 것이 인간의 잔인함을 강화하고 인간 노예제의 토대를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칼 세이건은 우주의 150억 년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현생인류는 12월 31일 오후 10시 30분에야 출현하며, 마지막 10초를 남겨두고야 인간 역사의 기록이 나타난다고 비유했다. 그런 인류가 이제는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고 있다. 거기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타인을 '동물화'하는 게 옳을까.

"동족 간 전쟁을 일으키고, 충분한데도 그 이상을 원하고, 1년 내내 성적으로 활발한 존재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 내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자연적 충동을 동물의 속성으로 돌렸다." - 키스 토머스,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재인용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유목민을 보고 "이 추잡한 동물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들은 인디언을 '야수'라고 묘사했다. 처칠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태평양에서 '일본개'들을 잠잠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복 전쟁을 이끈 채피 장군은 필리핀인들을 '고릴라'로 불렀다.

거대한 쥐떼 장면으로 시작하는 나치 선전영화 <영원한 유대인>에서는 "쥐가 가장 하찮은 동물인 것처럼, 유대인은 가장 저열한 인종이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독일군들은 가스 괴저균에 감염돼 골 이식 실험에 이용된 여성들을 '토끼소녀'라고 불렀다. 그렇게 그들은 더 무자비해질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는 사람들이 도살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사람들은 단지 동물일 뿐이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동물 홀로코스트>에서 재인용

읽기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좀 더 트인 시야를 가져야 하는 까닭은 관심의 범주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만 늘어나는 형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따끔하다면, 옆을 돌아보자. 이 책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약자, 비주류,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지속적이고 구조화된 폭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덧붙이는 글 | <동물 홀로코스트> (찰스 패터슨 지음 / 정의길 옮김 / 휴 펴냄 / 2014.08 / 1만5000원)



동물 홀로코스트 - 동물과 약자를 다루는 '나치' 식 방식에 대하여

찰스 패터슨 지음, 정의길 옮김, (사)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감수, 휴(休)(2014)


태그:#찰스 패터슨, #정의길, #휴, #동물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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