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느리게 살아오고 느리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슬로 시티(slowcity), 창평 삼지내마을이다. 마을사람들은 그냥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데 바깥사람들이 슬로 시티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창평마을 앞 달팽이 한 마리, 마을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살아가고 있고 객에게는 달팽이처럼 살아가라는 의미다.

담양 창평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그림. 마을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살아왔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살라는 의미다
▲ 마을 앞 달팽이 그림 담양 창평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그림. 마을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살아왔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달팽이처럼 살라는 의미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느리게 산다는 것

흔히들 '느림의 미학(美學)'이라는 말을 한다. 느림은 단순히 '느리게 사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다. 자연의 문제, 도덕의 문제, 마음의 문제, 결국 선(善)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연을 훼손하고 치열하게 경쟁하여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느림과 대립되는 것이다.

느림을 추구하는 삶은 지나치게 자기 것만 추구하는 사물화의 심리보다는 마을사람들과 '착한' 가치를 공유하고 남과 나의 접점을 넓혀가는 공동체 의식이 요구된다. 이는 누가 가르쳐서 될 일을 아니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착한' 가치가 몸에 배어 옛날에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아가면 된다.

느리게 사는 것은 게으르게 사는 것과 다르다. 음식이나 농사라는 것은 때가 있어 때를 맞추지 않으면 음식은 맛이 없고 농사는 망한다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왔다. 할 일을 느리게 할 뿐 게을리하지 않았다. 삼지내 마을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왔다. 느리지만 부지런 떨며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음식은 때를 맞춰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느린 음식일수록 제 맛을 내려면  때가 중요하다. 삼지내마을 뉘집 처마 밑에서 메주가 그 때를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 처마 밑 메주 음식은 때를 맞춰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느린 음식일수록 제 맛을 내려면 때가 중요하다. 삼지내마을 뉘집 처마 밑에서 메주가 그 때를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느린 삶'은 기다림이다. 쌀쌀한 늦가을 볕 좋은 날이면 보리에 싹 띄워 느리게 길러낸 엿질금('엿기름'의 충청도 사투리)을 싹이 너무 많이 자라면 단맛이 없다며 까칠까칠한 멍석에다 싹싹 비비곤 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한해 열두 번 제사와 차례를 지내야 했으니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하던 일이다.

설이 되기 전에 이렇게 기른 엿기름으로 가마솥과 방바닥이 단내가 날 정도로 고아 조청을 만들어 주던 어머니였는데 그도 이제 예전 말이 되었다. '어머니표 엿질금' 대신 어느 상점에서 구한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어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게 되었다. 손 많이 가고 나에게는 '느려터진' 음식이었던 어머니의 조청은 먹어볼 꿈도 못 꾸게 되었다. 그러나 창평 삼지내마을에는 아직 엿 고는 단내가 난다.

창평엿의 미학

창평은 엿으로 유명하다. 늦가을에서 겨울까지 창평 삼지내마을은 단내가 가득하다. 창평엿에 대한 재미난 얘기가 있다. 옛날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창평엿을 싸갖고 갔다 하는데, 여기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엿 먹고 척 하고 붙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엿 먹으면 머리회전이 좋아져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딸을 시집 보낼 때 엿을 들려 보내, 시집식구들이 엿 먹고 새색시 흉보지 않도록 했다는 재미난 얘기가 들린다.

창평은 엿으로 유명하다. 삼지내마을에는 창평엿을 만드는 집이 여럿 있다. 엿 고는 단내 맡으며 흙돌담은 조용히 삭아가고 있다
▲ 흙돌담과 창평엿 표지판 창평은 엿으로 유명하다. 삼지내마을에는 창평엿을 만드는 집이 여럿 있다. 엿 고는 단내 맡으며 흙돌담은 조용히 삭아가고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창평엿은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느리게 먹을 때 그렇다. 입안에서 먼저 몇 번 굴리고 눅눅해질 때 씹으면 엿 속에 생긴 구멍으로 단물이 스며들어 단맛이 더하고 이때부터는 질겅질겅 씹어도 이에 붙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아무리 빨아도 눅눅해지지 않는 사탕과 다르다. 만들 때 느리게 만든 음식은 먹을 때도 느리게 먹어야 참맛이 나는 알 듯 모를 듯한 '미학(味學)'이 숨어 있다. 

느리게 만들어진 창평엿은 먹을 때도 느리게 먹어야 제 맛이 나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조청도 그릇에 따를 때 느리게 만들어져서 그런지 방정맞지 않고 점잖게 흐른다.
▲ 창평엿과 조청 느리게 만들어진 창평엿은 먹을 때도 느리게 먹어야 제 맛이 나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조청도 그릇에 따를 때 느리게 만들어져서 그런지 방정맞지 않고 점잖게 흐른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마을분이 조청을 건네며 하는 말이 조청은 뚝뚝 끊어지지도 꿀처럼 질질 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그릇에 조청을 부으면 조르르 떨어지지 않고 느릿느릿 점잖게 떨어진다. 느리게 만든 음식은 움직임도 굼뜨나 보다.  

장흥 고씨 사람들

삼지내마을은 장흥 고씨 집안이 일군 마을이다. 월봉산에서 흘러내린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이 한데 모인 마을이라 하여 삼지내(천)마을이라 했다. 고씨 집안이 이 마을에 터 잡은 것은 임진왜란 전후,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인후가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후, 고인후의 네 아들이 창평 유천리 외갓집에서 자라면서다. 그 후손 일부가 삼지내마을을 일구었다.

창평들녘은 삼지내마을의 힘의 원천이다. 그 복판에 남극루가 근사하게 서있다. 태평성대에만 볼 수 있다는 남극성, 삼지내마을에는 매일 떠 있으니 마을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 창평들녘과 남극루 창평들녘은 삼지내마을의 힘의 원천이다. 그 복판에 남극루가 근사하게 서있다. 태평성대에만 볼 수 있다는 남극성, 삼지내마을에는 매일 떠 있으니 마을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마을에 후손들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고경명의 12대손 고정주 가옥을 중심으로 동쪽에 고재선 가옥, 서쪽에 고재환 가옥과 고재욱 가옥이 자리 잡았다. 고정주(1863-1933)는 마을의 중심 어른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마다하고 창평으로 내려와 근대교육에 힘을 쏟아 영학숙(英學塾)과 창흥의숙(昌興義塾, 창평초등학교 전신)을 열었다.

스러지고 있는 골기와 솟을대문과 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릿하다. 교육사업에 매진하느라 집주인은 집을 돌볼 시간도, 그럴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다. 느리지만 곧은길을 걸은 주인의 생각이 읽힌다
▲ 고정주 가옥 솟을대문과 담 스러지고 있는 골기와 솟을대문과 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릿하다. 교육사업에 매진하느라 집주인은 집을 돌볼 시간도, 그럴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다. 느리지만 곧은길을 걸은 주인의 생각이 읽힌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영학숙은 3·1운동과 우익정치를 이끈 김성수와 송진우가 만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김성수는 고정주의 사위이고 담양사람 송진우는 그의 아버지와 고정주의 인연으로 영학숙에 들어왔다. 이 때 송진우는 고정주의 아들 고광준과 손자 고재욱과 연을 맺게 된다. 

한편 고정주의 동생이 고하주(1874-1932)고 그의 아들이 고광표로, 고광준과 함께 창평상회를 창설하여 지역상권을 장악하고 일제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손자가 고재환으로 지금 남아 있는 고재환(고광표) 가옥의 주인이다.

골목과 흙돌담에 서려 있는 '느림'

얽히고설킨 실타래 풀 듯 담을 따라가며 이들의 인맥을 좇아 돌다보면 마을 한바퀴. 마을 도랑이 눈길을 잡는다. 시멘트로 복개한 것을 걷어내 물길을 살린 것이다. 담은 도랑따라 휘어졌는지 도랑이 담따라 휘어졌는지 담과 도랑물이 동행한다. 곡선의 골목길이 급한 마음을 잡는다. 모나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이 둥근 흙돌담따라 둥그러진다.

담은 도랑 따라 휘어졌는지, 도랑이 담 따라 휘어졌는지 담과 도랑물이 동행한다
▲ 삼지내마을 도랑과 흙돌담 담은 도랑 따라 휘어졌는지, 도랑이 담 따라 휘어졌는지 담과 도랑물이 동행한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곡선의 골목길이 급한 마음을 잡는다. 모나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이 둥근 흙돌담 따라 둥그러진다.
▲ 삼지내마을 곡선담 곡선의 골목길이 급한 마음을 잡는다. 모나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이 둥근 흙돌담 따라 둥그러진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담은 모두 흙돌담. 치장하지 않은 점잖은 흙돌담이다. 돈 많은 상류집에 하나쯤 있는 꽃담도 없다. 1920년 전후에 지어진 상류주택이지만 몸 낮춘 소담한 굴뚝만 있을 뿐, 담도 집도 요란하지 않다.

삼지내마을 담은 흙돌담. 치장도 하지 않은 흙돌담, 상류집에 하나쯤 있을법한 꽃담 하나 없다
▲ 삼지내마을 흙돌담 삼지내마을 담은 흙돌담. 치장도 하지 않은 흙돌담, 상류집에 하나쯤 있을법한 꽃담 하나 없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왜일까? 마을사람들은 고경명의 후손들로 그의 좌우명, 세도충정(世篤忠貞)처럼 곧은 마음을 가진 후손들이다. 근대교육에 매진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의병활동까지 한 후손들, 집을 치장할 여유도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고정주와 그의 후손, 고광준, 고재욱과 고정주의 동생, 고하주와 그의 후손, 고광표, 고재환 등 후손들 모두 '착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마을 골목은 깊다. 담 높이가 높아서도, 골목이 길어서도 아니다. 담과 골목은 마을 사람들의 느린 세월이 배여 있다. 빠름, 빠름, 빠름이라 외치며 치열한 경쟁을 치러낸 우리의 험악한 꼴을 여기에 다 털어놓아도 다 담아낼 것 같아서 깊은 것이다.

삼지내마을은 깊다. 마을사람들의 느린 세월이 골목에 흙돌담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 마을 길 깊은 삼지내마을 삼지내마을은 깊다. 마을사람들의 느린 세월이 골목에 흙돌담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느리게 산다는 것은 세상에 아부하고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역사와 동행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며 기다리는 그런 삶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이 삼지내마을이다. 그래서 슬로 시티다.


태그:#삼지내마을, #창평, #슬로시티, #창평엿, #고정주가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