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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쌀엿을 만들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다.
 할머니들이 쌀엿을 만들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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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라고 하믄 찐득거려. 오늘처럼 날 좋을 땐 꼬실꼬실 허고. 습에 민감혀. 엿이. 여시가 따로 없어. 그랑께 엿이여."

엿을 식이고 있던 옥산댁 기복덕(81) 할머니의 말이다. 옥산댁은 엿 늘이기 작업을 하고 있다. 갱엿을 늘이면서 엿 속에 공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엿 속에 구멍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엿의 맛과 품질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 요즘 엿 만들기가 한창이다. 엿은 아무 때나 만들지 않는다. 겨울 한 철에만 만든다. 그것도 설날을 앞둔 지금이 대목이다. 이 엿이 추억 속으로 이끈다. 가난해서 부족했고 그래서 불편했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창평현문. '슬로시티' 창평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최근 세웠다.
 창평현문. '슬로시티' 창평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최근 세웠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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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삼지내마을의 돌담길. 지난 1월 28일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이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다.
 창평 삼지내마을의 돌담길. 지난 1월 28일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이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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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창평이다. 지난 1월 28일이다. 북을 쳐서 현감의 출퇴근을 알렸던 남극루 앞으로 일주문이 우뚝 서 있다. '창평현문'이라고 씌어 있다. 최근에 세워진 것이다. 이 문을 지나면 삼지내(삼지천)마을이다.

월봉산에서 시작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3개의 물줄기가 모인다고 '삼지내'다. '삼지천' 마을로도 불린다. 돌담과 어우러진 고택의 청태 낀 기왓장에서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지은 지 100년 안팎의 집도 20여 채나 된다.

마을에서 먼저 만난 고택이 고재선 가옥. 맞배지붕의 대문 안 마당으로 물길을 끌어들여 네모난 연못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양반집 형태다. 마을길은 돌담을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진다. 돌담 아래로 난 작은 개울도 길을 따라 흐른다.

발걸음을 오른편 골목으로 돌리니 길이 좁아진다. 돌담은 더 높아졌다. 그 아래로 물길이 이어진다. 2층 한옥 형태의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이다. 그 옆으로 약초밥상을 차리는 집도 보인다.

창평현청. 최근 한옥형으로 새로 지은 창평면사무소의 모습이다.
 창평현청. 최근 한옥형으로 새로 지은 창평면사무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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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현령과 도찰사의 선정비. 창평면사무소에 세워져 있다.
 창평현령과 도찰사의 선정비. 창평면사무소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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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모양으로 새로 지은 면사무소도 색다르다. '창평현청'이라고 크게 써서 현판을 붙여 놓았다. 그 앞에 역대 현령과 도찰사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 3기가 세워져 있다. 1824년과 1833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오랜 세월을 지켜 온 고목과 어우러져서 더 애틋하다.

현청 앞으로 난 돌담길에는 옛 정취가 넘실대고 있다. 어릴 적 고향마을 같다. 돌담도 품격이 있다.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돌담이다. 돌담의 길이가 3600미터에 이른다. 쌀엿, 한과, 된장 등 슬로푸드와 함께 창평을 슬로시티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고재환 가옥의 돌담을 부둥켜안고 있는 담쟁이 덩굴이 아름답다. 왼편에는 고정주 가옥이 있다. 솟을대문이 압권이다. 옛집의 고풍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 역할도 했던 집이다.

집주인 춘강 고정주(1863∼1933)는 창평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학숙(현 창평초교)을 세운 근대 교육운동가였다.

창평 삼지내마을 돌담길. 고즈넉한 골목을 따라 물길이 이어져 있다.
 창평 삼지내마을 돌담길. 고즈넉한 골목을 따라 물길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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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내마을 돌담길. 지난 1월 28일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이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다.
 삼지내마을 돌담길. 지난 1월 28일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이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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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에서 술래놀이를 하는 여행객이 보인다. 돌담에 두 팔을 기대고 얼굴을 묻은 뒷모습에서 옛 생각이 스친다.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의 얼굴도 천진하다. 오래된 집과 돌담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답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보니 더 매력적이다.

창평 쌀엿 체험장도 보인다. 여행객들이 갱엿을 밀고 당기는 '밀당'을 하며 엿 늘이기를 해볼 수 있는 곳이다. 단 20명 이상일 때만 가능하다. 체험 준비를 미리 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예약이 필수다.

삼지내 마을에서 발걸음을 월봉산 자락으로 돌렸다. 산 중턱에 있는 상월정(上月亭)으로 갈 생각에서다. 하소천을 끼고 달뫼미술관이 자리한 용운마을을 지난다. 돌담길이 이 마을에도 줄지어 있다. 마을 앞 들녘에는 볏짚을 저장해 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널브러져 있다.

삼지내마을 풍경. 젊은 여행객이 담벼락에 서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삼지내마을 풍경. 젊은 여행객이 담벼락에 서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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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마을 돌담. 삼지내마을에서 상월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용운마을 돌담. 삼지내마을에서 상월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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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저수지 둔치에서 창평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쌀엿의 주재료로 쓰이는 창평쌀을 생산하는 들판이다. 저수지에는 얇은 얼음이 얼어 있다. 차가워 보이는 물속으로 월봉산의 능선이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다.

여기서부터는 산속 숲길을 따라 걷는다. 개울을 건너고 야트막한 고개도 넘는다. 작은 돌담과 대숲도 지난다. 오래 전, 창평의 어린이들이 주된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소풍을 다니기도 했던 산자락이다.

아이들은 이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고 가재를 잡으며 놀았다. 놀다 지치면 멱을 감으며 물놀이를 즐겼다. 바위 밑에 숨겨놓은 보물도 찾아다니며 환호성을 질렀다. 카세트 녹음기 틀어놓고 고고춤도 추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중년이 되어서 그만한 아이들의 부모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찾아와 걸으며 옛 추억을 들려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숲길이 더 정겹다.

용운저수지 풍경. 월봉산 자락에 저수지에 반영돼 있다. 한쪽으로는 얇은 얼음이 얼어 있다.
 용운저수지 풍경. 월봉산 자락에 저수지에 반영돼 있다. 한쪽으로는 얇은 얼음이 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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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창평들. 쌀엿의 주재료가 되는 창평쌀의 생산단지다. 그 너머로 삼지내마을이 보인다.
 용운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창평들. 쌀엿의 주재료가 되는 창평쌀의 생산단지다. 그 너머로 삼지내마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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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산 자락의 상월정은 풍류를 노래하던 누정이 아니다. 인재양성에 목적을 둔 학숙이었다. 온갖 시름 다 떨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는, 요즘말로 산속 고시원인 셈이다. 호젓한 산속에서 잠시 옛사람의 마음가짐을 흉내 내보며 혼자 웃었다.

상월정 뒤로 조금만 더 오르면 월봉삼거리다. 마을사람들에게는 '깔끄막 삼거리'로 통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월봉산 정상에 올랐다가 용운마을로 내려온다. 아침 일찍부터 하늘거려 한나절만이다. 점심 때다.

돌담길과 마을길, 산속 숲길을 번갈아 뉘엿뉘엿 걸을 수 있는 단아한 길이다. 돌담길을 걸으며 옛 추억도 더듬을 수 있는 오붓한 길이다. 길 이름까지도 정겨운 '슬로시티' 담양 창평의 싸목싸목길이다.

용운저수지 옆 숲길. 상월정으로 가는 숲길이다. 삼지내마을에서 상월정으로 이어지는 '담양 싸목싸목길' 구간이다.
 용운저수지 옆 숲길. 상월정으로 가는 숲길이다. 삼지내마을에서 상월정으로 이어지는 '담양 싸목싸목길'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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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모양의 안내판. 담양 싸목싸목길의 상징인 달팽이를 형상화했다.
 달팽이 모양의 안내판. 담양 싸목싸목길의 상징인 달팽이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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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지내마을, #용운마을, #슬로시티, #싸목싸목길, #창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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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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