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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생겨난 백 년 역사의 전통시장 광장시장은 사시사철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울의 자랑스러운 명소가 되었다. 볼 일이 있어 종로에 갈 적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시장통 분위기와 큼지막한 순대, 녹두 빈대떡이 그리우면 광장시장을 찾곤 한다. 얼마 전 우연히 시장 2층엔 뭐가 있을까 올라가 보았다가 새삼스럽고 새로운 것과 마주치게 되었다.

광장시장 2층은 한복에 들어가는 각종 주단, 포목, 양품 등을 전문으로 하는 시장이다. 이곳에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나전칠기 공예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내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필수였다는 자개장, 자개함, 밥상, 크고 작은 그릇들도 모두 나전칠기 제품이었다. 특히 흰 두루미가 우아하고 입체감 있게 그려져 있던 큰 자개장롱이 기억에 남는다. 이불을 보관하는 용도외에 유년시절 동생들과 숨바꼭질하던 다락방 다음가는 안락하고 포근한 공간이었다.

광장시장 2층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곳

광장시장 2층 시장통을 환하게 밝혀주는 한복 주단 가게들.
 광장시장 2층 시장통을 환하게 밝혀주는 한복 주단 가게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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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2층에 가면 다양한 나전칠기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다.
 광장시장 2층에 가면 다양한 나전칠기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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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쓰이는 알록달록 화사한 주단들이 환하게 밝히는 광장시장 2층 시장통을 지나가다보면, 은은하게 빛나는 나전칠기 공예품들이 자리한 가게들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장롱에서 각종 함, 동물 등의 자개 공예품들이 흡사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둘러보게 된다. 특히 해와 달, 소나무, 거북이와 두루미 등 십장생(十長生) 그림이 자개로 그려져 있는 인테리어 소품용 공예품들은 훌륭한 예술작품이었다.

이외에도 부채, 명함 케이스, USB 저장장치, 열쇠고리 등 다양한 자개 소품들도 있어 소장용이나 선물용으로 좋은 것들이 많았다. 문득 새해 선물을 주고픈 사람이 떠올라 자개 무늬가 예쁘게 새겨진 탁상용 시계를 골랐다. 나전칠기 가게들은 모두 도매상이지만 일부러 찾아온 소비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터라 소매 판매도 한단다. 어느 제품에도 전통과 고유한 멋이 깃들어 있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무척 좋아할 것 같다.  

나전칠기(螺鈿漆器)의 '나전(소라 라螺, 비녀 전鈿)'은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 불렀다. 자개는 영롱한 빛깔의 진주 조개나 전복 조개의 껍데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게 썰어 다양한 가구, 용품등을 장식하는 데 쓴다. 작업하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 박는다'라고 일컬었다. 

나전칠기 기법은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고 기물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칠공예를 이른다. 이러한 장식법은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하여 미얀마·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원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나라에 따라 질감과 색감이 아름다운 돌인 호박, 청석을 쓰는 등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나전칠기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성행했고,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나전칠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나전에 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은 11세기에 문종이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이며, 12세기 초부터는 <교빙지 交聘志>에 고려의 나전제품이 빈번하게 기재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단화금수문경(螺鈿團花禽獸文鏡, 국보 제140호, 호암미술관 소장)이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되기도 했다.

전통공예의 자존심을 이어가는 사람들

나전칠기 공예품들을 예술작품처럼 감상하게 되는 곳.
 나전칠기 공예품들을 예술작품처럼 감상하게 되는 곳.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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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케이스, 열쇠고리, 탁상시계, USB 메모리등 자개를 넣은 소품과 생활용품도 많다.
 명함 케이스, 열쇠고리, 탁상시계, USB 메모리등 자개를 넣은 소품과 생활용품도 많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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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까지 타고 온 내 자전거도 그렇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브랜드는 달라도 제조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보니 자연스럽고 조심스레 그런 질문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수요가 많지 않고 모든 공정이 수작업인 제작 공정의 까다로움에도 아직도 우리나라에 나전칠기의 맥을 잇는 분들이 있단다. 보면 볼수록 나전칠기 공예품 하나하나에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새겨져 있었다.

광장시장 상인들 또한 장인들 못지않게 전통공예의 자존심을 지키는 분들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가게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뒤를 이어 나전칠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상인이자 30년이 넘는 경력의 나전칠기 제작자로 나전칠기에 회화기법을 접목시켜, 나전칠기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분으로 KBS TV에도 방영되었단다.

아들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 옻칠에서 절삭, 색칠에 자개 붙이는 공정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배우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전통적인 나전칠기 공예품 외에 현대인의 감성을 접목한 생활 공예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십 대 후반의 아들은 나전칠기 명장이 되는 게 꿈이란다. 그 꿈이 꼭 이뤄져 젊은 나전칠기 장인의 탄생이 기대된다.   

나전칠기 업계에서 일한지 35년이 넘었다는 이웃 가게 아저씨는 "나전칠기는 한국 고유의 전통공예품으로 아직까지 그 기술과 솜씨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 동양권에서는 한국이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만든다"라며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해 가게에 들른 후, 누리집을 통해 단골로 찾는단다. 일본의 사찰에서는 벽화를 나전칠기로 만들기도 한다고.

보통 외국인 관광객이나 나이든 시민들이 찾아오곤 하는 데, 젊은 사람이 이런 옛 공예품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감상(?)하는 게 대견했는지 상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나전칠기 또는 자개 공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나전칠기 작품의 무늬와 색깔이 참 다양하고 화려하다고 했더니,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 조개류를 사용하였으나 조선 후기부턴 청록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개껍데기와 전복껍데기 자체의 박막(薄膜)에서 생기는 색 현상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어 내다니 인간의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무형 문화재가 된 나전장

전통의 십장생 무늬가 들어간 나전칠기 공예품, 멋진 예술작품이다.
 전통의 십장생 무늬가 들어간 나전칠기 공예품, 멋진 예술작품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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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 장인인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대를 잇는 가게, TV에 방영되었다.
 나전칠기 장인인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대를 잇는 가게, TV에 방영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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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섬세한 만큼 나전칠기 공예는 제작 공정이 까다롭다. 깊은 바다 속에 사는 전복과 조개껍데기를 가공한 다음, 옻칠한 나무에 그림으로 올리고, 다시 칠을 하고 표면을 연마해서 만든다. 나전칠기의 제작기간은 25일에서 45일이 걸린다. 백골(나무틀)에 밑일(초벌작업)을 하고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자개를 붙이고, 이후에도 4번 정도 더 칠을 해서 만든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낼 수 없어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전칠기 공정은 재료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만들기까지 시일도 오래 걸리고,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보니 힘도 많이 든다. 광장시장통에 있는 나전칠가게들의 공예품들은 모두 30년 이상의 숙련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나전칠기 제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구식이고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서, 오히려 외국으로 많이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 신혼부부들은 가구를 구입할 때 나전칠기 제품보단 현대식 디자인의 가구를 선호한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 공예품이 외국인들에게는 인정받고 있으나, 정작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대와 유행에 밀려나면서도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손톱 끝의 열정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접목된 새로운 공예품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공예작가들과 상인들의 모습이 마음 짠했다. 최근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생활공예품으로서의 나전칠기가 조금씩 소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가적으로 나전칠공예를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주름질(자개를 줄로 썰어 문양 형태로 오려붙이는 솜씨) 중심의 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螺鈿匠)으로 지정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2월 30일에 다녀 왔습니다.
ㅇ 위치 ; 광장시장 2층에 올라가 상인들에게 나전칠기 가게를 문의하면 잘 알려줌.
ㅇ 운영시간 ;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6시까지 (일요일 휴무)



태그:#나전칠기, #자개, #광장시장, #무형문화재 나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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