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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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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 덮개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아울러 몸을 크게 다친 분들의 쾌유를 두 손 모아 빈다.

1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크게 다친 성남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또 한 번 가슴 저리는 아픔을 느꼈다. '사고공화국'의 멍에를 언제나 벗을 수 있을지 절로 암담하고 막막해지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성남 판교 사건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세월호를 떠올렸다. 그래서 또 한 번 눈물을 닦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앞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면서 사건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다시는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는 사건사고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또 어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세월호를 떠올리게 될 것은 거의 자명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성남 판교 소식을 접하고 세월호를 떠올리는 순간 괴이한 의문 한 가지를 품었다. 판교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 세월호 유족들을 폄훼하며 세월호를 그만 잊고 덮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분들은 혹 없었을까? 정말 괴이한 의문이었다.

입에 올리기가 왠지 저어되는 괴이하고도 송구스런 의문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또 어떤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든 세월호를 떠올리면서 예의 그 괴이한 의문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절대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우리 주변에 세월호를 그만 얘기하자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세월호 문제를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지겹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지금도 세월호를 말하는 사람은 '종북좌파'라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주장하는 과격파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무서워지는 추세다.              

<2>

지난 7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 지난 7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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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성당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주임신부님과 상의를 한 후 주일 교중미사 중 주임신부님 강론 다음에 내가 해설대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인 선언'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부탁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내 말이 진행되던 중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신자들 중 일부가 반발했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성당 안이 시끄러워져서 나는 준비한 말을 다하지 못하고 서둘러 마쳤다. 그러면서도 "들어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많은 신자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친 신자들이 더 많았다는 직감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성당 로비에서 서명용지를 여러 장 펴놓고 서명을 받는데, 곱지 않은 눈으로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고장 토박이로 본당 초창기부터 신자생활을 해온 내게도 낯선 얼굴이었다. 전혀 모르는 신자였다. 최근 전입해온 신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혹 모처로부터 밀명을 받고 파견 나온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가 진짜 신자이고 정상적인 신자라면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차마 그런 소리를 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함께….

성당 안에서 미사 중에 반발을 한 사람들은 대개 중년 이상의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세월호 얘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세월호 문제를 이제는 그만 덮어 버리고 잊어 버리자는 뜻일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과연 온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한번 생각이라도 해본 것일까? 

성당 안에서 미사를 지내며 세월호를 그만 잊자고 하는 신자들이 과연 미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천주교의 미사는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참혹한 십자가상의 죽음 사건을 계속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부당하고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확인하고 선포하는 행위가 바로 미사다.             

그런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들이 세월호를 그만 잊자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그만 기억하자고 하는 것과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과 세월호를 잊자고 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세월호 문제를 잊고 덮어 버리자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면서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스스로 살펴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려는 자세,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8월 방한 기간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 프란치스코 교종의 노란 리본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8월 방한 기간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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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본당 신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 친구의 본당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인 선언'을 준비하기 위한 서명 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주임신부님이 직접 안내 공지를 하고 서명을 받는데도 성과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본당 주임신부님은 한 주일의 교중미사를 마치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강복기도까지 마치고 파견기도를 하기 직전에 한 말이란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제가 여러분께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합시다'라는 파견기도를 할 텐데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하고, 다 함께 힘차게 파견성가를 부른 후 성당 밖으로 나가시겠지요. 그렇게 나가시면 그 응답대로 과연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십니까? 입으로는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겠다고 하고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피하고 가시는 그 무심한 마음,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생각으로 제대로 복음 전파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실천하는 것과 세월호 서명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그냥 가시고요, 세월호 서명이 복음 실천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서명을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합시다!"하니, 신자들의 "아멘"이라는 응답이 의외로 적더라고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명자가 많아서 줄을 짓고 300명 이상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꺼번에 300명 이상이 서명을 했다니 반가운 일이었지만, 주임신부가 그런 기발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30명 서명도 어려웠을 거라는 말이 쓴웃음을 짓게 했다.

천주교 신자들이 수없이 미사 참례를 하면서, 미사의 맨 마지막 기도인 파견기도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대하고 있는지도 유추가 가능한 일이었다.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합시다"라고 기도하는 사제도,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신자들도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복음생활'은 철저히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런 습관화가 만들어낸 사례는 아닐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더욱 무겁고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8월 방한하시는 동안 줄곧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고,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어느 인사가 '중립'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교종께 가슴의 리본을 떼시라는 권유를 했을 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또 한국교회에 세월호 유족들과 연대하라는 말씀도 하셨건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하여 다수의 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들을 무시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고 암울해지는 오늘의 현실이다.


태그:#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천주교인 선언, #프란치스코 교종, #한국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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