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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취재하며 선관위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개표장에 직접 들어가 보셨냐?" 였다. "동영상으로 많이 봤다"고 하거나, "꼭 현장에 들어가 봐야 아느냐? 개표상황표 같은 공문서가 말을 하는 건데..."라고 응수 해도 선관위 직원들은 "개표 현장도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그런 소리 말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곤 하였다.

그래서다. 지난 6·4 지방선거 여수지역 개표에 작심하고 참관인으로 들어갔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지금부터 6·4 지방선거 개표 현장에서 느낀 점과 아쉬움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흥국체육관에 마련된 여수 개표장
▲ 여수의 개표장 흥국체육관에 마련된 여수 개표장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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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표사무원, 참관인 교육 부실 : 선거 당일 오후 5시 30분께부터 사무국장은 500여명의 개표사무원과 참관인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를 이용해 개표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투표지분류기 운영 요원들에 대한 교육은 장비 점검을 하면서 이미 하였다고 들었다. 개함부와 심사집계부에 1명씩 배정된 책임사무원들에 대한 교육은 사전모의 테스트를 할 때 진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참관인들에게 개표 진행의 흐름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으니 개표참관인 교육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개표사무원들에 대한 교육은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개표 당일 사무국장이 전체를 대상으로 개표 흐름을 잠깐 설명했으나, 부족해 보였다. 당일 장내는 어수선하였고 '개표관리매뉴얼'조차 제대로 배부되지 않았다. 개표할 때 보니 책임사무원들만 매뉴얼을 한 권씩 갖고 있었다. 개표사무원들이 사무국장의 간략한 설명만으로 개표 전반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2. 1~2차 교부 스티커 없는 투표함들 : 6시 20분경 사전 투표함을 여는 것으로 개표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투표함들의 봉인 상태를 확인하던 중 1~2차 교부 스티커가 없는 투표함들이 모두 6개 발견되었다. 투표함에 1차 교부(시도지사, 교육감, 시장 선거)와 2차 교부(시의원, 도의원, 비례대표 도의원, 비례대표 시의원)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는 해당 투표함의 투표지가 무슨 선거 투표지인지 구분해 개표사무를 보다 신속하고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1․2차 교부 스티커가 없는 투표함의 처리 문제로 잠시 개표가 지연되었다. 다행히 이들 투표함에 해당 투표구가 어디인지는 적혀 있어, 참관인들의 허락 하에 봉인을 뜯어 개표하였다. 하지만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투표작업이 실수로 지체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1차 교부, 2차 교부 스티커 없는 투표함
▲ 1. 2차 스티커 없는 투표함 1차 교부, 2차 교부 스티커 없는 투표함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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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표지분류기 오작동 : 구형 투표지분류기는 잦은 오작동을 일으켜 해당 라인의 개표가 지체됐다. M업체 기술요원이 여러 차례 기기를 뜯어 수리한 뒤에야 잠시 가동되었으나 오작동은 되풀이되었다. 그 기술요원은 "구형 분류기는 우리가 납품한 기기가 아니"라며 수리의 책임이 없다고 하였다(구형 분류기 납품 업체는 H시스템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 사무원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수리 작업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분류기는 거듭 오작동을 일으켰고 결국 해당 라인의 투표지를 다른 라인으로 옮겨 개표하였다.

신형 투표지분류기의 오작동도 적지 않았다. M기술요원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분류기 수리를 하느라 바빴다. 두 대의 신형 분류기에서는 과열로 인해 개표상황표가 시커멓게 출력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프린터 용지에 '감열지'(팩스나 현금 영수증 따위에 많이 활용되는 종이)를 썼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선관위는 분류기의 프린터 용지는 특수 감열지라 일반 감열지와 달리 "보존 기간이 5년 이상"이며 "개표상황표의 기재 내용이 훼손될 우려가 전혀 없다"고 주장해왔다(5월 27일, 중앙선관위 브리핑 "개표상황표 인쇄용지에 대하여" 참조). 그런데 공문서인 개표상황표가 시커멓게 출력됨으로써 감열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신형 분류기는 이번에 처음 사용하는 기기임에도 미분류율이 매우 높았다. 잘못 기표된 투표지를 미분류로 분류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정상적인 투표지조차 미분류로 분류하는 일이 잦았다. 심사집계부의 한 개표 사무원은 정상적인 투표지조차 미분류로 분류하는 분류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분류기 과열로 시커멓게 출력된 개표상황표
▲ 시커멓게 나온 개표상황표 분류기 과열로 시커멓게 출력된 개표상황표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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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관위 직원들의 절차에 없는 개표진행 : 관람석의 한 시민에게서 "선관위 직원들이 단상의 위원장석 뒤쪽에서 무슨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확인하러 갔을 때 위원장이 "올라오지 마라"고 제지하였다. 하지만 참관인은 참관이 가능하다며 위원장석이 있는 단상에 올라갔다. 선관위 직원 두 사람이 투표지 바구니 앞에서 검표를 하고 있었다. 무슨 작업이냐고 묻자 "투표관리관 도장이 빠진 게 발견돼 그런 투표지가 더 있는지 확인 중이다"라고 하였다. 개표의 정확성을 위한 일이라고 여겨 처음에는 그냥 물러났다. 그런데 그들은 30분 넘게 계속 그 자리에서 작업하였고 위원장도 그들 작업에 관여하는 게 포착되었다.

무언가 이상해 다시 확인하러 갔다. 이때는 사무국장이 "여기는 지휘부다. 올라오면 안 된다"며 제지하였다. 중앙선관위 선거1과 김종국 사무관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선관위가 절차에 없는 개표진행을 하는데 어찌해야하는지 문의했다. 그는 참관인의 이의제기는 정당하다며 사무국장에게 설명을 요구하라고 하였다. 이에 사무국장은 "교부수보다 투표지가 더 나오는 현상의 원인 규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참관인으로서 개표절차에 없는 절차를 진행하는 데 대해 이의제기 한다"며 중단을 요구하였다. 사무국장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해당 직원들의 작업을 중단시켰다(관련기사 : 여수선관위, 절차에 없는 이상한 개표진행).

6. 개표 참관 방해 행위 : 공직선거법상 개표 참관인은 개표장 어디든 다니며 감시,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현장은 그렇지 못했다. 이름을 모르는 두 명의 선관위 직원은 '질서요원'이란 비표를 달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 "왜 그렇게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촬영하느냐?"고 항의하자 "이의제기에 대해 채증하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7. 심사집계부의 수작업 개표 : 개표 초반부는 그런대로 성의를 보였다. 100매 묶음을 들고 한 장 한 장 보는 건 아니고 휘리릭 넘기는 형태였으나 몇 차례 반복함으로써 다른 후보자 표가 섞인 혼표를 찾는 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개표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대충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밤샘 개표로 다들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웠다.

8. 참관인 없는 개표 - 개표 참관인 대부분은 '공정한 개표관리'에 대한 감시보다는 그가 속한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락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선관위 직원이 개표상황표 사본을 게시판에 붙이면 그곳에 우르르 몰려가 자신의 후보자가 몇 표나 득표하였는지 확인하느라 여념 없었다. 그 밖에 참관인들이 주로 참관했던 영역은 투표지분류기 운영부와 심사집계부였다. 참관인들이 검열위원석, 보고석에까지 접근하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관외 투표 개표나 거소 투표지를 개표하는 심사집계부에도 참관인들은 거의 접근하지 않았다.

9. 검열위원들의 태만한 검열 : 검열 위원들의 투표지 검열 작업도 좀 실망스러웠다. 그들 중에서 투표지를 한 번이라도 만져보는 위원은 1-2명에 불과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개표상황표만 대충 훑어보는 게 전부였다. 검열 위원 중 한 사람은 책상 위에다 스마트폰으로 TV를 켜놓고 작업하였다.

10. 비표 없는 사람의 개표장 출입 : 개표가 한창 진행되던 새벽, 개표장에 양복을 입은 낯선 두 사람이 비표도 없이 들어와 게시판의 개표상황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선관위 직원에게 알렸더니 그가 그들을 내보냈다. 그들 두 사람 말고도 비표 없이 개표장에 들어왔던 자들은 더 있었다. 그럼에도 선관위 직원들은 이들에 대해 엄격히 출입통제를 하지 않았다. 개표 작업을 하느라 여력이 없었겠지만, 개표장 출입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개표관리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M업체가 파견한 기술요원도 개표장에 들어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선관위는 그를 "개표사무협조요원"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선관위의 개표관리매뉴얼은 개표사무협조요원을 "전기, 통신, 의료, 소방 등"으로 제한한다. 공직선거법에 "투표지분류기, 계수기 등의 기술요원"이 개표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11. 위원장 도장 없이 투표지 봉인 : 새벽 6시 30분 무렵부터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지를 봉인하는 작업을 하였다. 봉인한 투표지 박스에는 위원장 도장이 찍힌 것도 있고 도장 날인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직원들은 도장 날인이 없는 박스도 투표구별 큰 박스에 그냥 집어넣었다. 위원장은 분명 그들이 작업하는 곳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봉인 투표박스에 도장을 찍었을까? 선관위 직원들이 찍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태그:#6. 4 지방선거 개표, #여수시선관위, #개표참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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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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