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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 해임을 제청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KBS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청영방송'으로 불려온 KBS의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여 명실상부한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하는 지난한 과정에 접어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별다수제'를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혁이 핵심적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중앙일보>도 6월 7일자 사설에서 특별다수제를 거론하면서 "어떤 방식이든 이번만은 KBS가 '한국의 BBC'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배·운영의 틀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다.

 

지배구조 개선보다 더 시급한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다수제는 답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지배구조는 KBS 개혁의 필요조건의 하나로서 종결점을 찍는 수순이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매듭은 아니다. KBS의 개혁, 즉 정치적 독립성 확보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이라는 외부적인 조건과 내적 언론자유의 보장이라는 내부적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꼭 필요하다면 마무리 수순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유족들의 항의방문이 촉발시킨 외부의 사회적 분위기는 성숙되었다고 본다. 하나의 축이 구축된 것이다. 이것만 해도 '6월 항쟁'에 비견되는 기적에 가까운 호기다. 그러면 나머지 한 축에 해당하는 내부적 조건의 성숙이라는 과정이 남아있다. 

 

KBS 양대 노조와 기자협회는 공정보도와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책의 마련에 착수했다고 한다. KBS 기자협회 집행부는 '보도국장 임명 동의제' 등 여러 제도적 대안을 취합한 '뉴스 개선 시안'을 이미 마련했으며,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방향을 잘 잡은 것이다. 지금 지배구조 문제에 집착하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신문개혁의 과제로 소유구조의 개혁을 목표로 입법운동을 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 해당하는 1998년 11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이, 2001년에는 민변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공동으로 정기간행물법 개정을 위한 입법 청원을 했었다. 그 내용은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소유지분 한도를 30%로 규제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기인 2004년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소유지분 한도는 제외하고 언론사의 시장점유율 제한, 편집위원회 구성, 신문유통원 설립 등을 규정한 신문법을 통과시켰다. 소유지분의 문제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된다 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방법은 아니다. 소유지분 한도를 30%로, 아니 그 이하로 제한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는 것이다. SBS나 삼성 등을 보면 알 일이다.

 

이후 한나라당과 메이저 신문사들이 신문법 재개정을 추진하면서 헌법소원을 냈고, 2006년 6월 29일 헌재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냄으로써 개혁입법이라는 신문법 조항들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헌재 판결의 취지에 대해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법을 통한 신문개혁은 무산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가운데 운동단체 위주로 법을 개정하여 개혁을 성취하겠다는 시도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었다. 시장점유율 제한은 종편이 생긴 지금은 연동하여 다시 거론할 만하고, 편집위원회 구성은 방송독립에도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지분 제한은 여전히 답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은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과 유족들의 노력으로 방송독립이 절실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었다고 본다. 그러면 특별다수제가 해결책인지에 대해 따져보기로 한다. 이것은 여야 누구든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번 선거 이후 교총이 교육감 직선제를 폐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교총은 선거 다음날인 6월 5일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을 추진해 직선제 폐지를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주정부 시절 자신들이 필요해서 만든 법을 이제 와서 불리하게 나타나니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경우에 따라서 공영방송사 지배구조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특별다수제 따위로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는 발상은 불안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정치상황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으로 춤을 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혁의 방향은 외부의 사회적 조건이 성숙한 마당에 지배구조를 손보기에 앞서 내적 언론자유의 확보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에너지만 소진되고 얻는 건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간부들까지 '국민의 방송'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진실보도와 공익적 프로그램으로 진정성을 보여주고, 동시에 보도본부장 임명동의제나 노조가 참여하는 편성위원회 구성, 취재보도의 자유 등 그것을 위한 안정적인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사실은 내적 언론자유의 문화가 정착되면 지배구조는 문제도 아니게 될 것이다.


태그:#KBS, #특별다수제, #국민의 방송, #방송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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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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