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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수십 년 전, 삭발을 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풋풋한 출가구도자 한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스님은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절로 들어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탑니다. 버스 요금은 내릴 때 차장아가씨에게 내던 시절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스님이 버스비를 내려하자 차장아가씨는 누군가가 이미 냈다고 하며 그냥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몇 십 년 전이니 버스비라고 해봐야 백 몇 십 원이거나 많아도 몇 백 원을 넘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선뜻 대신 지불해 준 그 몇 백 원은 그 스님이 출가수행자로 살아오는 지금껏 두고두고 가슴으로 새기게 되는 무주상보시가 되었나 봅니다.

그 스님은 일본과 미국 등으로 나가 공부를 하고, 벨로잇칼리지(WI USA) 부교수를 역임한 후 귀국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도 역임합니다. 수행이력이나 법력으로 봐 몇 권 쯤의 책을 펴냈을 법 하지만 그 스님은 '출판에 의한 잘못된 지식이나 그 남용의 폐해는 거둬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동안 책을 출간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스님이, 당신의 생애에 있어 처음으로 책을 쓰면서 몇 십 년 전에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그 몇 백 원에 대한 감화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봐 무주상보시는 액수로는 가늠되지 않는 감동이며 흐르는 세월에도 줄거나 시들지 않는 커다란 행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유마경과 이상향>

 <유마경과 이상향>(지은이 화공 스님/민족사/2014. 5. 30/2만 9500원)
<유마경과 이상향>(지은이 화공 스님/민족사/2014. 5. 30/2만 9500원) ⓒ 민족사
연애소설만 애틋하고, 탐정소설만 흥미진진한 게 아닙니다. 불경 중에도 애정소설  만큼이나 재미있고, 추리소설만큼이나 상상력을 동원해 가며 읽게 하는 경전이 있습니다. <유마경과 이상향>(지은이 화공 스님/민족사)이 그럴 겁니다.

팔만사천이나 된다는 무수한 불경이 있습니다. 그 중 십중팔구는 부처님이나 출가 수행자들이 주인공이거나 쓴 경전입니다. 하지만 유마경은 출자수행자가 아닌 재가불자, 출가를 하지 않은 일반 불자 유마힐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재가제자로 대자산가인 유마힐이 병을 칭하고 누워 있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문병을 가라고 합니다. 책 제1막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유마힐 거사를 문병 가라는 부처님께 부처님 10대 제자들이 문병을 가지 못하는 이유를 낱낱이 설명하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부처님 10대 제자들이 유마힐 거사에게 과거에 이러이러한 일들, 선정(禪定)·지계(持戒)·걸식(乞食)·불신(佛身) 등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실천수행에 대하여 깨진 일이 있다는 걸 부처님에게 고백하는 장면으로 펼쳐나가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10대 제자들이 유마힐 거사를 병문안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을 들은 부처님은 결국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병문안 보냅니다. 병문안을 간 문수보살과 유마힐거사 간에 법거량을 하듯 주고받는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는 상황들이 2막에서 펼쳐집니다. 사실 유마힐 거사는 병들지 않았습니다. 병을 칭 한 것은 방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편리에 따라서 승속을 막론하고 거짓말을 하고서도 '방편으로'하고 하며, '방편'이라면서 그것을 쓰는 사람의 허물을 오히려 덮거나 무마하려는 의미로 악용되고 있다. 유마 거사의 방편을 보면, 방편을 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쓰는 사람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방편의 대상을 위해 쓰인다는 점이다. 이 점이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이 방편과 거짓이거나 속임수로써 '방편'이라고 하며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편의를 위해 쓰는 사람들의 차이다. -<유마경과 이상향> 158-

"일체 중생이 병든 까닭에 나도 병들었습니다"

아픈 원인과 치료방법을 묻는 문수보살의 질문에 유마힐 거사는 "일체 중생이 병든 까닭에 나도 병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만약 일체중생의 병이 사라지면 즉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에 들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어 말합니다.

맞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그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아파하니 국민 모두가 아파합니다. 희생자와 가족들이 격고 있는 아픔이 사라지면 국민들이 격고 있는 아픔도 사라질 거니 우리 모두는 중생이자 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마경'을 옮기거나 해석해 놓은 책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해 놓은 책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새길 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유마경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맛을 내는 식재료라도 누가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먹는 사람들이 느끼는  맛은 천양지차입니다. 글 또한 원전은 같을 지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해설하느냐에 따라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의미와 느낌은 많이 다를 겁니다.

해설하는 글과 설명하는 말은 글맛을 가미하고 글 뜻을 진하게 우려내는 묘한 수단이기도 하고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 량과 종류는 제한되지 않는 무량 무수입니다.

'3일'이라 하니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이왕 사족을 달았으니 한마디 더 붙이자면, 사대부가 3일 간 책을 읽지 않으면 지켜야 할 법도와 행동이 흉중에서 서로 어긋나니 스스로가 거울을 봐도 면목이 서지 않는다. 뭔가 한마디 해야 할 장소에서도 마음이 비었으니 하는 말마다 가식이요, 진솔한 맛이 없다. 오히려 청중이 듣기 부끄러워 외면을 하고 만다. 중국의 북송北宋시대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 거사의 말이다. -<유마경과 이상향> 146쪽-

<유마경과 이상향> 저자 화공 스님께서는 사족이라고 하셨지만 스님께서 적잖이 달아 놓은 사족, 예문과 일화 들은 <유마경>에 담긴 뜻을 재미있게 맛내 주는 조미료 같은 설명이 되고, 유마힐 거사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깊이 새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마중물 같은 해설입니다.

사족으로 달아놓은 해설, <유마경과 이상향>을 깊게 우려주는 별미

사실 책 제목에 '경'자가 붙어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종교적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어 일반 독자들에게 권하기엔 참 부담스럽습니다. <유마경과 이상향> 또한 불교 교리를 위주로 하고 있는 불서임이 분명합니다. 그러함에도 <유마경과 이상향>은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교양도서로 읽어도 좋을 거라 생각됩니다.  

부처님 10대 제자들이 출가도 하지 않는 유마힐 거사가로부터 깨졌다는데서 느끼는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카타르시스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출가 수행자들이 말하는 불교가 아니라 재가불자인 일반인이 말하는 불교, 감동을 줄 수 있는 불교가 뭔지를 오롯이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공 스님이 사족으로 덧 넣어 놓은 해설 글들은 너무 불교적이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고 딱딱 할 수도 있는 <유마경>을 애정소설 만큼이나 재미있고, 추리소설만큼이나 상상력을 동원해 가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글맛을 더해주는 독서 조미료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유마경과 이상향>(지은이 화공 스님/민족사/2014. 5. 30/2만 9500원)



유마경과 이상향 - 사바에서 부르는 불이(不二)의 노래

화공 스님 강설, 민족사(2014)


#유마경과 이상향#화공 스님#민족사#유마힐#문수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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