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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책표지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책표지 ⓒ 토네이도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국)'니 '이머징 마켓'이니, 특히 '차이나'의 이름이 든 펀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이들 신흥국이 성장해서 이끌어 나갈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유망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그 유망하다는 펀드들의 수익률은 여전히 부진하며, 어느새 장기투자자가 된 이들은 장기적으로 속을 썩이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신흥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장기적인 전망마저 안 맞는 것일까? 이러한 사정이 궁금해서 펼쳐든 책이 바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이었다. '브릭스'니 '이머징 마켓'이니 하는 말을 만들어 낸 모건스탠리라는 금융투자회사에서 수십 년간 신흥시장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온 루치르 샤르마가 쓴 책이다.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은 "비슷한 수준의 소득 국가들 중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로 경제성장 전망치를 뛰어넘는 국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신흥시장 전문가였던 저자가 신흥국가 중에서 어떤 나라가 더 빠르게 성장할지에 대한 나라별 분석을 써 놓은 책이다.

'신흥시장에 투자하지 말라'는 신흥시장 분석 경제서

책에는 신흥국가 중에서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후보가 될 나라들이 열거돼 있긴 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 '브릭스'니 '이머징 마켓'이니 하며 그동안 유행했던 신흥국의 장기 성장에 투자하라는 조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신흥시장의 장기 성장은 허구일 뿐이며, 이제는 미국 같은 선진시장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머징 마켓이니 하는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펀드가 붐을 이뤘던 것은 신흥국들이 놀라운 경제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2000년에서 2009년의 10년간은 신흥시장 전반이 성장했다. 정점에 달한 2007년 세계 183개국 중 3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중 114개국은 경제성장률이 5% 이상이었다. 그 중심엔 'BRICS'가 특히,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예상되는 중국에 대한 기대가 넘쳐났다. 그래서 브릭스와 차이나 펀드가 유행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신흥국들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전 세계적인 유동성 팽창의 결과였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이 유동성 팽창이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을 키워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진단이다.

신흥국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유동성이 늘어나서 혜택을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미국이 테이퍼링이라는 유동성 축소에 나서니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주장됐던 신흥국 전체의 장기성장은 허구일 뿐, 앞으로는 국가별로 발전하는 국가도 후퇴하는 국가도 나올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예측이다.

저자는 지난 몇 년간 붐을 이뤘던 원자재 투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이명박 정권 때 세계 유가가 갤론당 100불을 넘기자 자원확보에 나서야 한다며 원자재 투자에 열심인 적이 있었다. 저자는 바로 그 원자재 투자 열풍을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에 비유하여 '원자재닷컴'이라 칭한다. 막대한 유동성에 의한 버블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영원히 올라갈 것 같았지만, 지난 200년 동안 원자재 전반의 가격은 꾸준한 하락했다고 한다. 특정 자원의 가격이 10년간 상승을 거듭하면, 원자재 채굴 혹은 경작 방식의 효율성이 높아지거나, 가격이 저렴한 대체제가 개발되면서 20년에 걸쳐 가격이 하락했다고 한다. 미국의 셰일 가스 개발이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몇 년간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수요 증가가 아니라,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이 풀어헤친 막대한 유동성에 의한 투기적 수요의 결과였을 뿐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결국 그동안 유망한 투자라고 말했던 것들이 유동성에서 나온 거품에 불과했다는 것이고, 그 거품이 꺼지니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친절하게도 새로운 유망한 투자 분야를 알려준다. 신흥시장과 원자재 투자의 아픔을 대신할 분야로 저자 루치르 샤르마는 신흥시장의 소비자 부문과 선진국 경제를 언급한다.

신흥시장은 거품이니 선진국 펀드에 투자하라고?

신흥국의 대표였던 중국 경제가 둔화되고 원자재닷컴이 종말을 맞았다고 해서 세계 경제도 대파국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변형될 뿐이라고 판단한다. 신흥시장은 공장을 가동시키는 원자재의 채굴에서 신흥 소비자 계층의 구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대전환을 맞을 것이라 한다. 신흥 시장이 침체한다고 해서 탄탄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신흥시장의 소비자 부문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며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난국에 처했던 서구 경제에 큰 활력소가 된다고 한다. 자본이 다시 세계 경제에서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되고 이는 기술이 앞선 선진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최고의 지식경제대국인 미국의 기술 산업이 향후 10년 안에 다시 한 번 열풍을 일으키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의 주장대로 지난 한해 가장 큰 수익률을 보인 펀드들은 소비자를 말하는 '컨슈머'라는 이름이 들어간 펀드였고, 미국·독일 등 선진 주식 시장의 상승률이 돋보였다. 자 이제 알았으니 그대로 따라하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다. 2012년 출간돼 2년이 안 된 지금 벌써 틀린 것으로 판명된 예측들이 나오니 신중해야 한다. 책에선 터키와 인도네시아를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후보로 그것도 '거인'으로 부상할 나라로 평가했지만, 그 거인들은 요즘 신흥국 약체 'F5'(Fragile 5, 취약한 나라 5 개국)의 명단에 올라 신음 중이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도 발목을 잡는다. 브릭스 같은 신흥시장이 유망하다고 할 당시에는 이것이 단지 유동성의 효과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 선진국이 유망하다고 분석하지만, 그 대표적인 미국과 일본이야말로 유동성의 공급원이자 유동성에 기댄 경제 아닌가. 나중에 또다시 그것도 유동성의 장난일 뿐이었다고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개인들의 뒷북 투자를 경고하는 '굿하트의 법칙'

그래서 저자가 '굿하트의 법칙'을 말하는지 모른다. 전문가들이 어떤 경제 성장의 규칙을 성문화하고 언론이 이에 관한 것을 운운할 때쯤 되면, 그런 규칙은 이미 효력을 상실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찰스 굿하트 전 영국은행 총재의 이름을 딴 이 법칙은 경제를 예측하는 지표가 회자되기 시작하면 그 예측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투자에 대한 말로 옮긴다면 "어떤 투자가 유망하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도 알고 투자에 나서고 유행을 이루면 더 이상 유망한 투자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금융화 사회의 모습 아닐까.

금융화 사회라는 것은 돈이라는 유동성이 수익률을 쫓아 몰려다니는 사회다. 금융투자회사들이 이것이 유망하다고 그럴싸 하게 만들어내면 투자 자금이 몰려든다. 그러다 시들해지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투자를 유도한다.

금융화 사회에서 개인들은 재테크를 필수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 금융투자회사의 권유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영리하게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위 '뒷북 투자'에 나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비단 개인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공기업들도 그랬다. 책 저자의 말대로 '원자재닷컴'의 거품이 한창일 때, 이명박 정권은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안달이 났다. 그 결과 해외자원개발에 등 떠밀려 나선 에너지 공기업들은 부채가 무려 18조 원이나 늘었다. 석유공사같은 경우 2009년 캐나다 자원개발 업체인 하베스트를 졸속 인수해 8202억 원의 누적 손실을 입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개인이든 큰 기관이든 간에 투자에 나선 이가 손실을 보아도 투자를 권유한, 투자 상품을 판 금융투자회사는 수수료를 챙기며 돈을 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금융화 사회의 참 모습이리라.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은 뉴욕타임스가 '2012년 최고의 비즈니스 북'으로 선정할 만큼 참 잘 써진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참고하고자 한다면 그 배경도 읽어내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덧붙이는 글 |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루치르 샤르마 씀 / 서정아 옮김 / 토네이도 / 2012.08. / 2만 원)



브레이크아웃 네이션 - 2022 세계경제의 운명을 바꿀 국가들

루치르 샤르마 지음, 서정아 옮김, 토네이도(2012)


#브레이크아웃 네이션#루치르 샤르마#신흥시장#굿하트의 법칙#원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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