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9~20일, SBS <물은 생명이다> 촬영을 위해 섬진강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6시30분 첫차를 타니, 경남 하동에 오전 10시 20분경에 도착을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하동은 처음인 듯합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주로 물과 하천을 담당했어도 섬진강에는 올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섬진강의 봄은 매화꽃으로부터 시작된다.
▲ 섬진강변 매화 섬진강의 봄은 매화꽃으로부터 시작된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왔다 하더라도 회의 때문에 섬진강의 풍취는 못 보고 다시 올라가기 바빴습니다. 'MB표 4대강 사업'이 터지고 나서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의 노래로만 익혀 왔습니다.

섬진강은 봄이었습니다. 서울은 여전히 쌀쌀한 날씨지만, 이곳은 하루 뒤 매화축제가 예정될 만큼 이미 매화가 만발해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지리산은 아직이지만, 강변을 따라 매화와 동백꽃과 산수유, 물앵두가 한껏 피어오른 것이 그 자체가 평화로워 한동안 넋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공원에는 너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누군가 새겨 넣은 '섬진강♡'가 눈에 들어오고, 곳곳에 수달 발자국이 널려 있는 그런 모래밭입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예전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도 이리 너른 모래밭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4대강 사업 이전,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도 저리 너른 모래밭이 있었다.
▲ 섬진강 모래밭 4대강 사업 이전,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도 저리 너른 모래밭이 있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참게 잡이에 나선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올 봄 들어 처음 나왔다는 이은재(71) 할아버지는 물 속 깊이 들어가 쇠파이프로 땅을 파고 그물을 연결합니다. 참게는 봄에 산란하러 하류로 내려오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40년 동안 참게를 잡아왔다는 이 할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줄어서, 지금은 강원도로도 참게 잡으러 간다"며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습니다.

수달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 섬진강

섬진강은 수달 서식지로 유명합니다. 현재 전남 구례군 토지면 일원 1.83㎢(약 55만3천 평)는 '섬진강 수달서식지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2001년부터 지정돼 있습니다. 강 양쪽에 수달 관찰대 및 감시 초소가 있어 수달 서식지 훼손 행위에 대한 단속 및 수달 서식 모니터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두성(63) 구례문화원장은 섬진강 수달의 산 증인이자 보전지역 지정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 원장은 1997년 1월 당시로서는 드물게 수달(그것도 새끼를 밴 수달 포함)을 120일 동안 촬영했습니다. 수달도 우 원장이 익숙해졌는지 경계를 풀고 2~3m 앞까지 다가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평사리에 드넓게 펼쳐진 모래밭에 수달 발자국이 어지럽다.
▲ 섬진강 수달 발자국 평사리에 드넓게 펼쳐진 모래밭에 수달 발자국이 어지럽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이곳은 조선시대 광양에서 서울을 잇는 나루터였다고 합니다. 보호지역 지정 이전에는 모래밭 위에 텐트를 치고 낚시하는 장소로도 알려졌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반대가 크지 않았냐는 질문에 우 원장은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전회' 활동을 하고 있어서, 크게 반대가 없었다"면서 "구례군 주민들이 보전지역 지정을 위한 청원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두성 원장은 "연어 새끼 방류 사업의 결과로 수달이 회귀하는 연어를 잡아먹기도 한다"면서 "여기는 수달이 안심하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섬진강 둔치에 널려 있는 큰 바위를 가리킵니다. 수달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섬진강 물이 바위 밑까지 차고 그 안쪽에 수달의 보금자리가 있어서 천적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강변에 자리잡은 바위 틈새에 수달이 살고 있는데, 섬진강 물이 천적의 접근을 막아줘 수달이 새끼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수달 서식지 보전 감시단원이 현장을 순찰하고 있다.
▲ 수달 서식의 비결 강변에 자리잡은 바위 틈새에 수달이 살고 있는데, 섬진강 물이 천적의 접근을 막아줘 수달이 새끼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수달 서식지 보전 감시단원이 현장을 순찰하고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마치 수중에 있는 비버의 집과도 같은 구조입니다. 수달의 천적 중에는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시골 개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수달은 물에서는 빠르지만, 육지에서는 아무래도 개에게는 못 당한다는 것이 우 원장의 말입니다. 로드 킬도 발생합니다.

섬진강 하구둑으로 바닷물 막자는 황당한 주장

섬진강의 매력은 상류가 댐으로 막혔지만, 그 아래로는 막힘없이 바다로 흐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물과 바닷물을 왕래하는 황어, 숭어, 뱀장어, 은어 등의 어종이 풍성할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황어가 매화향을 몰고 온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매화가 필 때 황어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6~8월의 섬진강은 은어의 강입니다. 맑은 강에서만 볼 수 있는 은어는 임금님 진상품이었습니다. 영어로 'Sweet Fish(스위트 피시)'라는 은어는 낚시꾼들에게는 최고의 맛으로 손꼽힙니다. 섬진강에 은어가 몰릴 때는 일본 사람들이 원정을 오기도 합니다. 낚시 천국 일본에서는 지역 별로 은어 낚시 예선을 치르고, 결승전을 섬진강의 남도대교 부근에서 치르고 그 장면을 TV에서 생중계했을 정도라 하니, 섬진강 은어의 인기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도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섬진강 제방을 공사하고 있다.
▲ 섬진강 제방공사 국도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섬진강 제방을 공사하고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섬진강은 물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섬진강의 물이 새만금, 광주 전남 등 다른 곳으로 보내지면서, 상류 지역은 자정작용이 약해져 수질이 나빠졌습니다. 그나마 화개장터 부근에서 내려오는 지리산의 맑은 물과 풍성한 모래 때문에 하류의 수질이 나쁘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만, 하류에서는 바닷물이 올라와 수중 생태계의 변화가 크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1960년 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은 새만금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주암댐은 광주 전남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하류 광양에서도 하루 55만 톤의 물을 취수하면서 염분 농도 짙은 바닷물이 더 많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치인의 황당한 주장도 나왔습니다. 섬진강에 살고 있는 이원규 시인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섬진강 하구둑으로 바닷물을 막자는 공약도 나왔다고 합니다. 낙동강, 금강을 살리기 위해 하구둑을 철거하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섬진강을 하구둑으로 막자는 주장은 강을 아예 죽은 강으로 만들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주장이 나올지 사뭇 걱정되는 대목입니다.

제방 공사장 부근에서 확인 된 야생동물 발자국. 콘크리트 제방은 이들의 서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야생동물 발자국 제방 공사장 부근에서 확인 된 야생동물 발자국. 콘크리트 제방은 이들의 서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물속에 핀 '벚굴', 갈수록 줄어들어

섬진강에는 강낭콩만한 재첩도 유명하지만, 15cm 크기의 벚굴도 유명합니다. 벚굴은 워낙 커서 3~4개 정도만 먹어도 허기를 감출 수 있을 정도입니다. 벚굴이란 이름은 벚꽃이 필 때, 즉 봄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망덕 포구에서 만난 주민은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고향으로 귀촌해 이 지역 특산물인 벚굴을 채취해 판매하고 있는 강철(30)씨는 "벚굴은 머구리라는 잠수부가 캐내는데, 벚굴 밭에 가면 마치 물속에 벚꽃이 잔뜩 피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벚굴은 일반 굴과 달리 짠 맛이 덜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속살이 특징입니다.

물 속에서 마치 벚꽃이 잔뜩 핀 것 같다고 해서 '벚굴'이라 불린다고 한다. 사진 좌측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은 석화로서 벚굴은 석화보다 7~8배 이상 크다. 섬진강 민물이 줄면서 벚굴의 서식지도 줄고 있는 상황이다.
▲ 섬진강 벚굴 물 속에서 마치 벚꽃이 잔뜩 핀 것 같다고 해서 '벚굴'이라 불린다고 한다. 사진 좌측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은 석화로서 벚굴은 석화보다 7~8배 이상 크다. 섬진강 민물이 줄면서 벚굴의 서식지도 줄고 있는 상황이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이는 벚굴이 바닷물보다 민물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탓이라고 강철씨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벚굴은 다른 곳에서도 나오지만, 물이 오염된 탓에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섬진강 민물이 줄어들면서, 벚굴 채취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지리산에 기대어 흐르는 섬진강은 다양한 지역 먹거리와 문화가 어우러져 사람들이 붐비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현재 섬진강 곳곳에 도로 공사가 진행 중에 있어서, 자칫 섬진강의 자연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섬진강은 손 덜 댄 자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자연성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된 우리 강이 나아가야 할 미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강과 사람, 생명이 함께 어우러진 섬진강이 계속 흐르면서 자연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이제 섬진강만의 일은 아닐 듯합니다.

여울과 소가 어우러진 섬진강은 잘 발달된 습지가 있는 등 손 덜 탄 자연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 섬진강 습지 여울과 소가 어우러진 섬진강은 잘 발달된 습지가 있는 등 손 덜 탄 자연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SBS '물은 생명이다' 섬진강편은 오는 3월 28일 오후 4시 30분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개인블로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태그:#섬진강, #수달, #은어, #벚굴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유/미' 세상을 꿈꿉니다. 강(江)은 흘러야(流) 아름답기(美) 때문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