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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는 이웃의 태반이 미국사람이다. 근처에 미군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주한미군을 좋아하지 않는다. 갖가지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았다든가,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 내게 미군이 심어 준 이미지는 꽤나 부정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낯선 이웃들이 사는 집의 창문을 깨부수거나,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일을 하진 않는다. 싫어하는 것이 옆집에 사는 미군이 아니라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기 때문이다. 옆집 사람을 곤경에 빠트린다고 주한미군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나는 이런 발상이 상식이라 여기며 살았다.

고려대 성소수자 동아리 플래카드 사진(좌), 플래카드가 끊어져 사라진 뒤의 잔해(우)
 고려대 성소수자 동아리 플래카드 사진(좌), 플래카드가 끊어져 사라진 뒤의 잔해(우)
ⓒ 사람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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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려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에서 걸어 둔 현수막이 찢겨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성소수자 학우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는 내용의 플래카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3일)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누가 찢었는지 밝히지 못한 상황이다.

고려대서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테러, 우려된다

고려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건 처음은 아니다. 한 달 전에는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2년 여간 농성을 벌여온 김영곤 선생님의 민주광장 텐트농성장이 새벽 2시께 괴한에 의해 박살난 적이 있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속에 한 학우의 대자보가 찢겨져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인증샷으로 올라갔고 5월에는 문과대 학생회에서 주관한 5·18 사진전이 훼손당한 일이 있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마주하는 학내외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일련의 테러행위를 방치해두었다가는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겠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겠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을 하나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생각은 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싫어하는 것, 보기 싫은 것들에 위해를 가하다보면 결국 그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신 나간 사람들의 일탈행위라 보아 넘기기엔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들이 더 치밀하고 조직적인 양상으로 빈발하고 있다.

이제 혐오도 하나의 사상이 되었다. 그 기저에는 '다름'에 대한 거부가 있고 뒤집어 얘기하면 혐오의 사상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같음'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다름을 차단하고 하나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세상을 위한 이 사상의 방식은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소거'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이성애 중심사회의 정상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벌이는 성소수자들의 흔적을 캠퍼스에서 지우려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들에게 위협을 가해 행동을 위축시키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에 폭력적 행위로 대응한 일련의 사건들은 직·간접적 방식으로 '다름'을 없애고 획일화 된 가치규범을 강요하는 동일한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광기어린 혐오의 기차가 시동을 걸고 있다

괴한에 의해 훼손 된 고려대 시간강사 텐트 농성장과 현수막
 괴한에 의해 훼손 된 고려대 시간강사 텐트 농성장과 현수막
ⓒ 김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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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들이 2014년의 한국사회에서 갑자기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흡사한 양상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들은 많다. 혐오로 사상을 무장한 대표적인 남자, 20세기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고 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우위에 선 정상국가 독일을 꿈꿨다. 그는 유대인을 학살했고, 정상 기준을 벗어난 성소수자와 집시, 장애인, 공산주의자들을 죽였다.

그가 살인마고 정신병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린치하고 끌려가던 순간에도, 쿠데타에 실패해 차디찬 감옥에 갇힌 순간에도 이 모든 것은 그에게 일생을 걸고 반드시 완수해야 할 하나의 이념이었다. 순혈의 아름다운 제국을 위해 '다름'은 제거되어야 했고, 그는 철저히 그것에 따랐을 뿐이다. 고대 교정을 난도질한 누군지 모를 괴한들의 마음의 밑바닥을 파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현수막을 찢고, 텐트를 부숴버리는데 그쳤지만 혐오의 목적이 상대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일들이 안 벌어지리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지금 벌어진 일들 역시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들이다.

사상은 확산성을 지닌다. 혐오가 사람들의 삶 속에 일상적으로 녹아드는 순간, 이 끔찍한 상상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비단 캠퍼스에서만 문제겠는가. 일간베스트에서 사람을 죽이는 새총을 만드는 법이 유포되고, 강간모의가 버젓이 이루어지는 일을 보면 사회 저변에 혐오의 사상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마주한 상황을 그저 사회 부적응자가 저지른 괴현상 정도로 치부하는 순간 사태의 주범들은 우리 안의 괴물이 된다. 분명한 목적을 지닌 사람에게 타인의 시선이 어떠한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괴물은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이다. 혐오가 하나의 사상체계로 잉태되고 있기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구조적인 대책과 대응 방식이 모색되어야 할 때다. 사건에 대한 단발적인 대응을 넘어서 계속되는 혐오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광기어린 혐오의 기차가 시동을 걸고 있다. 지금부터 막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정치 무대에 나서 자신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옮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태그:#고려대 시간강사, #고려대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 사람, #혐오범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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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시민의 힘으로 지키는 군인의 인권, 군사 독재의 잔재를 걷어 낸 시민의 군대를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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