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이 지난 23일 3차 민주당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한길 대표는 "공직 후보자는 원칙적으로 당원과 국민이 선출하는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해 혁신적인 상향식 공천제를 완성하겠다"면서 "각종 선출직 당직선거에서는 당원 직접투표제를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비리 혐의로 형사기소 중인 자는 기소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원칙적으로 공천을 배제하는 등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기초의회·단체장 모두 공천을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면서 "이번 주 중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절차만 남았다"고 밝혀 큰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당원이 주인이라면서 지난해 기초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 한국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역사적인 전당원 투표를 통해서 기초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시 투표에 참가한 당원 67.7%의 지지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을 이제 와서 슬그머니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67.7%의 정당공천폐지 찬성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결과와 거의 같은 수치로 이는 정치일선에 가깝게 있는 당원들이나 국민 모두가 하나 같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바란다는 민심을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였다.

더구나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국민 대다수의 민심일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공약이기도 하다. 그 공약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남발한 '뻥튀기 공약'이 아니라면, 또 그 사이에 정당공천제 때문에 발생했던 폐해들을 없앨 획기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면 국민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민주당이 아무리 혁신적인 상향식 공천제를 외쳐도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이 대의원과 권리당원 그리고 일반당원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당공천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는 민주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얄팍한 꼼수를 두지 말고, 차라리 '새누리당의 눈치 보느라고 이제야 정당공천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히는 게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을 하는데 민주당만이 정당공천을 하지 않을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당원이 주인임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으면서 주인들 대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한 정당공천폐지를 몇 사람이 모여서 이를 철회하려고 하는 것은 민주당의 전당원에 대한 배신행위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에 묻는다.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인가? 국회의원인가? 그것부터 답하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놓기가 그리도 어려운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타나는 현실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상의 임명권과 다를 바 없는 공천권 행사를 위해 정당공천제 폐지의 전당원투표 결과를 뒤집겠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여전히 지역주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의 눈도장 찍는데 혈안이 돼 있는 출마예정자들의 모습에서 지방자치의 실종을 그대로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민주당이 바라는 지방자치의 모습이라면 민주당은 '당원이 주인'이라는 구호부터 바꿔야 한다.

지난 20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께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만이라도 정당공천제폐지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눈치만 보다가 슬그머니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려하고 있다. 사실상 울고 싶은데 새누리당이 뺨을 때려주는 격이라고 할 것이다.

이 틈새를 엿보고 있던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운영위원장은 24일 발 빠르게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의 근본인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을 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분히 새누리당과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민주당에 대한 견제구라고 할 수 있다.

새정치는 새로운 사람이 모여서 획기적인 정책이나 경천동지할 정치가 아니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정치가 바로 새정치인 것이다.

이제 새정치연합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니 민주당의 갈 길이 혼란스럽긴 해도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또다시 정치적 지역패권주의의 위력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데는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 다만 지역주의에 갇혀 선거다운 선거를 해보지 못한 지역주민들이 불쌍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신문과 다음아고라에도 송고됐습니다.



태그:#민주당, #정당공천폐지,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국민과의 약속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