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감정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의 선물>을 덮은 뒤 나의 머리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좋든 싫든 우리에게 던져진 삶을 서서히 더 깊게 알아가게 만든다.

물론 저마다의 길은 다르다. 누군가는 레일 위에서 삶의 맨 얼굴을 향해 빠르게 질주해 나가는 반면, 어떤 이들은 천천히 둑방길을 걸어가며 삶의 참모습을 조망한다. 하지만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외는 없다. 그 누구도 '삶을 알아가는 과정'을 피할 수는 없다. 영원히 순수하고 행복하기만 한 피터팬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듯이.

<새의 노래>는 그 강요된 배움을 부모님의 부재 속 남들보다 일찍 체득하게 된 어린 소녀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녀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서정적 보고서이다.

삶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 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새의 노래'
 제 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새의 노래'
ⓒ 조우인

관련사진보기

어린 아이들은 너나 할것 없이 누구나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한한 힘과 지혜를 손에 넣는 것이며 순수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금기의 벽을 허물게 해주는 유일한 합법적 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나이먹음'에는 축복과 행복 그리고 때때로의 희열이 가득할 뿐, 입시에 대해, 미래에 대해 드문드문 겁을 주는 주변 어른들의 잔소리만 뺀다면 거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거칠 것 없음'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거칠 것 없음'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정말 야속하리 만큼 짧다. 그토록 고대하던 어른의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되어버린 이후, '아이'였던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부터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아니 '되어 버리기 위한' 긴긴 여정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뒤에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의 사사로운 시험 따위보다 훨씬 더 큰 취직에, 업무에, 일상이라는 과제에 매몰된다. 친구관계에, 풋사랑에 끙끙거리던 시기가 있었고 자신이 베르테르라도 된 양 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그 감정은 사랑의 배신과 위선을 겪으며, 인간관계의 위악성을 몸소 체험해 가며 쌓이고 쌓이는 괴로움과 슬픔에 쓸려간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냉소로 물들어간다.

삶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그렇게 우리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힘들게 한다. 벗어나고 싶게끔 하지만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서서히 사람들은 지쳐가며 어린 시절의 막연한 환상은 자연히 사라지지만, 대신 삶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침착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삶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간다 

'우리는 지나치게 행복주의에 경도돼 있어요. 사회가 좋아지든 나빠지든간에 인간은 고통스러운 거예요. 오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 빼고 다 행복한 줄 알아요. 다 힘든데도 버티면서 사는 건데.'
-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중

삶은 그렇다. 삶을 안다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한가, 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새의 선물>이 내게 던진 또 다른 메시지였다. 삶을 알아가며 인간은 아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행복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울림의 감성이 깊게 고여있다.

외로운 삶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고 때때로 웃음지으며 때때로 삶에 행복을 느끼는 것은 '성숙'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동시에 나만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배우기 때문일까. 그것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의식함에 따라 사람들은 타인과 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충실해질 이유를 찾고, 다시금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웃음짓는 일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의 선물> 속 '나' 는 어린 시절부터 삶을 알았다고 자부한다. 그러한 자신에 걸맞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삶을 냉소하며 주체가 아닌 제 3자로서 조망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삶을 무가치 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듯, 삶의 덧없음을 일찍 깨달은 이일수록 - 삶에 냉소하게 되는 이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순간순간에 열중하게 된다. 반면 삶에 집착하는 이일수록 삶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고 만다.

삶의 근원적인 아픔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삶을 알게 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삶은 아프지만, 그것을 제대로 극복해 낼 때 어린 시절 꿈꿔왔던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을, 그 때 가서야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마음으로 삶에 충실해질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그럴 때 아름다운 선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 짧은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새의 선물>은 이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읽는 내내 편하면서도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10년, 20년 삶을 서서히 알아갈 때마다 다시금 꺼내 읽어보기에, 내 인생 '성숙'의 과정을 함께 하기에 의미있는 도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은희경'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혹자의 서평은 과연 거짓이 아닌 것인가, 한다.


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2010)


태그:#서평, #은희경, #문학동네, #새의선물, #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