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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정치개혁의 만병통치약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는 새누리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수십 년간 지역주의에 기대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해왔는데 그들 스스로가 이를 쉽사리 포기할 리 만무하다.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문제만 하더라도 결국 실리 앞에서 국민과의 약속마저 팽개쳐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정치혁신은 요원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이대로 마냥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최근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가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전도사가 되어 공론을 모으기 시작했다. 안철수 신당의 윤여준 전 장관도 다원화된 한국사회를 다양하게 대변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로써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익히 알려진대로 정당명부제는 독일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으로,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방식이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 등 1인 2표를 행사하며, 정당별 총의석은 정당 득표율로 배분하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정당지지율이 의석수로 나타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주의에 기반 하지 않은 소수정당이 원내로 진입하기도 쉽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높은 비율의 사표'라는 부작용을 거의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기본적으로 '전원 비례대표제'에 상당히 근접한다는 점이다. 정당투표 방식이 처음 도입된 2004년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 중 8석이 비례대표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전원 비례대표제'는 우리나라처럼 정당제도가 일천한 환경에서 앞으로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후보의 경선부정 사태와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셀프제명'과 같은 부작용이 계속 양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당이 스스로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지역구에서 국민이 직접 손으로 심판해야 한다.  

자, 그래서 이 글에서는 당장 새누리당의 반대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위에서 언급한 제도적인 단점들을 모두 감안하여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바로 들고 나가지 않고, 우선 되는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는 바이다. 이 제도는 검토해보면 새누리당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안이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역주의를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는 제도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제안

ⓒ 최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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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치러진 총선에서 각 정당은 표1과 같은 의석을 획득하였다.

이를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시뮬레이션 해서 다시 배분하면 표2와 같다. 이 경우 가장 혜택을 보는 정당은 통합진보당이 되고,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정당은 새누리당이 된다. 따라서 진보정당 계열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고, 민주당도 이를 정치개혁 공약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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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대 정당투표 결과를 놓고 권역별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다시 배분하면 표3과 같다. 단, 생활권이 같은 지역은 하나의 권역으로  합치고, 인구수가 100만 명 미만인 제주와 인천강원은 합쳐서 적용하였으며, 권역별로 5% 이상 득표한 정당에 1석을 우선 배분하고 특정 정당이 3분의 2를 초과할 수 없도록 배분하였다.

표3에서 보듯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전체 의석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으나, 새누리당은 호남 의원을 배출하고 민주당은 TK 의원을 배출하며 양당 모두 전국정당이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전국적으로 10%대의 고른 득표를 하였기 때문에 권역별로 최소 1석씩은 확보가 가능하였다. 따라서 어쨌든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역구 제도는 손질하지 않고,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현재의 전국단위에서 권역별 배분으로 바꾸어서 '지역주의' 완화와 특정지역에서도 상대정당의 국회의원 배출이 용이하도록 손질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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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행 비례대표 54석만을 가지고 권역별 비례대표를 배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향후 선거구획정 시, 인구하한선을 높여서 지역구를 약간 줄이고, 대신 권역별로 인구 500만 명을 기준으로 비례대표의원 1석씩을 추가하여 서울과 경기는 3석, 인천강원제주는 1석, 나머지는 2석을 추가하여 19대 총선 결과를 대입하면 표4와 같다.

그러면 현재 비례대표의석이 54석에서 69석으로 15석이 늘게 된다. 새누리당은 우세지역인 TK, PK에서 지역구가 4석이 줄었으나 비례대표에서 2석을 만회하는 등 총 7석의 비례대표가 증가하였다. 민주당은 우세지역인 호남에서 2석이 줄었으나 비례대표에서 1석을 만회하는 등 총 6석의 비례대표가 증가하였다. 통합진보당은 호남과 경기에서 각각 1석씩을 늘렸다.

참고로 지난 2010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비례대표 배분결과를 권역별로 합산하면, 총 81석의 의석 중 새누리당 36석, 민주당 32석, 민주노동당 6석 등이 배분되었고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13석 중 2석을 민주당은 TK에서 6석 중 1석을 배분받는 등 양당 모두 전국정당이 되었다. 

그래서이다. 위에서 실증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지금 당장은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지역주의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제도로써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다시 한 번 제안하는 바이다.


태그:#최광웅, #독일식 정당명부제, #지역주의, #민주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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