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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 김영덕 씨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마련된 용산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하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 김영덕 씨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마련된 용산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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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남일당 건물터에 선 김성환씨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5년 전 용산참사 때 망루에 올랐던 김씨는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부상당한 채 구속됐다. 지난해 1월 말 풀려났으니, 목숨 잃은 동지들의 기일에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이다. 지금은 공터가 된 이곳의 철제 울타리에 '5년이 지나도 나대지인데, 무엇이 급해서'라고 쓴 팻말을 붙였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기자에게 짧은 편지를 건네며 소회를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편지에 "뜨겁고 매캐했던 그날 학살의 진실을 외면당한 채 오직 정권 유지에 급급한 자들의 손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이 잊혀져가는 것을 세상을 등진 먼저 가신 동지들은 뭐라고 할까요"라며 적었다.

그는 또한 "저는 그들에게 여전히 고개조차 들 수가 없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사는 한낱 방관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치욕스럽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그날의 올바른 진상규명을 통해 전 정권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그날의 잘못된 판단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파멸을 가져왔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유가족·생존자와 시민·철거민·대학생·노조원 등 500여 명은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터에서 용산참사 5주기 추모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이곳에 국화꽃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유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참석자들은 울타리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자보와 팻말을 붙였다. 이들은 이후 용산역에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한강대로 3.4km 구간을 1시간 동안 행진했다.

용산참사 책임자들의 영전...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고인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고인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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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집회'를 마친 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서울역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집회'를 마친 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서울역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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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서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를 위로하고 있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서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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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때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씨도 행진에 참여했다. 그 역시 김성환씨처럼 지난해 1월말 출소했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남일당 건물터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이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용산참사에 대한 사과·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두고 "유가족들은 아직도 불타는 망루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5년이 지났지만 이 현장은 허허벌판이고 당시 진압을 지시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공기업이 사장이 됐고, 짜맞추기 수사를 한 정병두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면서 "권력에 기승하는 이들이 영전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억울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씨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억압받는 사람을 진정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우리는 추모에 머무르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만행과 독재에 싸울 것"이라며 "강제 퇴거와 국가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진에는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들은 힘껏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대학생 정우(21)씨는 "중학생이던 5년 전에는 용산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만 알았고, 지난해 대학생이 된 후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을 봤다, 용산참사와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이후 민영화 문제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대학생이 늘었지만, 용산참사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은 많지 않다"면서 "많은 학생들이 부당한 일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경희(47)씨는 중학생인 두 조카와 함께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사람들로 하여금 용산참사를 잊도록 한다, 나부터 용산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나왔다"면서 "젊은 세대가 용산참사를 기억한다면, 김석기 전 청장 등 당시 용산참사 책임자들이 역사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진을 마친 이들은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5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 합류했다.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없이 서럽게 5주기를 맞이했다"면서 "용산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인사는 국민대통합을 약속했던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국가폭력과 민중학살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용산참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용산 때 처벌하지 못한 국가폭력과 자본의 폭력의 학살이, 철거현장과 노동현장, 강정과 밀양 등 마을 공동체들을 제2, 제3의 용산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더 이상 학살을 막기 위해 반드시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한 "용산학살 계승한 박근혜 정권은 퇴진하라"고 외쳤다.



태그:#용산참사 5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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