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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해협 유람선에서 본 돌마바흐체 궁전 모습
 보스포로스 해협 유람선에서 본 돌마바흐체 궁전 모습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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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 큰 상들리에가 걸려 있는 궁전. 이 궁전을 만드는 데 들어간 금만 14톤이란다. 터키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화려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끈 공간은 초대 대통령이 사용했던 작은 침대와 서재다. 황제가 살던 돌마바흐체 궁전에 대통령이 지냈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초대 대통령의 위상이 황제에 버금갔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궁전의 모든 시계는 초대 대통령이 죽었던 9시 5분에 맞춰져 있다. 그가 죽은 뒤, 궁전은 박물관이 됐다.

아무리 초대 대통령이라지만 터키인들이 그를 기리고 기념하는 방식에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터키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는 누구일까? 터키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존재일까? 터키 어디를 가나 그의 사진이나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터키의 모든 지폐에는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스탄불 공항의 정식 이름도 '아타튀르크' 공항이다.

과거 영광 재현 위한 궁전, 제국의 명 앞당겼네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입장객 수를 시간대 별로 제한한다.
▲ 돌마바흐체 궁전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입장객 수를 시간대 별로 제한한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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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 여섯 번째 날, 무스타파 케말이 살았던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봤다. 보스포루스 해협 유람선에서 본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 해협이고 이스탄불은 이 해협으로 유럽지역과 아시아지역으로 나뉜다. 배가 지나는 물가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했다. 주변 경관에 환호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면 영락없이 큰 유조선들이 지나가면서 유람선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곳에 유조선이 지나가는 게 낯설다.

유람선에서 내린 우린 아름다운 궁전 돌마바흐체로 향했다.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에는 주의사항이 많았다. 주의사항이 많을수록 궁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주의할 점은 궁전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신발에 비닐을 씌우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카펫이 깔린 곳으로만 다녀야 했고 손으로 실내를 만지는 것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궁전 안을 사진 찍어서도 안 된다. 궁전의 기둥은 꼭 대리석처럼 보이는데, 나무라고 했다. 대리석처럼 색을 칠해놓은 것일 뿐이란다. 정교한 색감이 놀랍다. 커튼이며 의자며 침대 벽지까지 조화로웠지만, 어느 방 어느 거실도 똑같은 색상이나 디자인은 없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은 압둘 메지드 황제는 1843년 건축을 시작해 1856년에 완공했다. 이 궁전은 압둘 메지드 황제가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세워졌다. 내부 장식에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 재정은 이런 큰 공사를 감당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결국, 궁전의 화려함은 제국의 명을 앞당기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제국이 망한 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이곳에서 지내게 된다.

터키 초대 대통령, 박정희가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라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붕괴하자 케말은 터키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해 공화제를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말 탄 케말 파샤의 초상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붕괴하자 케말은 터키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해 공화제를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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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사람인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궁금했다. 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무스타파 케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라고 했다.

무스타파 케말은 오스만 제국 말기에 군인이 됐다. 터키는 1차 세계대전에 독일 편으로 참전한다. 결국, 패전국이 됐고 불평등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의 국토는 앙카라 정도만 남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19년 5월, 그리스가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자 무스타파 케말이 이를 막아낸다. 당시 그리스는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반면 터키의 무기는 보잘것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말은 터키의 개혁을 이끌고 외세와 싸워서 독립과 자유를 얻는다.

그가 단행한 개혁은 놀라운 것들이었다. 이슬람 국교를 폐지했고, 아랍어를 대신해 알파벳을 사용하는 문자개혁을 전격적으로 실시한다. 여성에 대한 참정권, 앙카라로 수도이전 등등을 추진했다. 그는 개혁에 대한 반발로 종교계의 암살 위험을 받기도 했다. 케말은 자식을 낳지 않았다. 자식이 자신의 명예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단다. 그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에게 나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블루 모스크와 성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의 이슬람 사원
▲ 블루 모스크 이스탄불의 이슬람 사원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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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우리 일행은 블루모스크에 방문했다. 줄을 서서 들어가려니 여성들에게 하늘색 히잡을 나눠준다. 히잡을 머리에 쓰니 기분이 색다르다. 신발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사원에 들어가면 절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됐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절을 하는 사람들은 사원 앞쪽에만 있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느라 시장통과 다르지 않다.

천장의 색상이나 창문의 모습 그리고 천장에 달린 노란 불빛들이 하늘색이 천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진정 이슬람 세계에 와 있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동로마 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성당,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
▲ 성소피아 성당 동로마 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성당,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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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의 모습과 성당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 성소피아 성당 내부 이슬람 사원의 모습과 성당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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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린 바로 옆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동로마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성당이다. 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성당은 얼마나 화려할지 궁금했다. 성소피아 성당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537년에 완공했다. 성소피아 성당이 만들어지는 데는 수십 톤의 금과 은이 사용됐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성당 안에 들어가 처음 본 광경은 어수선하고 촌스러웠다. 천장에 붙은 동그란 방패 같은 것 두 개가 너무 크고 주변과 조화롭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메메드 2세가 1453년 성당을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쓰게 됐고, 화려한 성화에 회칠을 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가린 것이라 했다. 회칠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화려한 금색 모자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 있는 우리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중이라 공사판과 같았다.

갈라진 성당 바닥, 이런 건 신경 써주세요

회질한 부분이 떨어지면서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의 모습이 보인다.
▲ 성소피아 성당 천장 회질한 부분이 떨어지면서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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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대리석들이 다 깨져있다.
▲ 성소피아 성당 2층 바닥의 대리석들이 다 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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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2층 바닥의 대리석들이 깨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발을 내딛기가 무서울 정도로.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입장하면서 2층 바닥이 금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1500년 된 건물의 보존을 위해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200년도 안 된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을 애지중지 관리하는 모습과 비교됐다. 아름다운 성당이 잘 보존해 후손들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톱카프 궁전의 입구
 톱카프 궁전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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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최대 영토를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 톱카프 궁전 앞 지도 오스만 제국 최대 영토를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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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은 톱카프 궁전. 궁전 입구엔 오스만 제국 전성기의 영토가 지도에 표시돼 있다. 소아시아에서 그리스 그리고 북아프리카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넓었다. 보석관으로 갔다. 건물에 들어서니 휘황찬란하다. 궁전 앞에 총 든 사람들이 여럿 서있었는데 비싼 보석이 많아서 무장한 경호원이 필요했나 보다.

보석이 쫙 달린 의자, 필통, 그릇, 총 그리고 황제가 타던 말의 마구까지 금칠이 돼 있다. 진짜로 황제가 금장 갑옷에 금장 투구를 쓰고 금장 마구를 쓴 말을 탄 황제를 감히 쳐다 보기도 힘들었겠다 싶었다. 오스만제국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화려한 보석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게 남편이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화려한 궁전과 수많은 보석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쉽게 무너진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화려한 궁전 뒤엔 백성들의 눈물이 있었을 테니….

"다음번엔 엄마가 배낭여행으로 와야겠다"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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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곳 네 곳을 다 돌았다. 가이드를 쫓아서 정신없이 돌다 보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지도 들고 위치 찾아가며 돌아다녔어야 하는데, 자유여행이 아니라 그럴 수가 없었다. 또다시 터키에 온다면 이스탄불만이라도 지도 들고 여유롭게 돌아다녀 보고 싶다. 함께 여행 온 고등학생 첫째에게 말을 건넸다.

"아들, 나중에 졸업하면 이스탄불로 배낭여행 와라. 그리고 여기서 열차를 타고 유럽 일주를 하는 거야. 어때?"

아이가 표정으로 왜? 하고 묻는다.

"아니다. 아니야. 다음번엔 엄마가 배낭여행으로 그렇게 와야겠다."
"왜 이스탄불로 와야 해?"
"이스탄불 구경 다 못 했잖아.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오리엔탈 특급열차>도 이스탄불에서 쓴 거야. 이스탄불 기차역도 가 봐야지."

터키 여행에서 로마문명, 비잔틴문명, 오스만투르크문명까지 동서양의 여러 문명을 느낄 수 있었다. 터키 가족여행의 기회를 준 <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터키를 안내해 준 김종선 가이드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터키여행기를 마친다.


태그:#터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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