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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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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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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2~35퍼센트입니다.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위로, 회원국 평균의 거의 2배에 이릅니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년에 불과합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프랑스는 12년, 독일은 11.5년, 네덜란드는 10.4년입니다. 단기간 근로나 임시직 일자리 등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분야라고 예외 지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학교 현장은 '전통적인'(?) 기간제교사를 비롯해 시간제·영어회화전문·스포츠·원어민 강사, 학습보조·과학실험 인턴교사 등 다종다양한 비정규교원들로 넘쳐납니다. 2013년 4월 기준으로 전국 중학교의 비정규교원 비율은 17.8퍼센트였습니다. 2010년에 9.1퍼센트였으니 3년여 만에 2배가량 증가한 셈입니다. 같은 기간 고등학교의 비정규교원 비율도 10.2퍼센트에서 15.7퍼센트로 늘어났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졸속적으로 추진된 교육정책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들입니다.

이런 와중에 대구시교육청에서 전국 최초로 '신규임용 전 인턴교사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재 인턴교사제가 적용된 신규교사 채용 전형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미 발표된 시간제 정규직교원 제도(관련기사 :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데... '정규직'이라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말 그대로 '정식'으로 신규교사를 채용하되 임용 대기 기간 중 인턴십(기간제 교사 및 강사) 제도를 적용해 계약제 교사로 근무하게 한 뒤 최종 임용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구교육청 누리집에 들어가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 시행계획 공고'라는 긴 이름이 붙은 채용공고문을 살펴봤습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용 공고문 어디에서도 '인턴교사제'라는 이름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각각 '16. 기타사항', '15. 기타사항'에 문제의 제도가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고용 방식(형태)와 같은 중대 사항을 공고문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기타사항'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름은 정확히 '신규임용 전 인턴교사제(인턴과정 및 교육기부제)'입니다. 초등학교는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중등학교는 국·영·수 교과 교사를 대상으로 소요 정원의 2배 정도를 선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운영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임용 대기 기간 중 관내 학교에서 계약제 교사(기간제 교사 및 강사)로 근무하는 인턴 과정, 임용 대기 기간 중 교육기부제를 운영하는 관내 학교에 교육을 기부하는 교육기부제 등이 그것입니다. 교육 기부는 수업, 자료 제작,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교육활동 보조 등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식 임용은 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교원인사위)에서 심의합니다. 1단계에서는 교육청이 임용시험 합격자 성적순으로 임용후보자 명부를 작성합니다. 다음으로 임용 예정 인원의 3배수를 교원인사위에 심의 의뢰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원인사위에서 임용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이때 교원인사위 심의과정에서는 교사로서 부적합한 자는 임용에서 배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턴교사제 참여 실적을 우대한다고도 합니다.

"실적을 따져서 임용 결정... 아이들에게 전념할 수 있을까"

자,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요. 저는 현직 비정규 교사 한 분과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예비 교사, 교사를 희망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 세 명과 얘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비정규 교사 : "인턴과정을 거친 후 심의 결과 최종 임용이 안 되면 임용 대기를 몇 년까지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대기 기간이 무한정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정식 채용 과정을 거쳤는데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야 한다니, 선생님들 마음이 불안해서 제대로 근무하기가 매우 힘들 것 같아요.

교육기부제를 보니까 수업이나 자료 제작, 교육활동 보조 등을 하게 되는데, 그것들이 최종 임용에 평가 근거로 쓰이게 되면 형식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수업이나 자료 제작을 점수 따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수업도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고, 겉포장만 화려한 교육 자료들이 양산되겠지요. 교육적인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지요.

교원인사위에서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임용 대기해야 한다면 계속 기간제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면 다른 일반 경로로 기간제나 강사 선생님이 된 분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임용시험을 정식으로 통과했는데도 경우에 따라서는 기간제로 임용 대기하는 것은 공정성, 형평성의 문제도 있는 것 아닌가요? 또 인턴교사들 사이에 불필요한 과열 점수 따기 경쟁이 벌어질 게 뻔합니다."

예비 교사 : "임용시험 합격 후에 기간제로 근무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인턴 기간 중의 실적을 따져서 최종 임용을 결정한다면 그 사이에 아이들에게 전념할 수 있을까 싶어요. 기간제로 있게 되면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근무하기가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교육은 연속성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저도 몇 년 경험해봤지만,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런 마음을 갖기가 정말 어려워요.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학교에서 내가 근무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줄지, 교육기부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들이 과연 교육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또 그런 의의를 따져가면서 진정성 있게 교육기부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저는 차라리 기존처럼 처음부터 정규직 임용 대상자를 뽑아 현장에 보내야 한다고 봐요. 이번 인턴교사제든 시간제 정규직교원 제도든 제 주변에서 좋게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 예비 교사들이 바라는 최종 지점은 예외 없이 정규 교원 자리니까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제도를 만들어내는 건지…. 우리 같은 예비 교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연 제대로 깊은 고민을 하고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학부모 : "수업은 당연히 하는 것이고, 자료 제작도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인데, 그것들을 가지고 최종 임용 대상자를 결정한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존 선생님들과의 위화감 문제도 클 것 같아요. 교육기부를 한다고 수업을 화려하게 하고, 자료 제작에 몰두하는 모습을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자료 제작이든 뭐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임용 대상자를 심의한다고 하면 그 일에 경쟁적으로 몰두할 수밖에 없겠지요.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룬 채 말이에요. 저는 그런 식으로 임용시험 합격자를 기간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앞으로 정규 교사 채용 시스템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지 않은가 싶어요. 합법적인 방식으로 기간제 교사를 맘껏 활용할 수 있으니 교육청에서는 아쉬울 게 없겠지요."

'교직 부적합자' 걸러낸다는데, 근거도 기준도 없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인턴교사는 기간제 교사와 역할이 비슷하지만 인턴 과정을 마친 뒤 자격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임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특별한 문제'는 '교직 부적합자'와 관련해서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채용 공고문 어디에도 '교직 부적합자'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나 기준은 없습니다.

<에듀뉴스> 1월 13일 자 기사에 실린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 신광호 장학사의 말을 빌리면, 인턴교사제의 도입은 현장 경험 부여를 통한 현장적응력 강화에 그 취지가 있습니다. 교육기부제 평가 방식에 대해서는 '과정'보다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활동을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평가는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신 장학사는 인턴교사들이 "임용 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얼마나 교육기부나 기간제교사로 활동했느냐 하는 그 시간을 보고 인성 과정을 포함해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간제로 근무한 '시간'(기간)을 중심으로 평정한 '점수'가 최종 임용에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인턴교사제로 채용되는 교사들은 형식적으로는 '정식' 교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기존 시스템에 따르면 이들은 곧장 학교 현장의 '정규'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턴교사제 아래에서는 최종 임용 전까지 비정규 교사로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용 대기 한계 시한(연수)이 정해져 있지 않고, 부적합자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근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교사를 인턴교사, 곧 비정규교원으로 뽑은 뒤 교육청 입맛에 맞는 고분고분한 교사들만을 최종 임용하는 상황까지도 예상됩니다.

정책이나 제도는 도입 취지나 목적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취지나 목적을 현장에서 얼마나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현장 적응력 강화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교육 활동 등으로 무의미한 점수 따기 경쟁만 심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임용시험을 정식으로 통과한 교사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규직 교사입니다. 저는 그럴 때라야 그들이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영혼'와 '열정'을 학교 현장에 제대로 투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대구시교육청은 신규임용 전 인턴교사제 '실험'을 중단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신규교사 인턴교사제, #대구시교육청, #우동기 교육감, #교육기부제, #비정규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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