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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가 울린다. 나와 아내의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두 개의 소리가 요란한 불협화음을 만든다. 나는 알람 소리를 끄고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어김 없이 일어난다. 우유를 데우고 사과를 깎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들 도시락 가방과, 아이들이 입을 옷가지들을 챙긴다.

6시 40분. 내가 일어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은 채 2, 3분을 멍하니 앉아 있다. 통학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던 중학교 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다디단 아침잠의 유혹은 그토록 강렬하고 질기다. 결혼 초 아내는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몇 번이나 기겁했다. 깬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니어서 무서웠다며.

6시 45분에서 6시 50분 사이. 세 아이들이 일어난다. 큰딸이 맨 먼저 이부자리를 턴다. 둘째와 막내가 뒤를 잇는다. 세 살짜리 막내는 가끔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투정의 메시지는 딱 한 가지다.

'대체 지금이 몇 신데 어린 나를 깨우고 난리여?'

6시 50분부터 7시 10분까지. 가장 바쁜 시간이다. 아이들은 세수하고 간단한 식사를 한다. 이 시간은 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애착물인 이불을 끌고 방안과 거실을 다니면서 한사코 세수를 마다하는 막내 때문이다. 이런 날은 녀석에게 옷을 입히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한쪽 팔을 집어넣으면 다른 쪽 팔을 빼내는 식이다. 양말을 벗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실랑이도 7시 30분을 넘어서면 안 된다. 출근과 등교 시각의 마지노선이 바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똥개' 세 마리를 건사하는 일, 너무나 힘들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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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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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중의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아직 어린 애들이 있어 양말을 손에 신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고 보낸다. 나는 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풍경도 언젠가는 소꿉장난 같은 한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을 잘 안다. 되도록 애틋해하며 기껍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힘들고 짜증날 때가 전혀 없지는 않다. 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기에 말이다. 워킹맘이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아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아내가 고맙기만 한 까닭이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에 그 감당하기 힘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아이들 셋을 온전히 나 혼자서 챙겨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하지 않게 되어서 만들어진 '사태'였다. 학기중과 비교하면 시간 여유는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아내 없이 혼자서 '똥개' 세 마리를 건사하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8시 10분. 어제 아침 기상시간이었다. 아내는 이미 훨씬 전에 출근한 뒤였다. 제 이모네에서 1주일을 잘 놀고 온 큰딸은 전날부터 학교 방과후 수업을 9시 10분까지 가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그런 녀석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다리가 아프다느니, 속이 안 좋다느니 하면서 살살 엄살을 부렸다. 많이 아프면 가지 말라고 하려다 너무나도 뻔히 속이 보이는 '꾀병'이서 모른 체했다. 녀석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차려 준 밥을 먹었다.

8시 30분. 둘째와 셋째가 일어났다. 여섯 살, 네 살인 녀석들은 일어나자마자 서로 이불을 끄집어 당기며 요란을 떨었다. 서로 뒤엉켜 장난질을 하는 모습이 영락 없는 새끼곰 두 마리였다. '저 녀석들을 데리고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히 먼저 식사를 마친 첫째가 동생들 세수를 도와 준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평소 아이들은 제 엄마가 미리 챙겨 놓는 옷을 입는다. 그런데 요며칠 몸살 감기를 앓은 뒤끝이어서였을까. 아내는 깜박 잊었는지 아이들 옷을 챙겨 두지 않았다. 부랴부랴 옷장과 서랍장을 뒤져 둘째와 셋째 옷을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입을 만한 옷가지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걸려 있을 만한 곳을 이리저리 다 뒤졌다. 철 지난 옷들뿐이었다. 나는 안방 쪽마루에 서 있는 빨래 건조대로 갔다. 간밤에 널어 놓은 옷들은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아이들 옷장으로 갔다. 급한 대로 이 옷 저 옷 멋대로 챙겼다.

8시 50분. 큰딸 방과후 수업에 맞추려면 늦어도 9시 정각에는 출발해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순둥이' 둘째는 아무 말 없이 내가 챙겨 온 옷을 입었다. '복이 있을진저'. 출복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제 막내 차례. 내가 막내에게 챙겨 간 건 작년에 제 오빠가 입던 옷이다. 옷도 크고, 무엇보다 막내에게는 낯설었다. 막내는 귀신 같이 알아챘다. '안 입어'라며 마구 뻗댔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제 언니가 꼬드겼다. '똥글이(막내 별명) 이따가 까까 안 줄 거야' 하며 '무서운' 말도 했다. 용케 막내가 제 언니에게 몸을 맡겼다. 낯선 옷을 챙겨 온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큰딸이 서툰 동작으로 막내 옷을 입혔다. 큰 옷을 헐렁하게 입어 놓으니 정말 동그란 아기곰 같았다. '똥글이 곰곰이다' 한 마디 하자 모두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했다. 둘째와 막내에게 서둘러 우유 한 잔에 사과 몇 쪽씩을 먹이고 집을 나섰다. 9시 3분. 급하게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큰딸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는 9시 10분. 시간 관념이 투철한(?) 큰딸은 내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교실을 향해 튀듯이 달렸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취학 전 아이들은 탄성 좋은 용수철 같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깔깔거리며 서로 사이 좋게 지내다가도 금방 울음 바다가 된다. 기를 쓰며 투정을 부릴 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잘못 건드리면 톡 터져버리는 봉숭아 씨가 따로 없다.

직장에 다니는 아빠들은 대개 일찍 집을 나선다. 그런 아빠들이 용수철이나 봉숭아 씨 같은 아이들을 알까.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 보내지 못해 본 아빠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으레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면 세수하고 밥 먹는다고 여긴다. '전쟁' 같은 중간 과정은 상상도 못한다.

'세수할 때는 깨끗이 이쪽 저쪽 목 닦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봅니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가방 메고 인사하고 씩씩하게 갑니다'로 마무리되는 노래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불러봤을 동요 <둥근 해가 떴습니다>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챙겨보지 못한 아빠들이 이 노랫말 속에 담겨 있을 엄마들의 절절함을 과연 얼마나 이해할까. 그저 뻔한 동요쯤으로 이해하는 아빠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공동 가사론'... 과장이 아니구나

1994년, 중국 베이징으로 연수를 간 적이 있다. 중국 이공계통의 명문대학인 칭화(靑華) 대학 기숙사에서 기거했다. 그곳에 단골로 자주 들르던 빵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 시간까지 아주머니 직원들이 보았다.

어느 날, 평소 알은 체하며 지내던 직원에게 물었다.

"늦게까지 이곳에 있으면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해요?"

40대 중반쯤의 아주머니였다. 가게 왕고참쯤으로 보이는 그녀는 거의 하루종일 가게를 지켰다. 나는 내심 그녀가 집안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나 궁금했다.

"남편이 해요."

그때 그녀로부터 중국 도시 가정의 '공동 가사론'(?) 강의를 들었다. 식사 준비는, 남편이든 아내든 집에 일찍 들어오는 사람이 한다, 설거지나 집안 청소도 누구랄 것 없이 먼저 하거나 함께 한다, 남자라고 시키고 여자라고 순종만 하는 건 어지간한 촌에서도 보기 힘들다, 사회주의 혁명이 가져다준 좋은 문화다 등등의 말이 나왔다. '사회주의 혁명'을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언뜻 자부심이 묻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훗날 이런저런 중국 영화 속 장면을 통해 그녀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무슨 영화인지 정확히 기억이 없으나, 시골 동네에 사는 부부가 함께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는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 있었다. 참 아름답다 여겼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중에 결혼하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청소나 설거지 정도는 꼭 내가 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던 기억도 새롭다.

결혼 후, 그때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설거지는 확실히 내 전담이다. 청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내 차지다. 하지만 알아서 식사를 준비하고, 밥상을 차려 내놓는 일은 여전히 꺼려진다. 그것은 주로 아내 몫이다. 우리 부부가 함께 집에 있을 때면 '당연히' 아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나는 내 할 일만 한다. 솔직히 가슴 한켠에 '설거지에 청소까지 하는데 밥상까지 차리면 안 되지' 하는 삿된 마음도 있다.

예의 '공동 가사론'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가사 분담은 당연하다 여겨야 하지 않을까. 외벌이를 하더라도 상대가 하는 일을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 옳다.

회사 가서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윽박지르는 남편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시달리는 아내를 정말 절망하게 한다. 남펴도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챙기는 일을 해봐야 한다며 토라지는 아내는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 진저리를 치는 평범한 남편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게 화목한 가정 생활의 가장 큰 원칙이 아닐까. 어제와 오늘, '똥개' 세 마리를 정신 없이 챙겨 보내며 문득 되새겨본 평범한 '진리'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가사 분담, #'공동 가사론', #아내, #남편, #가정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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