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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일회용으로 사용하다 수틀리면 자르는게 대한민국 교육자의 <청렴교육>입니까?
▲ 학비노조의 교육청 앞 집회 사람을 일회용으로 사용하다 수틀리면 자르는게 대한민국 교육자의 <청렴교육>입니까?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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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공공기관이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울산 동구 모 초등학교에서 햇수로 3년 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비정규직도 아닐지 모릅니다. 근로계약서상 제 고용형태는 일용직이니까요. 근무유형은 대체인력이고요.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가 제가 그동안 학교 쪽에 일하면서 맺어온 고용계약서 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 황당한 고용계약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문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노비문서를 보는 듯합니다. 학교를 책임진 교장이나 행정실장이 '갑'이니 저는 당연히 '을'로 취급 되겠지요. 지난 연말에 작성된 근로계약서엔 저의 계약기간이 2개월로 되어 있었고, 3년 전부터 6개월 마다 한 차례씩 의례적으로 다시 작성해온 계약서였는데 작년 말엔 무슨 의도가 깔렸는지 2개월로 시한부 근로계약서인 동시에 '정규직이 되든 안 되는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근로계약은 자동 해지 된다'고 보완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문서 하나로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고, 밝은 날도 어둠 속처럼 보이고 평지를 걷는데도 벼랑끝으로 내몰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참에 학교서 마주 앉아 있긴 했으나 일방적으로 작성하여 저에게 준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를 촘촘히 한번 살펴보려 합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1조(계약당사자) 00초등학교장 "갑"을 사용자로 하고 "을"을 근로자로 하여 다음과 같이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근로계약서 1조에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갑'과 '을'로 표현하는 것이 못마땅 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계약체결에 의해 서로 연결지어진 상태입니다. 노비문서가 아닌이상 노동자와 사용자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갑과 을이라는 수직관계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해서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계약관계의 정확한 표현인 '노동자'와 '사용자'라고 표시하여 계약서 문구를 작성하는 게 타당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2조(성실의무) "을"은 근로계약에 따라 "갑"의 지시에 응하여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

근로계약 2조도 보면 사용자가 마치 노동자의 윗사람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시에 응하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시에 응하여'를 빼고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 되는데 말입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3조(근무내용) "을"은 다음과 같이 "갑"이 정하는 내용으로 근로를 제공한다.
1.직      무: 지방공무원 대체인력
2.근무장소: 발간실
3.담당업무" 학교시설관련업무, 인쇄업무, 기타 학교장이 정하는 업무

본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의 의무'만 강조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사용자의 편의시설 제공 의무에 대해선 고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계약서라면 적어도 근로의 의무만 강조해 놓을 게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자를 위해 어떤 편의 시설을 제공한다는 것 쯤 기본으로 같이 설정해 두어야 계약의 취지에 맞지 않을까요?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4조(계약기간) ① "을"의 계약기간은 2014.01.01.부터 2014.02.28.까지로 한다. (단, 근로기간 중이라도 정규직원 인사발령이 있을시는 발령일 전날까지를 계약기간으로 본다.
② 본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근로계약은 자동 해지 된다.

위 조항은 변칙된 조항입니다. 본래는 6개월 단위로 끊어 의례적으로 계약서를 체결해 왔었습니다. 지난해 말, 12월 30일 마지막날 오전 11시경 일하고 있는 저를 갑자기 불러 앉혀 놓고 체결한 근로계약서에 저렇게 시한부 2개월로 근무기간을 설정해 놓았으며, 거기다 더 해 ②항을 첨가시켜 놓았습니다. 1항만 가지고도 조마조마하게 출퇴근을 해왔었습니다. 1항만 가지고도 충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해왔었습니다.

무슨 의도로 저렇게 개악된 문구를 첨가하여 연말에 갑자기 불러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러나 학교 쪽은 상세한 설명이나 협의 대신에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2014년도 3월초에 교육청에서 정규직 발령 낼 확률이 높아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7조(보수) "갑"은 "을"의 근로제공에 대하여 다음의 금액을 교육청에 지급 신청하고 교육청에서 보수를 일괄 지급한다.
①임금은 일당 53,160원으로 하며, 임금 지급기준은 교육청 배부기준을 우선으로 한다.
②보수지급시기: 임금은 매월 근무일수에 따라 익월 10일 이내에 지급한다.
④임금지급액은 근무일수,유급휴가수당(주휴일,월차유급)을 합한 임금 지급일수에 일일당 금액을 곱하여 지급하며,이때 법적인 공제액(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등)을 공제하고 지급한다.

위 내용만 보더라도 학교장은 지불능력이 없습니다. 저에게 임금을 주는 곳은 교육청이고 교육청의 대표는 교육감 입니다. 따라서 학교장은 실제 사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 사용자는 교육감입니다. 학교장은 단지 실제 사용자의 대리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서울행정법원이 2012년 12월 20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 사용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 임을 판결한 바 있었습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8조(복무) ①"을"은 본 계약에 의한 학교명령을 성실히 준수할 의무를 진다.
②"을"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결근을 해야 할 경우 사전에 학교장에게 결재를 득하여야 한다. 단 사전결재를 할수 없을 경우에는 근무시간 전에 전화로 통보하고 사 후 결재를 득한다.
③질병 등으로 7일 이상 결근할 경우에는 의사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④지참,조퇴 또는 외출은 누계 8시간을 결근 1일로 계산하며, 결근의 경우 근로일수에서 제외한다.
⑤질병이나 기타 부득이한 이유로 조퇴,외출을 할 경우 관리자의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
⑥기타 복무관련은 "학교회계 직원 지침"에 준한다.

이 8조가 정규직과의 근로계약 체결 때도 적용되고 있을까요? '학교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네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약이 주종관계인가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근로계약 체결하면 종이 되고, 하인이 되고,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 입니까? 왜, 노동자가 사용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질 의무는 없는 겁니까? 이런 인권이 무시되는 근로계약이 대한민국 공공기관 중 가장 도덕과 윤리적이어야 할 학교에서 지금도 버젓이 체결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9조(휴가) ①"갑"은 "을"에게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정의 휴가를 허가한다.
1.유급휴가 : "을"이 1주간 소정근로일수를 개근한 경우 주 1일의 유급휴일을 주고, 1개 월간 소정근로일수를 개근한 경우 1일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며, 휴가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매월 임금지급일에 주.월차 수당을 지급한다.

휴가는 학교장이 허락해야 가고말고가 아닌데 위 계약서에는 '허가'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교육자가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얼마만큼 무시와 멸시로 일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조항입니다. 또, 저는 일당 받는 일용직인데도 주차와 월차가 주어지고 4대 보험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런 사항만 보더라도 대체인력은 위장일 뿐이라 여겨집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10조(계약의 해지) ①"갑"은 "을"이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때에는 근로계약을 중도에 해지 할 수 있다.
1.업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업무를 태만히 한 때
2.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3.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학교에 손해를 입혔을 때
4.사업의 종료, 예산의 감축 등의 사유로 계약의 해지가 불가피 할 때
②"갑"이 제 1항 제 1호의 사유로 근로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그 사유를 명시하여 문서로 일차 경고하여야 한다.
③"갑"이 제 1항 제 1호, 제 3호 및 제 4호의 규정에 의하여 근로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문서로 그 시기와 사유를 "을"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④"을"이 자의로 사직하고자 할 때에는 14일전에 근로계약의 해지 의사를 "갑"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계약의 해지도 보면 사용하는 사람의 권리만 강조되어 있을 뿐, 노동자의 권리는 극히 미미합니다. ④항도 보면 노동자의 의무로 쓰여 있지 권리가 아닙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11조(계약의 변경) "갑"은 계약기간 중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여야 하는 중대하고 명백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을"과 협의하여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1년 5개월 동안 3번 정도 근로계약서를 다시 체결했는데 지난해 연말에 체결한 근로계약서는 위 사항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저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학교쪽은 저와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급속하게 계약서에 도장 찍으라 했었습니다. 학교쪽은 6개월에서 2개월로 근로계약 기간을 변경하는게 "중대하고 명백한 사정"이 아니었나 봅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12조(손해배상)"을"이 업무상 중대한 과실로 "갑"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을"은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갑은 을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칠 만한 이유가 없을까요? 계약서이니까 당연히 갑의 배상부분도 적용 시켜야 하는거 아닌가요?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

제 13조(기타)①이 계약서상 해석상 의문이 있을 때에는 "갑"의 해석에 따른다.

사용자 마음대로 해석해 노동자에게 적용하겠다는 거잖아요? 교육기관에서 이래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1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호소문을 올렸었습니다. 며칠 후 인권위 담당이 친절하게도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문제는 인권위에서 다룰 사안이 아닙니다.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법률에 의해 만들어 졌으므로 민원 해결에 한계가 있습니다. 변 선생님의 경우 아무래도 2년 이상 되면 정규직 전환 문제가 발생하므로 해서 교육청에서 사전에 손을 쓰는 거 같습니다. 도움 못 드려 미안합니다."

두 번째로 지난 1월 5일엔 울산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호소문을 올려 보았습니다. "교육감님과 교육감님 가족의 생존이 중요하듯이 저도 저와 제 가족의 생존권이 중요합니다"라고요. 그러나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네요.

1월 7일엔 동구청장과 비정규직 노동상담 센터에 호소문을 남겼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상담 센터 담당분이 제가 다니는 학교의 행정실장을 만나서 작년말 긴급히 시한부 근로계약 체결한 의도를 알아 보겠다고 했었습니다. 여기저기 호소문 올린 후 학교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교장은 저를 불러 화단에 배추 비닐작업 늦어지는 것에 화를 냈습니다.

학교 권력자들의 비밀 이야기를 저같은 말단이 어찌 알겠습니까? 교육자들이 제가 '을'이라고 함부로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나 봅니다. 사회적 약자로 살지만 저는 제 가족의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해볼것은 다 해봐야 겠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을 고용한 법적 책임자는 교육감이라고 법원에서 판결 내린 바 있습니다. 교장은 대리인일 뿐이지 않나요?

청렴이 그 어떤 덕목보다 강조되는 교육현장에서 그런 변칙 고용계약이 남발 된다면 또한,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행정을 펼친다면 대한민국에 어찌 올바른 가치관이 흐르는 나라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작성된 변칙 근로계약서를 보면서 이런저런 심란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권력자는 세 사람, 대체인력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 한 사람 이었습니다. 3대 1에서 힘 없는 저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계약 체결은 굴욕감만 들었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비일까요?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파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것 같네요. 노동자는 '을'이고 사용자는 '갑'이라고요? 사용자는 명령권이 있고, 노동자는 그 명령에 순종해야하고 복종해야 하나요? 그건 노예고, 노비고, 머슴이고, 종에 지나지 않잖아요. 해야 할 일을 해주고 그 '노동력의 대가'로 수고비(임금)를 받으면 그뿐이지 거기에 왜 '상하관계'가 필요하고 '복종관계'가 필요한 건지 제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용자는 단지, 돈을 준다는 이유로 뭔가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만의 생각일까요?


태그:#근로계약서, #울산시 교육청, #비정규직, #위장 대체인력, #교육감 직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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