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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겸 부천여고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조한경 교사가 3일 오후 경기도 부천 원미구 부천여고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의 잇따른 철회 결정에 대해 "채택률이 곧 교과서에 대한 신뢰도"라며 "1%도 선택받지 못한 교학사 교과서는 그만큼 교사를 비롯해 학부모·학생들로부터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겸 부천여고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조한경 교사가 3일 오후 경기도 부천 원미구 부천여고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의 잇따른 철회 결정에 대해 "채택률이 곧 교과서에 대한 신뢰도"라며 "1%도 선택받지 못한 교학사 교과서는 그만큼 교사를 비롯해 학부모·학생들로부터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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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지난 3일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경기 부천여고 교사)을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조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친일·독재 미화 등으로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매우 낮다.
"채택률은 해당 교과서에 대한 교사들의 신뢰도를 나타낸다. 그렇게 따지면 전국 고교의 1% 정도만이 논란이 된 교학사 교과서를 신뢰한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때 '좌편향' 논란을 빚은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당시 채택률이 40% 정도였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가 낮다고 볼 수 있다. 교사뿐만 아니라 교학사를 채택한 학교의 학부모·졸업생·재학생들도 강하게 이의제기를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에서는 그동안 교학사 교과서를 살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결국 교사들은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첫 단추를 교육부가 잘못 끼웠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으면 국사편찬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검정 합격을 시키지 말아야 했다. 논란이 됐을 때 검정을 취소하거나, 결과 발표를 1년 유예해 수정할 기회를 줬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계속 끌고 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다행히 역사교사들과 학생·학부모가 마지막 단추를 다시 재대로 꿰었다."

- 보수 성향이 강한 경상도 지역조차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낮다.
"그쪽에 계신 역사교사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셨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대구 같은 경우는 학교운영위원회연합회에서 전 지역 고교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해달라는 공문을 뿌리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역사교사들이 학생의 입장에서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교과서를 채택했고, 그렇다 보니 정치적 입김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 했다고 판단된다."

- 역사교사들과 학생·학부모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교사들은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교과서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교사들은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가장 좋은 교과서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가장 좋은' 교과서까진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서술과 더불어 그동안 지적된 수백 개의 오류들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본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난해부터 언론을 통해 친일·독재를 미화하거나 오류가 많이 발견됐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거부감이 표출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 아이 또는 후배들이 이 교과서로 역사를 배울 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몇몇 학교에서 정상적인 선정 절차를 거치지 않아 논란이 됐는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반발 여론을 더 키웠다고 본다(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수원 동우여고의 한 역사교사는 지난 2일 '교과서 선택과정에서 발생한 외압 때문에 3순위로 선정된 교학사가 1순위를 재치고 최종 선정됐다'고 폭로했다. - 기자 주)."

"교학사 교과서 채택한 학교, 떳떳하다면 선정 절차 지켰어야"


- 역사교사들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도 해당 교과서를 유심히 봤지만, 정말 집필진들이 '교과서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집필 작업을 진행한 게 아닌 것 같다. 교과서를 써야한다는 조급함은 있었지만, 교과서가 가져야 할 덕목은 빠진 느낌이다. 교과서는 이념 이전에 아이들이 볼 교재이기 때문에 서술과 참고사료 등이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교학사는 그러지 못했다.

역사인식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전에 '시중 모든 역사 교과서는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인 적이 있다. 이런 생각에 따라 집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교학사 교과서를 보고 있으면 '증오'라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나마 지금은 교육부가 여러 번 도와줘서 많이 고쳤는데, 수정하기 전에는 교과서에서 '바닥빨갱이'란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어디 무서워서 이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있겠나."

-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은 '이미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입장이다.
"교과서 검정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면, 해당 학교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교사들에게 교과서 선정권을 맡겨야 했다. 보통 수순대로 한다면 교장은 관여할 수 없다. 역사교사들이 1~3순위로 고른 교과서를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한 뒤, 1순위로 올라온 교과서를 교장이 최종 선택한다. 이번에 교학사를 채택한 몇몇 학교는 역사교사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학사 교과서를 골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정말 떳떳하다면 절차를 지켜야 하지 않았을까.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학교들이 뒤늦게 철회하는 것 아닌가 싶다."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집필진이나 출판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식민지시대 때 좋아진 점이나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공을 그대로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한국사 교육과정상 식민지 시대에 변화된 삶의 모습을 다루게 돼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식민지근대화론뿐만 아니라 그 시기 친일 행위에 대해 아이들이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서술을 하지 않았다. 그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또한 한국사 교과서에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과가 모두 실려 있다. 다만 교학사는 과는 감추고 공은 키우려고 했다. 결국 공과를 균형 있게 쓰지 않은 게 반발의 원인이 됐다."

- '다양한 역사적 관점과 해석이 담긴 교과서를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다양한 교과서가 있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교과서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게 첫 번째 문제였다. 이념은 제치더라도. 과연 아이들이 역사교재로서 참고하기 적절한 내용과 구성인가 싶었다. 오류도 많았고 자료의 정확성도 떨어졌다. 친일파에 대한 옹호도 문제였다. 식민지 시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부대를 따라다녔다'고 표현한 것은 지나친 서술이었다. 다양한 교과서 중 하나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기본을 갖춰야 한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들은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시중에 나온 역사 교과서 모두 '좌편향'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럼 교학사를 선택하지 않은 99%의 교사들은 모두 좌파 역사교사인 것일까. 교학사로 공부하지 않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도 좌파부모일까."

"국정 교과서 체제 전환, 박정희 정권 때로 돌아가는 것"

조한경 교사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전환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내용이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며 "지금은 우선 검정 시스템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한경 교사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전환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내용이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며 "지금은 우선 검정 시스템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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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논란이 계속되는 사이, 정부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사교과서를 두고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국정으로 가자는 건 문제가 많다. 처음 국정 교과서 체제를 실시한 박정희 정권 때로 돌아가자는 뜻과 다름없다. 교육부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게, 교과서는 필자가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 게 아니다. 교육부가 정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만든다. 교과서가 다양해보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내용이 같다.

따라서 검정과정에서 문제 있는 교과서를 걸러내고 수정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거치는 교과서에 대해서 정부 스스로 문제 있다고 지적하면, 본인들이 진행한 검정 절차 역시 부실하다는 얘기가 된다. 제대로 된 검정 절차를 엄격하게 거친다면, 국정 체제를 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현장 교사들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다. 시끄럽게 만든 건 정치권이다. 정치권에서 만든 논란과 교육부의 무책임으로 생긴 검정 문제를 이유로 국정 체제로 전환하자고 이야기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과연 국정 체제로 간다고 해서 정치·사회적 논란이 생기지 않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정 체제로 전환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내용이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은 우선 검정 시스템을 냉정하게 점검해야할 때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검정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역사교과서 검인정 체제는 국가가 발행하는 하나의 교과서보다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는 게 낫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검인정 체제는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출판사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교과서 재질이나 사료 구성 등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출판사 별로 나름 필자를 꾸려서 교과서를 잘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현장 교사들이 교과서 집필에 직접 참여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학생들은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잘 만든 교과서는 아이들의 이런 생각을 희석시켜주고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검인정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들이다.

역사교사들은 교학사 교과서 사태 이후의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국정 체제 전환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교사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역사교육 문제를 두고 갈등이 첨예하다. 정권교체과 상관 없이 일관성 있는 역사교육을 펼칠 방법은 없을까.
"정치권이 지나치게 역사교육 현장에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역사교사들을 바라보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교사들은 학교현장에서 아이들과 의미 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할 뿐이다. 좌편향이라는 색안경으로만 바라보면 선생님들은 매우 불편하다.

또한 학계에서 충분히 연구 성과가 나온 내용만을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을 곧바로 역사교육 현장에 가져오면 이번과 같은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역사적 해석을 두고 첨예하게 갈등이 벌어지는 부분은 학계에서 학문적인 논쟁을 통해 검증을 거치는 게 우선이다."


태그:#교학사, #박정희, #전국역사교사모임, #조한경,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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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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