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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재영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정진 변호사가 1주기를 맞은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을 추모한 글입니다. [편집자말]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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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다. 모든 사람이 세속의 빛을 따라 떠나갈 때 끝까지 진보정당에 남아 미래를 준비하던 이재영 국장이 암이라는 병마에 쓰러진 것이. 그의 영결식은 울음바다였다. 빛 안 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그였지만 평생을 바쳐왔던 진보정당은 붕괴 일로에 있었으며, 자그마한 과실이나마 전혀 누리려고 시도조차 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슬픔은 그만큼 더 크지 않았을까.

내가 이재영 국장을 만난 것은 진보정당에 약간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환한 웃음과 유머, 냉철한 글과 의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전략과 논리, 이런 것들이 그를 휘감고 있었고 진보정당만이 한국사회를 유일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 그와 함께 정책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이재영 국장의 실제 나이나 경력 같은 것은 전혀 관심 밖이어서 알려고 하지조차 않았다(이재영 국장이 운명하고 나서야 정확한 나이와 어느 대학에 잠시 학적을 두었는지 알게 되었다).

소수 원외정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의석 하나 없으면서 국정감사를 한다고 하면서 의제를 설정하여 진보국감을 진행하기까지 하였다. 밤을 새워 정책을 가다듬고 통계와 법령을 정리하고 외국사례까지 검토하였지만 우리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중 1%도 당시에는 의제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영 국장은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고, 그 많은 정책담당자들을 조직하여 지금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채택한 많은 정책을 생산해 내었고, 이제는 당시 검토하였던 모든 의제가 조금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는 왜 진보정당의 역사인가?

그가 평생을 바쳤던 진보정당은 이제 폐허다. 그 폐허 속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경험 속에서만 새로운 것이 설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재영추모사업회에서는 지난 1년간 그가 남긴 많은 글들을 정리하여 유고집을 만들게 되었다. 1권은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진보정당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한 개인의 유고집 이름이 '진보정당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그가 남긴 대부분의 글들이 진보정당의 전략과 성장, 목표와 그를 달성할 수 있는 계획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진보정당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진보정치연합에서부터, 1997년의 국민승리21,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그리고 민주노동당 당권을 장악하여 심지어 이재영에게 퇴직금조차 주지 않으려고 했던 이해 불가능한 집단인 국민파-자주파연합에 의해서 당에서 축출될 때까지 정책국장 내지 정책실장으로 일해왔다. 그의 글은 진보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일부 사람들이 회고적으로 좋았던 시기라고 했던 때부터 진보정당의 분열 및 붕괴시기까지 거의 모든 시기에 걸쳐 있다. 그 중에는 이미 십수년이 지난 글도 있지만 지금 그 글을 읽어보아도 그 글은 여전히 현재형이고 진보정치세력의 미완의 과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상징할 수 있는 가능태(可能態)는 서구 복지사회 모델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곳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자신의 고유하고 완결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남의 프로그램을 차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조건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는 사회를 이끌 이념·정책·선전 역량을 가지고 있거나, 조만간 그것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전략 목표의 입안과 획득을 유예, 지연시키고 실현 가능한 또는 정치적 상징성을 지니는 과도 목표를 지향하는 잠정적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 건설에 관련된 몇 가지 단상, 1996. 4.)

십년 전에는 진보정당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로 비롯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진보언론조차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내놓고 했는데, 결국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실현한 이래 이는 대세가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후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과거 같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이슈인 현 대통령의 복지공약 후퇴가 그토록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그 실현가능성에는 더 이상 회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당 공약과 비교되어 민주노동당 공약의 가장 큰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예산 충당 계획을 가진 유일한 공약"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다른 당들처럼 "노동자부터 재벌까지 모두 위한다"는 망상스런 거짓을 버리고, 누구의 돈을 가져다 어디에 쓸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유일한 당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 권영길과 함께 만든 '평등 세상ㆍ자주적인 나라', 2002. 11. 25.)

'과학'이었던 노회찬-주대환을 떠나보낸 이유

최근 1주기를 맞아 발간된 이재영 전 정책실장의 유고집 2권.
 최근 1주기를 맞아 발간된 이재영 전 정책실장의 유고집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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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이 운명하였을 때 진보정책의 기틀을 다졌다는 이유로 야당에서 모두 추모 논평을 발표한 적이 있었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런 기조로 보도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술자가 아니었고, 자신이 왜 정책과 전략을 다루는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진보정당이 분열할 때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동일한 이유도 이야기하였지만 사뭇 다른 이유도 이야기하였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민주노동당을 넘는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첫 이유는 '주체사상파' 때문이다. 20년 노동운동한 노조 위원장이나 한총련 학생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고, 민주노동당 10년 역사 중 앞 절반의 시기에는 전자가 후자를 선도했지만, 뒷 절반에는 후자가 전자를 표로 압도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독도에 공수부대 보내자는 당이 되었고, 당직자의 언행을 감시해 북한 정권에 넘기는 당이 되었고, '자주적 핵무장'에 열광하는 당이 되었다. (중략)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무능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눈치를 살피느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당과 노조가 어디에 설 것이고,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를 재계약해야 한다."("이제 민주노동당을 넘자", 2007)

진보정당의 분열 국면에서 그는 뜻을 같이 하던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입장과 판단에 따라 다른 정치세력을 옮겨가는 것을 목도했었다.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암세포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정말로 원한이 없는 사람이었다. 필부들은 배신을 당하면 치를 떨지만 그 모든 것을 논리와 이성으로 이해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진보정치의 복원을 꿈꾸었었다.

"내게 주대환과 노회찬은 과학이었다. 나는 그이들의 권능을 믿고 추종했다. 그 '과학'이 더 이상 과학이기를 거부함으로써 나는 내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벗어났다. 다시금 20대 때와 같은 시적(詩的) 혼돈의 시대로 회귀했다. 이태리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는 "기적이야말로 시인의 목표다"라고 갈파했다.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노회찬과 주대환을 보내며", 2012)

그가 보다 평탄한 시기에, 평탄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운명할 때까지 정의롭고 희생했다

유고집 2권의 제목은 '비판으로 세상을 사랑한다'로 되어 있고 그가 쓴 여러 주제에 관한 칼럼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재영의 드문 매력 중의 하나는 진보세력을 향해 쓴소리도 결코 빼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진영 논리에 빠져 자신의 편이기만 하면 무슨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옹호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의 퇴행에 주요한 원인인지도 모른다.

이재영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거침이 없다. 보수파, 자유주의세력, 진보세력,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을 두루 비판하고 있고 지금도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그는 사회 제세력과 기구를 비판함에 있어 친소나 그 파장 같은 것을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세력들은 실제로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집단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비판은 결국은 사회진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무능한 한국우익, 3대세습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진보정당, 전체 노동자들의 지위향상보다는 자신들의 월급만 올리는 노동운동, 시대착오적인 민족적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북한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단체들,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는 노무현 정권, 회원참여 없는 시민운동에 대해서 그는 에누리 없이 비판해 왔다.  

마지막으로 그는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지만 자본주의가 만드는 모든 불의와 억압을 철폐한다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포기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인민노련이라는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과거 동료가 판사가 되었다. 이 판사가 민주당은 놓아두고 힘이 약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만 본희의장을 점거했다고 해서 업무방해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공소권 남용이라고 공소를 기각하자 일부 보수언론에서 이 판사의 과거 이력을 들추어 내어 공격한 일이 있다.

"우리는 정의롭고자 했고, 마땅히 희생하고자 했다. 우리가 어리고 서툴러 잘못한 일이 많았다고 손가락질 받고, 희생이 부족하다거나 가식이었다고 지탄받을망정, 그 올바르고자 했던 젊은 마음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올바름이 범죄의 증거, 탄핵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단지 부끄러운 것은 '사회주의 혁명 조직'에서 일했다는 기억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은커녕 사상과 양심의 자유조차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다."("부끄러워야 하는 자, 누구인가?", 2009)

이재영, 그는 운명할 때까지 정의로웠고 희생했다. 그가 남긴 유고집은 정의로웠고 끝까지 희생한 사람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남은 분들이 그의 글을 읽고 새로운 정의를 위한 투쟁에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이재영, #김정진,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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