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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전망대에서 바라 본 장흥 들녘과 억불산 전경. 동학전망대는 천지인 둘레길에 있다.
 동학전망대에서 바라 본 장흥 들녘과 억불산 전경. 동학전망대는 천지인 둘레길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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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금세 공감이 간다. '잘 키운 재래시장 하나, 열 마트 안 부럽다'는 말도 가능하겠다. 장흥 토요시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이 장터가 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토요시장을 기획한 전남 장흥군이 최근 야심차게 선보인 길이 있다. '천지인 둘레길'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란 의미다. 장흥읍성 터를 중심으로 탐진강 수변공원, 동학공원을 연결시켰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녹색길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아 다듬었다.

천지인 둘레길은 장흥읍사무소 뒤쪽 탐진강변 홍살문에서 시작된다. 성곽을 떠올리게 하는 벽화를 따라 산길로 들어서면 바로 삐비정과 만난다. 봄에 삐비(삘기)가 많았다는 곳이다. 읍성의 동헌에서 봤을 때 작은 초가들이 삐비처럼 빼곡해서 이름 붙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대가 높아 읍성의 망루(望樓) 역할을 했다. 지금은 안내판으로만 남아 있다. 그 자리에 동문정(東門亭)이 세워져 있다.

장흥 천지인 둘레길에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천지인 둘레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뤄져 있다.
 장흥 천지인 둘레길에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천지인 둘레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뤄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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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정에서 내려다 본 장흥읍내. 앞으로 탐진강이 흘러 넉넉한 풍경을 선사한다.
 동문정에서 내려다 본 장흥읍내. 앞으로 탐진강이 흘러 넉넉한 풍경을 선사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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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정에 오르니 장흥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양강과 석대보, 박림소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장흥 물축제의 중심공간인 수변무대도 강 풍경에 들어앉아 있다. 그 너머로 읍내 아파트 단지가 쭈뼛쭈뼛 솟아 있다.

삐비정을 지나면 본격적인 성곽길과 만난다. 오른편이 성 밖이다. 예양강 물줄기와 읍내 시가지 풍경이 펼쳐진다. 성곽을 걷는데 위험하지 않도록 나무로 안전판을 이어 놓았다. 왼편 성 안은 수목으로 우거져 있다.

장흥 천지인 둘레길 모습. 길섶에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장흥 천지인 둘레길 모습. 길섶에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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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성(長興邑城)은 1414년(조선 태종 14년)에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능선을 따라 흙과 돌로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일부 구간은 자연 그대로 낭떠러지를 성벽으로 활용했다. 둘레가 4㎞ 가량 된다. 동쪽과 남쪽, 북쪽에 성문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북문 쪽에 성벽 밖으로 내밀어 쌓은 치(雉)와 성 주변에 판 연못인 해자(垓字)가 남아있다. 현재 법원과 검찰청, 경찰서가 성내에 들어서 있다. 삐비정에서 북문 터로 가는 길은 흙성(토성)으로 이뤄져 있다. 유서 깊은 성터를 걷는다. 우리 조상들이 국난을 이겨냈던 역사현장이다.

옛 풍습의 하나인 성 밟기가 연상된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 밟기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길을 걷다보니 정말 건강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평지의 성곽과 달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덕분이다.

장흥읍성의 흔적. 천지인 둘레길에서 만나는 석성의 일부 모습이다.
 장흥읍성의 흔적. 천지인 둘레길에서 만나는 석성의 일부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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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둘레길의 장원봉 앞 길. 소나무 한 그루와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천지인 둘레길의 장원봉 앞 길. 소나무 한 그루와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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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장원봉으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 터널을 지난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진녹색의 동백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몸과 마음도 가뿐해진다. 돌로 쌓은 성(석성)의 흔적도 이 구간에 남아있다.

경사가 다시 가파르다 싶더니 장원봉(壯元峰)이다. 높이 173m로 높지는 않다. 지명 유래가 적혀 있다. 장원봉 아래, 지금의 경찰서 뒤편 마을이 장흥 위씨(魏氏) 마을이었다. 여기에 사는 위원개, 위문개 두 형제가 장원급제를 해서 장원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송광사 국사전에 모셔진 16국사 가운데 원감국사 충지가 위원개라는 것이다

장원봉을 지나  동학전망대로 가는 길은 장흥읍내와 억불산을 보며 걷는다. 왼편으로 보이는 억불산(億佛山)은 장흥읍과 안양·용산면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봉우리가 다소곳한 며느리를 닮고, 산의 능선이 며느리의 치맛자락 같다.

마삭줄이 지천인 천지인 둘레길 모습. 경사가 조금 가파른 곳엔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마삭줄이 지천인 천지인 둘레길 모습. 경사가 조금 가파른 곳엔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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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내와 억불산 전경. 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장흥읍내와 억불산 전경. 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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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바위에 애달픈 이야기도 스며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구두쇠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하루는 시아버지가 시주하러 온 스님을 내쫓았다. 이를 본 며느리가 대신 사과하며 시주를 했다. 이에 스님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날 것이니 산으로 도망을 가되,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며느리에게 알려줬다. 그러나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애절한 비명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뒤를 돌아봤고, 그만 돌로 굳어버렸다는 얘기다.

억불산의 자태를 보며 걷는데 길섶 여기저기에 며느리밥풀꽃이 피어있다. 진분홍색의 꽃잎에 하얀 밥알을 품은 꽃이 애틋하다. 며느리는 하나같이 착한데 시부모는 왜 그리 모질게 그려졌을까. 요즘 시부모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도 잠시. 동학전망대에 닿는다.

천지인 둘레길에 많이 피어있는 며느리밥풀꽃. 며느리의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천지인 둘레길에 많이 피어있는 며느리밥풀꽃. 며느리의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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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 장흥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 장흥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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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전망대는 동학농민군이 최후까지 관군과 싸웠던 석대들녘을 조망하는 지점이다. 동학군은 1894년 12월 공주싸움에서 지고 곧이어 전봉준도 붙잡혔다. 호남지방에서 끝까지 버티다 장흥에서 최후나 다름없는 일전을 치렀다. 장흥읍 석대들이 그곳이다.

여기서 보이는 동쪽의 낮은 언덕이 석대(石臺)다. 동학군이 장흥성을 함락하고 깃발을 꽂아 위세를 떨쳤던 현장이다. 전망대에 서서 한참동안 석대들을 바라봤다. 죽창을 든 농민군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들판으로 뛰어가 관군을 향해 죽창을 힘껏 내던지는가 싶더니 금세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도 그려진다. 비바람에 가녀린 꽃잎 떨어지듯이.

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농민군에게 동학은 평등세상과 인간존중을 일깨워준 계기였다. 그래서 부패한 권력에 맞서 호미 대신 죽창을 들고 평등세상을 위해 싸웠을 것이다.

누렇게 물들고 있는 장흥 석대들 전경. 동학농민군이 최후의 혈전을 펼쳤던 곳이다.
 누렇게 물들고 있는 장흥 석대들 전경. 동학농민군이 최후의 혈전을 펼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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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 장흥공설운동장으로 내려가다 뒤돌아 본 모습이다.
 천지인 둘레길의 동학전망대. 장흥공설운동장으로 내려가다 뒤돌아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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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20년이 다 된 지금, 동학군이 목숨 걸고 염원했던 정의로운 세상이 얼마만큼 실현된 걸까. 산 아래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동학기념관 건립공사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혼자 생각해 본다.

길은 이제 나무데크를 깔아놓은 계단을 따라 장흥 실내체육관과 공설운동장 쪽으로 내려간다. 공설운동장 왼편에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이 서 있다. 송기숙 선생이 탑문을 쓰고 고은 선생이 '장흥 농민군을 기리는 노래'를 적었다.

둘레길은 마을길과 아스팔트길을 따라 하마비(下馬碑)와 장흥향교, 장흥문화예술회관, 장흥경찰서를 거쳐 장흥토요시장으로 이어진다. 잘 만든 길과 잘 키운 토요시장이 만나면서 천지인 둘레길이 마무리된다.

장흥토요시장의 공연장 모습. 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장흥토요시장의 공연장 모습. 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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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화순읍으로 간다. 화순읍에서 29번국도를 타고 보성으로 가서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목포방면 장흥나들목으로 나가 장흥토요시장을 찾으면 된다. 화순읍에서 29번국도를 타고 이양교차로에서 장흥방면으로 곰치를 넘어 보림사 입구를 지나도 된다.



태그:#천지인 둘레길, #장흥, #녹색길, #동학전망대, #장흥토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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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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