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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다. 한 번쯤 생각해 봄 직한 8가지 주제와 그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예시들이 있다. 물론, 작가의 개인적인 얘기도 담겨 있다. 책 중간중간에 관련된 사진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책 디자인도 괜찮은 편이다. 제목 <여덟 단어>도 무언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네이밍이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책이다.

잘 기획되었고, 요즘 핫(hot)한 요소인 '인문학'적인 것을 적절히 다루었고, 게다가 요즘 완전 대세인 '힐링', '위로'의 이미지도 첫 번째 단어 '자존'에서부터 건드리고 있는데 말이다. 작자의 글 솜씨도 나쁘지 않다. 한 마디로 말해 베스트셀러가 될 모든 요건은 두루 갖추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이후 "스테디셀러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글쎄..."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올 것 같다. 마치 번드르르한 프리젠테이션(PT)을 본 기분이다. 하지만 PT가 언급한 상품의 구매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

스테디셀러로 나아가려면...

 <여덟 단어>는 기획이 잘 된 책이다.
<여덟 단어>는 기획이 잘 된 책이다. ⓒ 북하우스
왜 그럴까? 우선, 확실한 타깃팅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는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인생? 좋은 접근이다. 인생을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상황에서 인생은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가? 누구라도 이 화두 앞에선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생'이라는 것은 요즘 무척 많이 건드려지는 질문이고, 화두다. '빠름, 성공, 혼자'만을 좇고 살아왔던 현대인들은 이제 다른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느림, 힐링, 같이, 방향' 등으로. 그래서 이런 현대인들을 도와주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가면 고만고만한 주제와 내용의 책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미 이런 책들에 길들여져 있고, 그들은 어지간한 책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마치 액션 영화광들이 더 부수고 더 자극적인 액션을 찾는 것처럼. 이 책 초반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돈오(頓悟)의 과정을 아쉽게도 이 책에선 찾기 쉽지 않다. 물론, 기타 여러 책들에서 받았던 인사이트나 경험들을 통해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책이라는 건 반갑다.

그렇다면, 이 책의 타깃팅을 아예 한정하고 그 방향으로 책을 썼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이제 올바른 인생관에 대해 생각하고, 방향성을 갖춰 나가야 할 10대를 대상으로 썼다면 조금 직설적이고, 그들에게 정말 맞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동안 먹고 사느라 인생에 대해 제대로 성찰해보지 못했을 4~50대가 하프타임 이후 생각해 볼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건드렸다면 어땠을까? 아마 모든 세대가 생각하는 인생이 아닌, 그들에게 딱 맞는 인생의 모습들과 방향들을 잘 코칭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어의 카피가 선명히 잘 나와 있다
단어의 카피가 선명히 잘 나와 있다 ⓒ 이대로

둘째는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서다. 강의 형식이기 때문에 참 많은 예시를 들었다. 유명 인사의 명언부터 시, 미술, 영화, 책의 내용들, 광고 이야기까지... 물론 좋은 예시들이다. 작가의 풍부한 독서 소양과 인문학적 관심은 대단하다. 게다가 이런 예시들의 상당수가 '현대'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첨성대, <나의 조국> 음악, <맹자>' 등 소위 '고전(Classic, 3번째 단어)'으로부터 뽑아 올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과 예시들을 230여 페이지의 한 권의 책에 담으려니 그 예시가 받들어야 할 주제보다 예시 따라가기에 급급한 느낌이다. 마치 맛있는 횟집에 갔는데 정말 맛있는 '곁들인 음식(스키다시)'이 계속 나와서 정작 마지막에 나온 회의 맛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나 할까? 정말, 아쉽지 않은가? 횟집에선 회를 먹어야 되는데...

작가가 선정한 8가지 단어. 정말 좋은 단어들이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들을 잘 선정했다. 하지만 그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가 많다보니, 정작 그 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기 힘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예시들보다 작가의 이야기가 좋았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한 것이나 예전에 썼던 칼럼('여자는 꼭 여자답게 걸어야 하는가') 내용이 좋았다. 자신의 것은 더 힘이 있다고 하지 않나. 작가가 책을 읽고, 한 번 거쳐서 독자들에게 건넨 내용보다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 더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냥 여러 책들을 아무 생각 없이 베낀 책들과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 작가의 사회, 인생을 바라보는 남다른 안목(見, 4번째 단어)이 책에 잘 투영된 것 같다. 첫 번째 단어 '자존'에서의 '내 안에 있는 걸 보라'와 여섯 번째 '권위'의 '문턱증후군' 등 작가가 나름 새롭게 정의한 용어들이나 표현들이 참 마음에 든다. 아마도 수십 년, 몸담고 있었던 광고판에서 나온, 그리고 만만치 않은 독서에서 나온 창의력과 통찰력의 산물이었으리라.

다음 책을 기대한다

많이 폄하했지만, 이 책이 인생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 본다.

감히 조언하자면, 한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어떨까? 여덟 단어가 아니라 '한 단어'를 깊이 조명해 보는 것이다. 작가가 본 좋은 책들, 경험한 모든 것들, 광고의 모든 자료들을 그 단어에 집중해서 쏟아 붓는다면 그 주제의 깊이는 얼마나 깊겠는가! 또 그 주제를 접한 독자들은 얼마나 그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굳이 예시를 들자면, 작가도 책에서 언급한 박경철씨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기가 아니다. 그리스를 통해 인간의 모습에 대해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책의 갈피마다 박경철씨의 엄청난 독서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박경철씨는 전문성이나 독서의 내공으로 보자면, 충분히 다른 주제의 베스트셀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작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얼마나 잘 쓸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뚝심에 놀랐다.

깊이 있고, 가능성 있는 박웅현씨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여러 단어보다 한 방이 있는...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clearoad



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2013)


#여덟 단어#박웅현#여덟#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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