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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1년째 맞는 '달팽이 영화제' 풍경.
 올해로 11년째 맞는 '달팽이 영화제' 풍경.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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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맥주 한 잔과 달팽이 영화제   

스페인 세비야 강 건너편 트리아나(Triana) 지구의 골목 길, 작은 카페 공간의 열린 문으로 시끌시끌 사람들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슬쩍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 보니 카페를 지나 건물의 파티오(스페인식 건물 가운데 있는 정원)에는 영화 상영을 위한 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고,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행사는 올 단편영화공모제에 출품된 작품 중 1차로 선정된 40편의 작품들을 일주일간(하루에 10편 씩)상영하는 '달팽이들에 의한 단편들'이다. 행사 이름에 걸맞게 영화제 상징물도 달팽이 모양의 귀여운 카메라이고 모인 사람들도 맥주와 함께 달팽이 안주를 곁들여 먹고 있다.

올해로 11년이 된 이 여름 행사는 처음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몇명의 사람들이 모여 여름밤 맥주 한 잔에 달팽이 안주를 먹으며 단편 영화를 관람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공모에 참여하는 작품이 무려 400여 편,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등 해외작품이 출품작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행사는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입장권이 무료다. 누구나 와서 영화를 관람하고, 이웃들과 달팽이 안주에 맥주를 한 잔 하며 여름 밤을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축제의 모양새를 잃지 않고 있다.

달팽이 안주(Caracoles)와 여름 와인(Tinto de verano)
스페인 세비야의 여름 밤을 책임지는 달팽이 안주와 와인
 스페인 세비야의 여름 밤을 책임지는 달팽이 안주와 와인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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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주는 스페인 남부의 대표적 여름 안주로 5월에서 8월까지가 제철이다. 스페인어 월명 중 'R'이 들어가지 않는 달에만 먹는다고 해서 'R없는 달'의 안주라고도 한다. 요즘은 당연히 양식을 해서 4계절 모두 먹을 수 있지만 제철은 단연 여름이다. 우리나라 다슬기 요리와 비슷하다. 이와 함께 빠질 수 없는 여름 음료가  바로 '딘또 데 베라노(여름 와인)'. 적포도주와 소다를 반반 섞어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즐기는 음료다.

# 장면 둘. 4유로가 주는 즐거움

스페인 세비아의 '의회 영화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스페인 세비아의 '의회 영화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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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여름은 덥다. 한낮 거리를 걷다가 40도를 넘는 도심 온도계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낮 기온이 최고 50도를 넘는 날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곳은 여름 밤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많다. 앞서 소개한 달팽이 영화제는 그 수많은 행사 중 하나일 뿐이다.

여름 밤 문화 행사 중에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CINE DE VERANO(여름 영화제)'. 이는 세비야뿐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의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여름 프로그램이다. 한창 여름 영화제가 붐일 때는 세비야 한 도시에만 야외 영화제가 70여 곳이 넘는 곳에서 진행된다. 점차 예산 축소와 경제 위기로 인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여름의 시작과 함께 다양한 여름 영화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세비야 지방 의회 광장에서 열리는 여름영화제는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여름 영화제가 오래된 영화 중심으로 상영하는 것에 비해 '의회 여름영화제'는 최신 영화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올해도 <호빗> <아무르> <아르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영화가 9월까지 매일 밤 상영될 예정이다. 입장료는 4유로. 해마다 조금씩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기존 영화관 비용과 비교하면 반 값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다. 의회 광장 야외에 배치되는 좌석만해도 800석, 하지만 영화에 따라 이 좌석이 가득 차는 경우도 있으니 세비야 시내에 살고 있는 시민들 대부분이 영화를 보러 나온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영화를 보러 속속 의회광장으로 모이는 사람들.
 영화를 보러 속속 의회광장으로 모이는 사람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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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셋. 알카사르 정원에서 즐기는 음악축제

이뿐이 아니다. 세비야 대표 관광지 알카사르(성곽 궁전) 정원의 음악축제는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행사다. 여름기간 만큼은 알카사르 정원이 야간 개장을 하고 공연비 5유로에 밤의 정원과 함께 수준급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큰 행사들 말고도 동네별로 기획된 광장과 공원 여름 행사들도 7월 들어 속속 시작되고 있다. 그야말로 여름 밤 세비야는 지루할 틈이 없다.

경기가 어렵다고 문화 생활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여름 문화행사처럼 모두에게 열려있는 저렴하고 알찬 행사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기획된다면 말이다.

늦은 저녁 식사 후(스페인은 보통 오후 9시 이후가 저녁식사시간이다), '오늘은 뭐가 있나?' 인터넷을 살펴보고, 슬슬 슬리퍼를 끌고 부채 하나 손에 들고, 주머니에 맥주 한 잔 할 몇 유로를 챙겨 넣고, 동네 골목을 어슬렁 거리며 밤 마실을 거니는 즐거움, 다른 사람은 알기나 할까?


태그:#세비아,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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