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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경제학 철학 초고> <선성가족> <독일 이데올로기> <철학의 빈곤> <임금노동과 자본> <공산당 선언> <프랑스의 계급투쟁 1848~50>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영국의 인도 지배의 장래의 결과>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포그트 씨> <임금, 가격, 이윤> <자본 1,2,3권> <프랑스 내전> <고타강령 초안 비판> <잉여가치 학설사>...

사회과학 지식이 있는 사람은 이 저작들을 쓴 사람이 누군지 단박에 알 것이다. 바로 카를 마르크스(맑스). 그런데 뜬금없이 왜 목록을 나열했냐고? 이 목록은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읽은 마르크스의 저작 목록이다.

지난 5월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출간된 체 게바라의 저서 <공부하는 혁명가>의 부제는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다. 체 게바라는 1966년에 볼리비아로 가서 반독재 혁명군에 가담을 했고 이듬해인 1967년에 사망했는데, <공부하는 혁명가>는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해인 1965년에 쓴 책이다.

우리는 체 게바라를 티셔츠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체 게바라를 티셔츠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 카피레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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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체 게바라'는 젊은이의 티셔츠에 새겨진 흑백 얼굴 사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중남미 전역을 다니며 여행을 떠나는 낭만적인 이미지. 배우 뺨치게 잘 생긴 얼굴에 시가를 삐뚜룸하게 깨문, 그야말로 간지가 좔좔 흐르는 모습은 젊은이들의 선망이 될 만하다. 게다가 총을 들고 불의에 맞서 싸운 체 게바라의 비타협적 삶은, 그 자체로 젊은이의 맥박수를 두 배로 증가시키는 아드레날린이다. <공부하는 혁명가>의 역자 한형식은 책 말미에 쓴 해제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이런 통상적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침을 놓는다.

"많은 이들이 체 게바라를 존경하고 찬양하고 사랑하며 그리고 소비한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체는 각각의 경우마다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체가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바람을 체라는 이름에 투사한 가공의 인물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진짜 체는 누구인가?"

<공부하는 혁명가>는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한 '마르크시스트'로서의 체 게바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원래 체가 출간하려고 계획했던 정치경제학에 대한 책의 초고에 해당한다. 책의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비범한 두 인물의 역사적인 만남
지칠 줄 모르는 힘찬 인간성
혁명의 물결, 공산당선언의 탄생
고달픈 삶, '자본'을 쓰다
제1인터내셔널과 파리코뮌
거대한 정신의 죽음
엥겔스, 최초의 맑스주의자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압축해서 서술한 입문서 성격의 책이다. 예전에 체 게바라가 게릴라 활동을 할 때 틈나는 대로 게릴라 대원들에게 마르크스의 <자본>을 가르쳤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삶을 쉽고 친절한 문체로 전달하려는 체 게바라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체 게바라가 화이트보드에 판서를 하며 독자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삶에 대해 요악 설명해주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 책은 독자에게 그런 흔치 않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체 게바라가 쓴 책 <공부하는 혁명가>의 표지
 체 게바라가 쓴 책 <공부하는 혁명가>의 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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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번역자 한형식이 쓴 해제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의 저자이기도 한형식은 '체 게바라가 들려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야기'라는 재료에 마르크스주의자 체 게바라의 면모를 알 수 있는 해설을 곁들여 책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한형식의 해제에 따르면 체가 온전히 마르스크주의자가 된 때는 1954년 과테말라에서 활동하던 시기라고 한다. 체는 당시 과테말라의 마르크스주의 운동 세력과 그 일원이었던 첫 번째 부인 일다 가데아Hilda Gadea의 영향으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이 시기에 체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체는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상당히 많이 읽었고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과테말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후 체는 멕시코로 거점을 옮겼는데 그곳에서는 체는 더욱 공고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쿠바의 '7월 26일 운동'의 구성원들에게 마르크스의 저작들로 공부하기를 권한 것도 체 게바라였다. 그는 처음부터 쿠바혁명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키려 했다.

하지만 체는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라틴아메리카 독립 영웅인 볼리바르에 대해 했던 평가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당대의 멕시코에 대해 행했던 분석이 부적절했다고 평가한 점에서도 체의 그런 면모를 알 수 있다. 체는 마르크스주의가 무오류의 교의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체는 마르크스주의의 정통 노선과는 달리 조직 노동자가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혁명적 계급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 실상을 반영한 것이고 체의 사상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변증법으로 만나는 지점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 체에게 또 하나 중요했던 것은 바로 휴머니즘이었다. 그가 쿠바혁명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도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이었다. 체는 쿠바의 산업부 장관 시절인 1964년에 했던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쿠바 혁명이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 중심에 놓이고, 혁명의 핵심 요인으로서의 인간의 인격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다."

체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로서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생산력 발전만큼이나 공산주의 사회에 필요한 인간 의식과 사회관계를 정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체는 당시 소련의 노선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재단하기 위해 성장률이나 생산성에만 초점을 둘 뿐 철학적 또는 정치적 측면들에는 무관심하다"고 보았다.

그는 1963년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산주의적 도덕, 사기, 의욕이 없는 경제적 사회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가난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소외와도 싸우고 있다.…… 만약 공산주의가 의식으로부터 분리된다며 그것은 분배의 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더 이상 혁명적 도덕은 아니다."

<공부하는 혁명가>에서는 체 게바라가 풀어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강의에 이어 한형식이 풀어주는 마르크스주의자 체 게바라 강의가 이어진다. 이런 멋진 두 개의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혁명가 -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체 게바라 지음,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2013)


태그:#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 #한형식, #오월의봄,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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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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