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지 않게 쌀쌀하다. 이런 식의 봄이라면,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올 것 같다. 더군다나 올여름에는 폭염과 폭우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하니, 서민들과 산동네, 달동네, 재개발지구에 사는 이들에게는 고난의 계절일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중심에서 밀려난 것도 서러운데,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날씨조차도 서럽게 하는 것 같다. 본래,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비와 햇살과 바람은 다 공평하게 준다고 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따스한 봄날과 열매 가득하여 시원한 가을이 아니라면.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에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버려주고 간 화분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나 봄을 피운다. 몇 번째 봄을 맞이하는 중일까? 그 나무를 심은 이는 지금 어디로 간 것일까?
용산참사, 그토록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하기까지 했는데, 재개발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그런 사업을 밀어 부친 이들 중에서 책임지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끝이다. 나쁜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처단하지 않는 나쁜 나라가 아닌가?
골목길을 걷다 실루엣 덕분에 살림살이를 훔쳐본다. 쓰레받이와 빗자루, 그리고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청소도 하고, 아무리 누추하나 곳이라도 쓸고 닦아내듯이 나름 고칠 것들도 있을 것이다.
가로등불빛이 은은하다. 그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마다 쓸쓸함이 가득하지만, 그곳에도 봄이 왔음이 뭍어 나는 것을 보면서 '좋은 날도 오겠지'라고 희망을 품어본다. 그냥 후미진 골목길에서 일을 봐도 나무랄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공용화장실이 있어 들어가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봄이 왔다. 세상이란, 넓은 창으로 바라보거나 작은 창으로 바라보거나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사는 곳, 남아있는 분들 중에는 노년의 시기를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아 보인다. 폐지를 쌓아놓은 집들이 제법 많다. 폐지 값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용산보다 낫다고 해야 할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재개발은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방식일까?
이젠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떠났고, 동네는 새마을운동 바람이 분다고 해도, 껍데기만이라도 그럴듯하게 꾸며 보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곳에 살던 이들과 지금도 살아가는 이들이 다시 돌아와 살아갈 수 있는 동네로 조성해야 할 것이다.
봄, 그냥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그래도, 봄은 겨울보다 나으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