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한 장면 이 프로그램 꼭지 이름이 '멘붕스쿨'이다. 우리 말로 한다면 '정신없는 학교, 얼빠진 학교'쯤으로 해야겠지만, 그게 시청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말' 또는 '말장난'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으리라 짐작하지만 방송이 우리 말을 어지럽히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한 장면 이 프로그램 꼭지 이름이 '멘붕스쿨'이다. 우리 말로 한다면 '정신없는 학교, 얼빠진 학교'쯤으로 해야겠지만, 그게 시청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말' 또는 '말장난'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으리라 짐작하지만 방송이 우리 말을 어지럽히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KBS

관련사진보기


'멘붕'이라는 말이 생겨나 어른이고 아이고 가리지 않고 마구 쓴다. 오늘 아침 한 신문에도 '멘붕'이라는 말이 나왔다. '멘작'이라는 말도 있다. 기사 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 보겠다.

'멘붕=멘탈 붕괴, 멘작=멘탈 작살…' 대구 동호동 경북외국어대의 한 교수 연구실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방 주인인 A교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 (2013. 4. 19. OO일보)

기사에서 보듯 '멘붕'은 '멘탈 붕괴'의 줄임말이다. 방송이고 신문이고 내남없이 쓰는 말이 되었다. 지난해 새누리당 18대 대통령후보자 합동연설회에 나온 박근혜 후보가 "계속되는 네거티브 공세에 멘붕이 왔다"고 할 만큼 흔한 말이 되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정신이 허물어질 만큼 충격을 받은 상태'를 가리키지만, 아무 자리에고 막 쓴다. 신문에서 '멘붕'을 쓴 데를 찾아보았다. 말을 쓰는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대전 충청지역 연고 팬들이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2013. 4. 16.󰡖󰡖일보)
민주당, 윤진숙 임명 강행에 '멘붕' (2013. 4. 18. △△일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현실에 반대하다 결국 멘붕에 빠지기까지 한(2013. 4. 18. OO신문)
연둣빛 4월에 갑자기 눈발을 흩날리는 하늘은 '멘붕' 상태임이 틀림없어 보였다.(2013. 4. 19.OO일보)

'멘붕'의 말밑을 한 번 따져 보자. '멘탈(mental)'은 '정신의, 마음의, 지적인, 관념적인'이라는 영어이고, '붕괴'는 '허물어 무너진다'는 한자말이다. 두 말이 더해 만든 새로 만든 말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처음 쓴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일본말 '멘부레(メンブレ·mental break)'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뭐, 이 말을 일본에서 가져다가 '멘호(メン崩)' 표현을 쓰기도 한다니 자랑스럽게 여겨야할까.

말밑이 일본말이 되든 게임 말이 되든 어쨌든 우리 말을 어지럽히는 잡탕말일 뿐이다. 안 써도 좋은 말이요, 쓰지 말아야 할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방송까지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나.

더구나 '어처구니없다, 말도 안 된다, 넋이 빠지다, 정신이 없다, 혼란하다, 놀랍다, 언짢다, 기막히다, 기가 찬다' 같은 우리 말 자리를 야금야금 빼앗고 있다. 뻔한 말이지만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언론이 해야할 책임 가운데 하나다. 그 책임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우리 말, #우리 글, #바로쓰기, #멘붕, #멘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