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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연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 인간이든 생물이든 자연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법칙을 지적으로 '대상화'할 줄 안다.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다. 가령 고대인이 돌을 쪼개거나 날카롭게 갈면 좋은 무기나 사냥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는 마른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았을 때, 그 고대인은 돌이 날카로워지고 불이 붙는 자연의 법칙을 '대상화하며' 아는 것이다. 법칙을 대상화할 줄 아는 인간은 그 법칙을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해 다른 이에게 전수한다. 이렇게 전수되는 자연법칙이 '기술'이다.

불을 피우는 기술 안에는 자연법칙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기술은 단순히 자연법칙이 드러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통제'되고 '조작'된 것이다. 번개에 의해 불이 나든,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든, 모두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고, 그 자연법칙의 생생한 구체화이다. 그렇지만 벼락을 맞아 산불이 일어나는 경우보다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때, 자연법칙은 인간 안에 한층 더 분명하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자연 법칙이 인간 안에 하나의 지식으로 갇히는 것이다.

인간은 지식이 된 자연법칙, 전수된 자연법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통제한다. 불도 인간의 목적에 맞추어진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을 일으킨다. 인간이 자연법칙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목적에 어울리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물론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불이 붙든,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든, 그것은 자연법칙의 반영이다. 인간이 땅 위를 걷는 단순한 행동 속에도 자연법칙이 들어있다. 그럴 때의 자연법칙은 나무 안에, 인간 안에 그만큼 내면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별도로 떼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인간은 자연법칙과 철저하게 하나 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든 불은 인간에 의해 객체화되어 이용당한 불이다. 인간은 불을 이용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불의 힘을 더 강하게 느끼고, 스스로를 자연의 통제자나 조절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이런 방법과 기술의 산물이다.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체득할 때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르면서 동시에 그 법칙으로부터 벗어난다. 자연법칙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객체화한 자연법칙에 따를 때에만 그 자연의 효용성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찾아내고 만든 자연법칙이 다시 인간에게 자신의 법칙에 따르라며 요구하는 셈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통제 방법과 관리 기술의 주체로 스스로를 간주하는 사이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그 방법과 기술에 종속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은 자연법칙에 의해 인간이 다시 대상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물질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법칙을 추상화해서 기술과 기계를 만들어냈으나, 이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기계에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기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기계 법칙에 맞출 것을 강요한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지만, 물건을 생산하려면 그 기계 법칙에 따라야 한다. 인간에 의해 조작되고 탄생되었으면서도 인간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추상화한 자연법칙' 앞에서 인간이 다시 객체화되는 것이다. 그 법칙 자체가 주체가 되어서 인간에게 자신의 법칙에 따르라며 요구한다. 지배하는 자가 지배되는 상황으로 역전된 것이다.

2013년 3월 11일, 일본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정확히 2년 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原電) 폭발 사고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송과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대지진과 그에 따른 쓰나미는 어디까지나 자연 재난이었던 데 비해, 그로 인한 원전 폭발 사고는 인위적인 재난이었다는 데에 두 재앙의 근본적인 차이와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대상화하면서 핵분열에 따른 에너지 발생 방식도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핵분열 원리에 따라 만든 원자력 발전도 인간이 그 핵분열의 수준과 원리에 맞출 때에만 예상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문명사적으로 보건대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문명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문명의 법칙에 종속될 때에만 문명은 인간에게 효용성을 내어줄 뿐이다. 문명은 인간의 편의대로 생겨난 것 같지만, 인간이 그 법칙에 맞출 때에만 문명은 인간 편을 든다.

원전 역시 인간이 핵분열에 의한 열에너지의 발생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에게 유용한 에너지가 된다. 그렇다면 원전 관련 산업이 인간에 의한 완벽한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원전 기술이 인간에 의해 통제된 자연법칙 치고는 그 법칙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을 급격하게 객체화시킬수록 인간의 통제 기술에도 한계가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원전 기술이 모든 이의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 전문 기술자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을 과연 극소수에게 전문가의 손에 맡겨두어도 되는 것일까.

원자력발전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면서 화력발전이나 수력발전보다 경제성이 높다고 보았기에 시작된 산업이다. 하지만 원전 산업은 인간이 자연을 객체화하는 수준과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만큼 인간이 다시 자연에 의해 급격히 객체화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리고 반자연적이다. 자연법칙에 대한 완벽한 조절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아무리 해도 인간의 힘보다 자연의 힘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이다. 자연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연법칙을 지배하다가 그 극한에 이르러 자연법칙이 다시 인간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지경에 처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문제의식이 크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가 원자력을 수출한다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보면서 어찌 저렇게 근시안적일까 하는 우려로 속을 태웠었다. 상업적 논리에 따라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연을 억지로 통제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원전의 안전을 강화하면서 유지하겠다'며 두루뭉수리로 슬쩍 지나려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연법칙을 통제하며 인위적으로 가두는 방식이 지나치게 위험한 만큼, 원자력 분야 산업은 연착륙시키며 폐기해야 한다.

물론 2012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쓰는 에너지의 31.2% 가량을 원전에서 충당하고 있는 데다, 많은 사람이 원전 분야 산업을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원전을 내일 당장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비용에 비해 원자력 발전의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렇더라도 자연법칙을 급격히 통제해가며 얻은 효용성은 당대는 아닐지언정 어떤 형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이른바 원전의 경제적 효용성에는 이러한 후대 비용은 계산되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2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 내지 실종된 이가 2만852명고, 이재민이 31만5천명이 넘는다. 그것 자체는 자연 재해라 하더라도,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은 일본은 물론 주변국, 나아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중에 789명 정도가 원전 폭발로 인한 사망자로 확인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원전에서 이런 정도의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정말 원전이 경제적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불과 2년 여 만에 원전의 위험성, 반자연성에 대해 둔감해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원자력은 효율성만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지나치게 급격하고 농도도 짙어서 재앙의 가능성이 잠복해 있는 분야이다.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면, 더 유지해서는 안 될 분야이다. 자연을 통제하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이다. 인간은 애당초 자연 안에 속해 있는 존재이지, 자연 너머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을 완벽히 통제하는 주체가 결코 되지 못한다. 자연을 객체화하면 할수록 위험한 것은 자연 자체보다도 도리어 자연에 의해 다시 객체화되는 인간이다.

박근혜 정부는 머뭇거리지 말고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점차 폐기하되,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신재생에너지, 자연친화적 에너지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시바삐 원자력 폐기를 위한 로드맵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전 국민이 에너지를 줄이는 일에 동참하도록 요청할 도리밖에 없다. 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개발과 국제적 공조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듯이, 원전 폐기를 위한 국제적 공조에 한국이 나설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결국 인류가 사는 길이겠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정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2013년 3월 11일, 일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모 행사를 동경에서 보고 들으면서 원전 폐기가 그저 희망만은 아니길 바라며 소회를 적어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찬수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원자력 폐기, #원전 반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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