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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하 '학폭대책')이 나온 것은 2012년 2월 5일이었다. 2011년 12월 20일,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극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폭대책 시행 이후 학교폭력 전화인 117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 본인이 직접 신고한 비율도 2012년 2월 42.7%에서 12월 66.3%로 크게 늘어났다. 이들 수치만을 놓고 보면,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면서 그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학교폭력 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한 교과부의 조치다. 지난해 2월, 교과부는 학폭 대책을 발표하면서 각 시도 교육청과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의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할 것을 지시한다. 학교폭력 관련 사항을 일종의 '전과 기록'처럼 학생부에 적어 넣으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는 입시 및 취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한두 번의 실수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며 교과부를 향해 수정을 권고한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과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다. 학교폭력 관련 사항을 입학사정관제의 인성평가 항목에 포함하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많은 일선 교사와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교과부는 들은 체 하지도 않는다. 이후 경기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은 학교폭력 사항을 기재하라는 교과부 지침을 거부한다. '당연하게도(!)' 교과부는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학폭 기재 거부 사태로 학생부 평가의 공정성이 문제될 것 같다며 일부 대학이 학교폭력 여부를 평가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교과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교과부가 요며칠 사이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뒤통수를 치는 '기습작전'을 벌인다. 지난 17일,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은 경기·전북 교육청 소속의 교육공무원(교사 및 교육장) 49명(경기 30명·전북 19명)에 대해 교육공무원 특별징계위원회를 연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18일, 교과부는 전날 예고한 대로 전북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감봉·불문 경고 등의 징계를 의결한다. 그 수장인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임기가 채 1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지금 전형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의) 포퓰리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학교폭력 기재 여부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찬성 쪽으로 기울어진다. 학교폭력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했을 때 예방 효과를 우선시하는 의견이 우세한 것이다. 이는 대학 입시나 취업 등의 관문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학생부의 위상을 고려할 때 '상식적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다. 이주호 장관은 바로 그런 포퓰리즘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자신의 '철학'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방식인가 하는 점이다. 학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제한 없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의 잔인성이나 흉포함을 두둔해서도 안 된다. 학생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그에 맞춰 명백하게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처벌을 받은 사실까지를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학생부에 자신의 폭력 사실이 기록된 가해 학생의 앞날은 또 어찌할 것인가. 지난해, 아이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한 적이 있다. 필자가 학교폭력 기재와 관련된 사태의 추이를 설명한 후, 바로 위에서 제시한 '가해 학생의 앞날' 운운의 의견을 말하자 한 아이가 대들듯이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 난다.

"그럼 선생님은 피해 학생의 앞날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것인가요?"

요컨대 그 아이는 가해 학생의 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함으로써 피해 학생이나 그 가족이 심정적으로 '복수'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학생이 심정적으로 '복수'했다는 느낌을 갖는 것과,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실질적인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많은 이가 바로 그런 심정적인 '복수' 같은 것을 생각한다. 교과부의 이주호 장관도 바로 그런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상 교과부에게는, 문제를 일으키는 폭력 가해 학생들이 되도록 많이 생겨나는 상황이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학교폭력이 생겨나면 가해 학생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학폭위의 구실이 무척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학교폭력 문제를 학폭위 차원에서 해결하게 함으로써 교과부는 학교폭력의 책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감옥은 '범죄 학교'로 알려져 있다. 범죄 기술(?)도 조잡하고 폭력을 행사할 만한 기질이나 태도가 약한 사람이 첨단 범죄 기술로 무장된 강력한 폭력범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처벌 위주로 징계하고, 학생부에 그 사실까지를 '전과 기록'처럼 남기는 일이 폭력 예방과는 전혀 무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는 폭력이 이미 일어난 후에 실행하게 되는 결과적인 조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반론이 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온전하게 반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학교폭력 예방 효과를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실증적인 자료를 얻어낼 수 있을까. 결국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를 학교폭력의 예방 수단의 하나로 말하는 것은 그저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우격다짐일 뿐이다.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는 비교육적일뿐더러 예방 효과도 확증할 수 없는 엉터리 교육 시책이다. 그런 엉터리 시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이주호 장관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는 일선 교육 현장의 교육공무원들과 부닥칠 때마다 법에 호소하는 '비책(秘策) 아닌 비책'으로 수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일이 시끄러워지면 대화보다 고소·고발을 즐겨 사용했다. 징계와 감사를 무기로 일선 교사와 교육감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가 한나라의 교육 수장인지 고소고발부나 징계감사부 수장인지 모를 정도다.

나 같은 평범한 교사에게 '검찰 출두'나 '법정 출석'과 같은 과분한 법률 체험 활동을 선물로 안겨 줬다. 나는 수년 전 옛 민주노동당에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던 후원금을 낸 것이 빌미가 돼 검찰에 고발당한 후 요 몇 년 사이 검찰과 법원에 세 번이나 출석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현재는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만하면 그의 능력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가 교과부 수장으로 있었던 4년 동안, 내가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징계를 강행하게 됨으로써, 50여 명에 가까운 많은 선생님이 기나긴 법적 공방을 벌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득해지기만 한다.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 당국이 이들 선생님들에게 별로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1주일 후면 떠나갈 그에게 이런 말 하는 내가 좀 한심스럽지만 한 마디는 꼭 하고 싶다. "이주호 장관님, 뒤끝 하난 참 대단하십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주호 교과부 장관,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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