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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 두 달. 이제 우리는 며칠 후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장면을 우울하게, 혹은 밝은 기대감을 안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간신히 덮어놓은 '대선 멘붕'을 떠오르게 하는 이 책을 소개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면서, 반드시 서평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패당(敗黨)인 민주당조차 선거 결과 분석에 진정성이나 성심을 보이지 않은 채, 그들(민주당)은 김한길 의원의 말처럼 '두 가지 길', 곧 금방 망하느냐 서서히 망하느냐의 길을 주변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겠지만 다시 이런 의문을 떠올려보자. 왜 사회의 최하층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많은 사람이 부유한 보수 정당(후보)에게 표를 던지는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코딱지만한 이익조차 손쉽게 빼앗아가버리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그 정당에게 말이다.

일상적인 경제 여건이 결코 좋지 않고, 상충하는 이해 관계로 인해 사회·경제적 대립이 격화할 때마다 피해 계층이나 소외자층에 서곤 하는 우리나라 농산어촌민들이 보수적인 여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이 완벽한 계급 배반 투표는 대체 어떤 메커니즘에서 비롯되는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주범이 상류층(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한, 이 두 집단은 부자들을 상대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를 소수의 최상류층과 절대 다수의 어려운 사람들로 양분하는 사회·경제 체제를 상대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98, 99쪽)

제임스 길리건은 누구?
1966년부터 2000년까지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냈고, 현재 뉴욕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력 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폭력 예방책을 연구해 온 폭력 문제의 권위자이다.(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이 책의 저자 제임스 길리건 교수는 이러한 전략, 즉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기 위해, 이간질을 통해 다수를 두 계층으로 나눈 후 이들끼리 서로 다투게 함으로써 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전략을 '분할 정복'(저자에 따르면, 이 분할 정복 전략은 로마 황제들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데 즐겨 쓴 방법이라고도 한다)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분할 정복 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가. 저자가 소개한, 살인률 증가가 인구의 못 사는 99퍼센트를 갈라놓아서 잘 사는 1퍼센트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는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저자는 우리가 범죄라고 규정하는 폭력의 대다수가 가난한 사람(저소득층)이 저지른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폭력 범죄가 일어나면 중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소득층에게 공포와 분노를 느낀다. 그대신 나라 전체의 재산과 소득을 대부분 가로채는 것이 상류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또한 폭력 범죄는 주로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저지르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은 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다. 그래서 폭력 범죄가 늘어나면 가난한 사람 계층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과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깡패나 마약 판매상)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한다. 그러는 사이에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쪽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도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된다.

저자는 수십 년간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폭력 문제를 연구한 정신의학자다. 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는 저자의 문제 의식은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세기 동안의 자살률과 살인률이 동일한 곡선을 그리면서 증감을 거듭하는 현상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길리건 박사는 이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곧 미국의 진보 정당인 민주당 출신보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때마다 미국이 자살과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전염성 폭력으로 더 크게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 사실을 바탕으로 집권 정당과 자살률, 살인률 사이에 명백한 인과 관계(단지 상관 관계가 아니라!)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인가. 보수 대통령(정당)이 진보 대통령(정당)보다 자살과 살인이라는 전염성 폭력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공공연한 '진실'로 다가갈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만 주목해서 보면, 이 책의 매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새누리당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저자가 주목한 수수께끼, 곧 집권 정당과 자살률·살인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문은 너무나 '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놀랍게도 그런 '뻔한' 사실을 얼마나 자주 망각하는가.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폭력 치사 전염병의 증감, 그리고 이것과 긴밀하게 얽힌 실업, 불평등, 경제 성장률 같은 경제 현상을 대통령 개인의 특성보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더 잘 예측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가 말한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김무성이라는 '걸출한 선장'(!?)의 지휘 아래 선거 캠프를 일사불란하게 꾸려 나간 새누리당과, 책임감 있고 지도력 넘치는 선장 하나 없이 중구난방으로 선거를 치른 민주당을 굳이 견줘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일자리 배분'에 초점을 맞춘 '훌륭한 이간질'(분할 정복 전략)로 세대간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 새누리당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볼 새도 없이, 민주당 스스로 '젊은층이 투표해야 한다'고 세대투표 구도를 적극적으로 강조한 모습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하나(나 자신도 20대 제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면서 은연중에 세대간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새누리당이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워 여성 유권자들을 유혹할 때, 그것이 "선거 운동의 틀을 두 후보의 순전히 개인적인 대결로 몰아가려는 목적"(217쪽)을 통해 "두 당의 실제 정책 차이가 무엇인지에 유권자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데 있"(217쪽)었음을 과연 민주당 캠프에서는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준비된 여성 대통령론'이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나같은 평범한 시민조차 우려했던 바이기도 하다.

마무리하자. 엽기적인 살인이나 성폭행과 같은 강력 범죄가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현재의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엄벌주의를 강화하는 법안이나 정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그들'만'이 민생 치안의 최적임자라는 이미지를 보수 언론과 연합해 널리 유포한다. 실상 그러한 엄벌주의가 강력 범죄를 예방하는 데 그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진실'을 명확하게 인식한 후,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임스 길리건 교수가 쓴 이 책이, 그 과정에서 훌륭한 참고서가 돼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제임스 길리건(2012),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교양인. 275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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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12)


태그:#제임스 길리건, #자살률, #살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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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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