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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의 비법, 긍정 파워!

DMZ방문은 방북한의 현실을 어떤 역사 교과서나 안내서보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DMZ방문은 방북한의 현실을 어떤 역사 교과서나 안내서보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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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한국에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딸을 만나고 한국을 구경하기 위해 10일간 한국을 방문한 끌로드 아저씨 부부 또한 DMZ를 꼭 방문해 보고 싶어 하셨다. 딸 오렐리와 친구 사라 또한 이번 DMZ 방문을 함께 하기로 했다. 아저씨 가족은 DMZ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파주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파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모두 합정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일을 마치고, 오렐리와 사라는 학교에서 조발 표를 마치고, 끌로드 아저씨 부부는 속초여행을 마치고 모였다. 아쉽게도 속초를 여행하는 내내 강원도에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한창 물이 오른 단풍을 구경하기위해 설악산으로 향했지만 날씨가 너무 궂어 단풍은 커녕 한치 앞도 안보였다고 한다. 긍정적인 끌로드 아저씨는 날씨가 추운 덕분에 산에 내려와 목욕탕에 가니 더 기분이 끝내줬다고 하신다. 목욕탕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탕에 같이 들어 와있던 한국 아저씨가 계속 말을 걸었다면서 알아듣진 못했지만 재미있었다고 하신다. 

프랑스에서 공짜란 없어

또 버스에서 만난 프랑스인들을 설악산 위에 찻집에서 우연히 만났다며 여행의 묘미는 이런 우연으로 엮인 인연이라고 하셨다. 그 프랑스인들이 찻집 주인과 아는 사이여서 아저씨 부부에게도 돈을 받지 않고 차를 대접해 주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나를 보자마자 하시는 얘기가 "한국 사람들은 정말 인심이 좋다!"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대학가에서 살고 있는 딸 오렐리에게 지금 사는 하숙집에는 밥과 김치가 언제든지 먹을 만큼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프랑스에서는 공짜란 없어!"

끌로드 아저씨의 에펠탑이 프린트된 앞치마 선물에 기뻐하시는 엄마.
 끌로드 아저씨의 에펠탑이 프린트된 앞치마 선물에 기뻐하시는 엄마.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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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끌로드 아저씨는 엄마·아빠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우리 가족을 위해선물을 준비해 오셨다. 아빠에게는 화이트와인, 엄마에게는 에펠탑이 그러져있는 앞치마, 언니와 나를 위해서는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라듀레(La durée)에서 만든 마카롱을 선물로 주셨다. 뛸 듯이 좋아하는 나를 보며 아빠는 그게 뭐기에 그렇게 좋아하냐며 의아해 하셨다. 워낙 마카롱이 맛있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프랑스의 어떤 것에 예전 추억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기도 해서 더욱 기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짐을 놓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5인승 차에 모두가 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저씨와 나는 차 뒤쪽에 화물칸에 탔다. 밖에는 손이 시릴만큼 추웠다.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에 "추운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니 오히려 "이렇게 차 뒤에 타니까 젊어지는 기분이여서 좋은데?" 라고 웃으신다. 같은 일을 하여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이렇게 인생이 신날 수 있다니, 대학 졸업반으로 신나는 일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나에게 이런 아저씨의 한마디는 어떠한 인생선배의 조언보다 더 값졌다.

검문소 군인을 보자 입이 얼어버린 끌로드 가족

끌로드 아저씨 부부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딸 오렐리와 오렐리의 친구 사라까지 한국의 분단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DMZ 투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모두가 여권과 신분증을 준비하고 아침 9시에 민통선을 향해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안내는 소엽선생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했다. 소엽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파주문화원의 문화유산해설사로서 민통선 안에 위치한 허준묘소의 해설을 맡아 자원봉사를 해 오셨던 분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겨우 기상한 나와는 달리 끌로드아저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미 헤이리 마을 산책까지 하셨다고 한다. 소엽선생님이 도착하고 여권 챙겼나 한 번 더 확인한 후에 민통선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소엽선생님이 끌로드 가족에게 땅굴은 방문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비무장지대에 땅굴이 있는지 몰랐던 아저씨는 이 질문을 듣고는 대답하셨다.

"그럼요.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세요!"

날씨가 맑아서 민통선지역으로 향하는 내내 모두가 들떠있었다. 드디어 검문소에 닿았고 무장한 군인들의 낯선 풍경에 한껏 긴장한 가족들은 여권을 달라는 군인의 말을 프랑스어로 옮기기도 전에 전원 여권 첫 페이지 펴서 포개어 준다. 한껏 수다를 떨던 가족인데 모두가 침묵한 채 군인들의 눈치만 본다.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키가 190cm에 육박하는 오렐리가 군인이 나보다 덩치가 작다면서 우스갯소리를 한다.

방문객들에게 남북의 대치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전시관이 있다.
 방문객들에게 남북의 대치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전시관이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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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투어에 DMZ는 없다

검문소를 통과하니 파주의 어느 곳처럼 평화롭게만 보인다. 처음으로 간 곳은 도라산역이다. 해외에 갈 때는 출입'국'관리소를 지나지만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이 역은 '국'자를 뺀 출입관리소이다. 여행 가방을 끌고 해외로 나가는 사람으로 항상 붐비는 인천공항과는 비교도 안 되게 한산하지만 언젠가는 이 도란산역이 북적이는 날이 오길 바란다.

1차선은 개성으로  2차선은 서울로
 1차선은 개성으로 2차선은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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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에서는 우리의 방문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신 남북출입사무소(CIQ) 군운용단장님이신 김정배 육군중령님을 만날 수 있었다. 단장님이 도라산역에서 한국의 분단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신 덕에 한국분단의 역사를 잘 몰랐던 끌로드 아저씨와 마리 아주머니에게 훨씬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더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사무실에서 차 한잔까지 약속하신 단장님의 친절에 감읍하면서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마리 아주머니는 단장님이신데 이렇게 인상이 좋아도 되는 거냐고 웃으며 말하신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3땅굴이었다.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판 4개의 땅굴 중 하나이다. 비무장지대와 땅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영상관과 비무장지대의 역사와 구조를 설명하는 박물관이 있어 오기 전에 근현대사를 복습하지 않은 사람들도 걱정 없다.

사실 비무장지대 투어라고 불리는 관광코스에는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가 없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의 '한국전 정전협정'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북으로 2km 남으로 2km 이렇게 총 4km를 무장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한 곳이다. 비무장지대의 출입은 허가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60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없었다. 현재는 그 어느 곳보다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 돼 있다. 60년의 세월은 자연이 되돌아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남북은 더욱 멀어져만 가지 않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무장지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본 끌로드아저씨는 비무장지대를 희망의 땅으로 그린 영상이 너무 감동이라며 DMZ야 말로 현재의 비극을 담보로 미래의 희망을 묻어둔 곳 같다고 하셨다.

김정배 남북출입사무소 군운용단장님께서 프랑스가족에게 남북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셨다.
 김정배 남북출입사무소 군운용단장님께서 프랑스가족에게 남북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셨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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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땅굴로 들어가는 길. 입구를 막 지나니 단체로 온 여고생들이 땅굴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제 막 내려가는 우리들을 보고 백이면 백 "내려가면 후회할 거예요!"를 외친다. 워낙 깊기 때문에 올라오는 길이 그렇게나 고된가보다. 배경을 모르고 땅굴에 온다면 이런 습하고 불편한 곳까지 무엇을 하러 오나 싶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면 뒷골이 서늘해지면서 그 시대의 긴장감이 나에게 까지 전해진다. 고개를 들고 걸어도 무리가 없는 나와는 달리 키가 큰 마리아 주머니와 오렐리는 세 발짝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머리를 박는다. 

남과 북의 깃발 높이기 경쟁  

점심은 해마루촌의 명물인 콩비지 집으로 갔다. 외국인들에겐 다소 낯선 한국 음식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끌로드 아저씨는 그런 것일수록 더욱 좋다고 하신다.

식사후 북한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도라산 전망대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다행히도 날이 맑아서 전망을 보는 데는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전망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통유리를 넘어 정면으로 전망이 펼쳐진다. 그 앞에는 지리를 보여주는 모형이 있었다. 군의 호의로 우리는 영어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남한에 보이려고 만든, 아무도 살지 않고 건물만 있는 북한 선전 마을과 더불어 4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북방한계선을 따라 있는 4km의 선이 나무가 울창한 것으로 봐서 비무장지대인걸 알 수 있다. 북측과 남측이 마주보고 있는 초대형 깃발. 서로 더 높이 깃발을 올리기 위해 몇 번이나 기싸움을 했다고 한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우리는 한국의 통일을 위한 '화이팅'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우리는 한국의 통일을 위한 '화이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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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한국분단역사교육

건물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지만 설명을 들은 후 왼쪽 밖으로 나가면 망원경으로 설명 들었던 곳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역시 야외에서도 바로 앞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잇지만 몇 미터 뒤의 노란 선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끌로드 가족 모두 서로 "뭐가 보여?"를 연발하며 옹기종기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이번 DMZ 투어의 마지막은 김정배 남북출입사무소 군운용단장님께서 특별하게 만들어 주셨다. 우리를 단장님의 사무실로 초대해주신 것이다. 군인이 끓인 귀한 녹차는 그 어느 녹차보다 맛있었다. 단장님께서는 이번 투어가 어떠셨냐고 물었고, 오렐리는 생각보다 해마루촌이나 통일촌 등 접경지대의 마을이 한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져서 놀랐다고 말했다. 단장님께서는 요즘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케이 팝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아는 경우는 드물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사라는 그래도 옆 나라 독일의 분단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의 분단역사도 잠깐이나마 배우기 때문에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이 분단국이라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출입사무소 방문 기념메달을 선물해주신 김정배 단장님.
 남북출입사무소 방문 기념메달을 선물해주신 김정배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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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사람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어본다. "저 사람들 북한 사람들이에요?" 국경지역과 개성공단을 오가는 도로를 찍는 카메라 화면이 보이는 모니터이다.   

"하루에 20번 30분마다 개성공단을 지나는 차가 왔다 갔다 하죠."   

단장님의 설명에 끌로드 아저씨 가족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개성공단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남한과 북한이 같은 한국어를 쓰나요?"
"남한사람 북한사람 같이 일하면 북한사람들이 남한의 사정을 잘 알게 되겠네요?"
"저기서 무슨 물건을 만들어요?"  

등등 단장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한국에는 이주노동자가 많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작업에 불편한 경우가 있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면에서 굉장한 강점이 있다. 하지만 북한 사람이 남한문화에 많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북한당국에서는 서로의 대화를 금지하고 업무와 관련된 대화만 총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가 없더라도 남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신다고 한다.   

세뇌된 이미지의 북한     

내가 처음 북한 사람을 봤을 때 놀랐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탈북자 정착 정책에 관한 회의에서 이었는데, 탈북민들 또한 많이 참석한 자리였다. 그 때 북한사람을 처음 보았다.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와 너무 같아서'였다. 말은 물론이고 아주머니들이 서너 명 모여서 수다를 떠는 모습부터 쉬는 시간에 놓아 놓은 과자를 맛있다며 먼저 여러 개를 들고 오시는 모습. 영락없는 한국의 아줌마였다. 탈북자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같이 일하는 인턴 또한 이 같은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정말 처음엔 자기도 너무 똑같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평생 동안 북한이라는 나라는 교과서나 미디어 혹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서 정작 실제로 봤을 때 놀라는 것이다. 엄연히 한핏줄, 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정치적 대립속에서의 교육과 미디어가 쏳아내는 보도가 북한 동포에 대한 허상을 내 머리에 심었던 것이다. 

끌로드 아저씨께서는 헤이리대신 헤이리 옆의 동화경모공원을 방문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에는 북한이 고향인 이산가족들이 주로 잠들어계신 곳이다.
 끌로드 아저씨께서는 헤이리대신 헤이리 옆의 동화경모공원을 방문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곳에는 북한이 고향인 이산가족들이 주로 잠들어계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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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의 사무실 방문을 뒤로하고 끌로드 가족은 출입사무소에 계시는 분이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화경모공원에 들렸다. 파주로 이사 온 지 7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많이 묻혀있다는 경모공원. DMZ 투어는 끌로드 가족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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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DMZ, #끌로드가족, #도라산역, #남북출입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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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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